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했더니늑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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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일랜드 사가-심해전설-서장.소년 모험가(1) (0) 2019/05/20 PM 06:57

일랜드사가 (Ill Land Saga)

-심해 전설- Legend Of Abyss

 

 

 

- 상처받은 땅 일랜드.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대지를 그렇게 불렀다.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일랜드 전역을 뒤흔든 모험의 시대가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신세계를 발견하고,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고, 위험과 스릴을 이겨내는 끝없는 여정으로의 발걸음은 일랜드 여섯 영지를 구석구석 뒤흔들었고,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별을 품고, 짐을 챙겨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을 떠났다.

이러한 대모험의 뜨거운 열기는 서쪽 끝의 영지. 힐로아의 가장 작은 마을 샤농도 결코 벗어날 수 없어서 샤농의 젊은이들도, 외부에서 온 모험가들도 마을 근교의 가장 깊은 나무의 바다. 깊고 깊은 숲을 개간하기 위해 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두려움 없이 도전했다.

그러나 겁 없이 도전한 젊은 혈기의 대가는 무서운 것이었다.

깊고 깊은 숲은 젊은 도전자들을 대부분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려보내지 않았고, 새로운 이름 '침묵의 숲'이라는 이명을 얻고야 말았다.

숲에 이름이 새로 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샤농에서의 모험 열기는 급격히 사그라들어 다시금 이전의 조용하고 변함없는 시골 마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유행에 뒤쳐지는 괴짜는 꼭 하나 씩 있는 법.

오늘도 두 눈동자를 새벽 별처럼 빛내며 서슬 퍼런 수직절벽의 아래를 내려다보는 열세 살의 겁 없는 아이가 있었으니, 마을에서는 '못 말리는 말썽쟁이'로 악명이 자자한 소년, 아윈이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서장. 소년모험가.]

 

 

 

1.

"역시 틀림없어……."

 

 

 

어른이 봐도 현기증이 느껴질 것만 같은 까마득한 절벽.

어른의 키 이삼십 배는 족히 넘을 것만 같은 수직 절벽의 끝에는 한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마세계의 경계.

심해로 통하는 불길한 회색빛의 연기 같은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파도의 바로 위에 신비로운 분홍 빛 광채를 영롱하게 발하며 거센 돌풍에도 꺾이지 않는 가녀린 꽃 한 송이가 있었으니…….

 

 

 

"요정의 꽃. 저게 바로 선생이 말한 요정의 꽃이 역시 틀림없어!"

 

 

 

아윈이 한손에 들고 있는 수첩엔 조잡한 솜씨로 그려진 꽃 한 송이가 있었다.

마을 제일의 지식인이자 전 여행자라는 숲지기인 선생이, 아윈의 이야기를 듣고 정성들여 설명해준 것을 나름대로 열심히 그려본 것이었다.

 

 

 

'요 며칠 동안 계속 실패만 거듭했었지…….'

 

 

 

아윈은 바닥에 주저앉아 이전 페이지를 넘기며 실패한 바둑을 복기하듯 수첩을 곰곰이 살폈다.

사실 아윈이 이 절벽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일주일 전, 우연히 절벽 밑에 반짝이는 빛을 발견한 이후 틀림없이 놀라운 보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몇 번이고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고, 그만큼의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윈의 수첩의 한 페이지에는 뼈대만남은 앙상한 사람 그림이 줄을 메고 절벽을 내려가는 그림이, 그 다음 페이지에는 반도 내려가지 못한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글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아윈이 그 나름대로 노력해서 기록한 도전수첩.

 

 

 

'이때는 밧줄이 너무 짧았어.'

 

 

 

옆에 놓인 로프더미를 보면서 아윈은 숯을 들고 그림에 X표시를 했다.

