잔업작가의 마이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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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 내 하루의 3분의 1을 안아 주며 (0) 2019/02/09 AM 12:12

니체는 말했습니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동의하시나요? 제 나름의 해석을 달아봅니다.


1. 하루

하루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우리 대부분은 노예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7시 일어나서 출근해서 저녁 7시 퇴근해서 집에 와서 12시 잔다면, 온전한 내 시간은 고작해야 5시간 뿐이잖아요. 노동이 착취인지 자아실현인지, 수면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맞는가 등 의견이 분분한 내용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하루 중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에 해당하는 시간, 즉 근로시간을 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노동은 합의에 근거합니다. 합의는 서로의 의무로 유지됩니다. 사회에서 의무란 자유의 근거이지, 자유 그 자체는 아닙니라 생각합니다. 근로시간을 뺀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나로서의 하루입니다.


2. 3분의 2

산술적인 3분의 2라기보단 대부분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모든 시간은 아니란 겁니다. 바꿔 말해 하루의 3분의 1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해도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단 의미입니다.


3. 자기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란 일단 선택과 동의어라 생각합니다. 여가시간을 예를 들자면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운동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피곤함을 억지로 쫓아가며 영어학원에 간다거나 체육관에 가는 것은 어떤가요. 즐거움은 덜하겠지만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당장의 기쁨이 목적이어도 좋고 내일의 발전을 위한 인내도 좋습니다. 선택한다면 그것이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선택은 책임감도 동반됩니다. 피곤하고 귀찮아도 아이와 놀아주거나 집안살림을 챙기는 것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가 하루에서 제외되는 것과 달리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은 하루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사회는 이익이 목적인 반면 공동체는 사랑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4. 노예

노예의 정체성은 원한에 있습니다. 원한은 노예의 도덕입니다. 원한과 열등감, 상대를 부정하는 것만이 자신을 긍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그 얼마나 힘든 삶인가요. 노예란 표현보단 논어에서 언급되는 소인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면, 니체가 말한 하루 중에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쓴단 표현을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를 확장해야 한단 의미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저 남만 의식하고 탓하는 것은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 뿐입니다. 말하자면 영혼의 자기독살입니다.


2-2.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런 동시에 당연하게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 누가 오롯이 자신만의 길만 갈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남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죠. 때로는 도망가고 싶고 변명하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적어도 이런 생각 자체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숨 쉴 틈을 보세요. 3분의 1은 못난 나를 허락해도 됩니다.


1-2. 진짜 하루

정리하자면 니체의 말을 지금의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적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얼마나 자기 자신에 충실한지에 대한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업무가 얼마나 적성에 가까운가에 따라 우리 하루의 양적 변화를, 공동체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질적 변화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보내는 매 시간을 자주적인 의식에 집중해야 합니다. 깊은 명상이나 사색이 아닙니다. 순간적인 행위가 아닌 행동양식으로서의 자주성입니다. 저는 이걸 철학이라 부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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