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 _ 박창선
가슴 팍이 붉게 젖어가도
아프지가 않다
무뎌진 날이
후비고 간 기억처럼
짓뭉개진 꽃잎
봄이 어지럽게 흩뿌려진 방은
패어진 흔적을 모두 간직한 달
아물지 못한 채 맴도는 서글픈 달
정처 없는 걸음 뒤엔
어째 선가 눈물이 떨어졌고
그마저도 내 것은 아니었단 현실만이
차갑게, 아주 시리게
삶을 일깨우곤 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은 아닐 거야"
네가 남기고 간 잔인한 온기
차라리 얼어붙었다면 좋았을
응어리를 핥으며
외로움을 적셔본다
따르릉 따르르릉
아, 전화기가 울린다
어서 빨리 허우적거려
뻔한 답을 내어야 해
"잘 지내요"
언제고, 언제고, 언제까지고
변치 않을 답을 내어야 해
흠뻑 젖은 가슴 팍엔
선명하게 붉은 꽃이
아름드리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