정확히 길이를 측량하지 않고 무작정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교훈삼아 밤이 새도록 꼬아둔 밧줄은 여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무게 테스트 까지 마친 물건이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사람 그림이 절벽을 내려가던 중에 반쯤 날았다가 다시 절벽에 부딪히고 허겁지겁 올라가는 그림이 있었다.

 

 

 

'이땐 무서운 돌개바람이 연속으로 쳤었지. 세 번째 바람이 가장 무서웠어.'

 

 

 

아윈은 속으로 셋 둘 하나를 세었다.

그와 동시에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거센 바람이 아윈의 반짝이는 금발을 마구 흩뜨려놓았다.

 

 

 

'이게 두 번째 바람이지!'

 

 

 

어린 아이의 몸쯤은 가볍게 휘날리는 무서운 바람.

바람이 언제 부는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아윈은 몇 번이고 바람에 대롱거리다가 허겁지겁 올라와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아윈은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바람이 부는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때는 똑바로 내려가 버려서 따질 못했지.'

 

 

 

절벽에 내려가기 전, 아윈은 밧줄에 시험 삼아 돌을 묶고는 불길하게 출렁이는 구름 같은 파도 속으로 던져본 적이 있었다. 던지고 난 이후 돌은 남아있지 않았다.

무서운 독소의 바다가 밧줄을 녹여 끊어버린 것이었다.

이런 무서운 파도에 닿지 않고 바로 위에 아슬아슬하게 핀 꽃을 따려면 처음부터 거꾸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익숙하지 않은 묘기를 당장 할 수 는 없는 법.

아윈은 오늘을 위해 그제부터 이틀 연속을 온종일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보랏빛으로 보일 정도로 성자의벽 요새 성벽에 거꾸로 매달려 병사들이 놀리건 말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첫날엔 날이 어두워져 숙소로 돌아가던 수비대장에게 발각되어 끌어내려졌고 둘째 날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페일라 이모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끌려가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틀간의 연습시간은 충분했고, 지금의 아윈은 서 있는 것보다 물구나무 서 있는 게 더 익숙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좋아!!"

 

 

 

수첩의 그림들에 X표시를 쓱쓱 해나간 아윈은 그제야 만족하며 손뼉을 짝하고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이야말로 손에 넣는 거야!!"

 

 

 

주인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을 간직한 보물 요정의 꽃.

이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만반의 채비를 갖춘 소년은, 절벽과 비슷한 높이의 성벽 같이 우람한 나무 밑으로 다가가 밧줄을 칭칭 감고 당겼다.

높이만 이삼십 미터. 둘레만 십여 미터는 족히 넘는 성채와 같은 나무가 빽빽하게 가득 찬 이곳은 많은 모험가들이 실패를 맛본 깊은 고요의 공간 '침묵의 숲'이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숲의 끝자락.

아윈이 발견한 이곳은 '전망언덕'이라 이름붙인 절벽이었다.

비록 대모험의 유행이 저물었고, 마을에서 이 숲에 이름을 지어줌과 동시에 출입 또한 금지 되었지만, 마을 최고의 말썽쟁이로 손꼽히는 아윈에게 있어서 그런 건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선생이 평소 알려줬던 대로 어깨와 허리, 사타구니에 로프를 단단히 동여감은 아윈은 조심스럽게 절벽을 거꾸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나처럼 일찍 이런 모험은 해보지 못했을 거야!'

 

 

 

거꾸로 매달린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과 빠지면 즉시 목숨을 잃어버릴 시커먼 연기의 바다.

아윈의 부모는 이름 높은 모험가였다.

5년 전, 어린 아윈을 이모에게 맡기고 이 바다 너머로 마지막 모험을 떠난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마을사람들도 이모조차도 두 사람의 생존을 믿지 않았지만, 아윈은 달랐다.

언젠가 아윈 자신도 모험가가 되어 바다너머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무서운 바다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아윈은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절벽을 거꾸로 내려가는 그 모습은 마치 거미가 실을 뽑는 것만 같았다.

거미가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뽑아내듯, 밧줄을 풀어가며 능숙하게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아윈.

건장한 성인들도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위험하고 힘든 묘기였지만, 이날 하루를 위해 준비한 어린 소년은 실수 없이 차근차근 순조롭게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두 눈은 신비한 광채를 발하는 전설의 꽃을 응시하면서.............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머리에 시뻘겋게 피가 쏠리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절벽을 내려온 아윈은 어느 샌가 품안의 밧줄이 모두 풀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표로 삼았던 신비의 꽃 '요정의 꽃'이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해냈어!!'

 

 

 

아윈은 전율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성공의 성취감과 환희가 밧줄을 쥐고 있는 손끝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너무나 위험했던 고비를 넘고 넘어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결실을 눈앞에 둔 것이었다.

 

 

 

'이게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요정의 꽃…….'

 

 

 

아윈은 눈앞에 다가온 빛나는 꽃을 잠시 감상했다.

당장 머리끝에 위험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지만, 다섯 갈래로 갈라진 분홍빛 꽃잎이 뿜어내는 향긋한 향기와 본적 없는 신비로운 광채는 그런 위험조차도 잊게 만들었다.

 

 

 

'이걸 가져가면 나도 어엿한 모험자야! 이디아녀석도 다시는 날 무시하지 못할걸!!'

 

 

 

항상 자신을 말썽꾸러기 취급하며 놀리는 힐로아 수호기사의 딸 이디아의 풀죽은 모습을 상상하자 아윈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올라가자!'

 

 

 

길었던 도전을 매듭짓기 위해, 이제 슬슬 가장 위험한 세 번째 돌풍이 불 시간도 멀지 않았기에 아윈은 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절벽이 요동쳤다.

 

 

 

'지...지진?!'

 

 

 

다행히 단단하게 기름까지 먹인 밧줄이 끊어지진 않았지만, 절벽전체가 흔들리는 돌발 상황 앞에서 방금 전까지 시뻘겋게 피가 쏠렸던 아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건만,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점차 격렬해지는 진동이 절벽을 뒤흔들 자, 아윈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재빨리 손을 뻗어 꽃을 꺾어들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밧줄과 온몸이 요동쳐 꽃을 꺾긴 커녕,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시계추처럼 대롱거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꺾은 꽃을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잠근 아윈은 거꾸로 매달린 그대로 절벽 위를 굽어보았다.

 

 

 

'다시 올라갈 수는 없어!'

 

 

 

지금처럼 격렬한 진동을 무릅쓰고 올라가려 했다간 밧줄만 놓치고 체력만 낭비할게 뻔한 상황.

아윈은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절벽의 돌과 풀뿌리를 단단히 붙들고 몸을 바짝 붙였다.

지금부터 닥쳐올 것이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지진일지, 계산보다 빠른 무서운 세 번째 돌풍일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버텨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귓전을 찢는 듯한 소리가 천둥벼락 치듯 온 땅을 울렸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아윈의 작은 몸은 높은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단단히 버티려 했던 저항도 헛되이 절벽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던 바람은 솜털을 날려버리듯 아윈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줄에 매달린 연처럼 허공에서 펄럭이는 소년의 눈에는 공포와 긴장이 맴돌았다.

바람이 멈추는 순간 벌어질 일은 단 두 가지.

이대로 추락해 절벽에 거세게 들이 받거나, 절벽 위 풀밭으로 떨어져 바닥에 거꾸로 매다 꽂히는 일만 남았을 뿐, 어느 쪽이든 살 방법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단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허리에 묶여 있는 밧줄 덕분에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는 것 뿐, 그러나 그저 하염없이 공중을 부유하는 아윈의 얼굴에 이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딱히 기사회생의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단 하나의 풍경.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이 소년의 가슴속에 자리한 공포와 긴장을 말끔히 씻어내고, 위기의 순간마저 잠시 잊게 만든 것이었다.

거센 돌풍에 휘말려 회색 빛깔 바다 위를 부유하는 소년의 눈에 비친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흐리고 불길한 안개 빛 바다를 헤치고 나온 광경은 바로 바다 밑에 감춰져 있던 대지와 그 대지에 맞닿아 있는 또 하나의 하늘이었다.

바다 속에 숨겨진 대지를 보자마자 아윈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건 심해야.....!’

 

 

 

아직 어린나이였지만, 아윈은 바다 속 대지에 대해서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심해.

부식성 독성 물질로 가득 찬 잿빛 바다지만, 그 밑에도 생명은 숨 쉬고 있었다.

일랜드 사람들은 바다 밑의 세계를 두려움을 담아 심해, 그곳에 사는 생명체들에겐 증오를 담아 심해인이라고 불렀다.

심해인들은 지상세계에 맹목적인 동경을 지니고 있었고, 동시에 일랜드 사람들에 대한 맹목적인 살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 살의와 동경을 바탕으로 이들은 지상세계에 출몰해 침략과 살육을 일삼았는데, 항상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심해인이라고 해도 맹독의 바다를 지나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나타나는 날은 주로 대낮인데도 불길하게 어둡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바다가 갈라지며 바닷길이 열리는 날이었으며, 그런 날엔 항상 어김없이 나타나 날선 무기를 휘두르며 사방으로 저주를 흩뿌렸다.

바닷가에서 아주 가까운 마을 샤농이었기에, 아윈도 그런 날이면 모든 모험계획을 취소하고 문을 꼭 잠그고 집안에 있어야만했다.

그리고 창문 틈으로 은빛 갑옷을 빛내며 이디아의 아버지인 힐로아의 수호기사 아브와 수비군이 요새로 바쁘게 진군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었다.

공포의 대지 심해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검붉고 어두운 빛을 띠고 있는 대지는 그 색만으로도 불길함을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흉측한 모습의 마수가 갈라진 바다 틈으로 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아윈은 절로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눈길을 돌렸다.

이번에 아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 속 대지 옆의 푸른 빛깔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또 하나의 하늘이었다.

머리위의 하늘과 같은 신비로운 푸른빛을 띠고 있는 빛나는 ‘무언가’를 보고 아윈은 생각했다.

 

 

 

‘저게 뭐지?’

 

 

 

그러나 아직 어린 아윈이 아무리 생각해봐야 바다 속의 하늘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비단 아윈 뿐 아니라, 힐로아 그리고 일랜드의 그 누구도 저주 받은 바다 속. 심해세계에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윈은 계속 해서 관찰했다.

바다 속에 펼쳐진 하늘은 심해의 대지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을 집요하게 관찰하던 아윈의 눈에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빛났어!!’

 

 

 

아윈은 공중에 떠있는 몸을 젖혀 등 뒤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 높이 떠오른 정오의 태양. 그 태양 빛을 받아 바다 속의 하늘은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 전체가 태양의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짝임을 본 아윈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며칠 전, 절벽에 거꾸로 매달리는 것을 연습하기 위해 아윈은 요새 성자의 벽에 거꾸로 매달려 연습할 때의 일이었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을 때, 바로 머리 밑의 해자에 살짝 차있던 물이 햇빛을 받아 어지럽게 반짝이는 것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며 넋을 놓고 있지 않았던가?

기억을 되새긴 아윈은 결론에 도달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저건........ 물이야!’

 

 

 

바다 속의 빛나는 하늘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결론을 지은 바로 그 순간, 소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해의 대지를 바라보았을 때도 소름이 돋았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성격이 달랐다.

심해의 대지를 바라보았을 때 느낀 감정이 두려움이었다면 바다 속 하늘의 정체를 깨달은 지금 아윈의 마음을 가득 채운 이 감정은 바로 확신과 전율이었다.

아윈은 평소 선생이 말해주었던 위대한 모험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렸다.

세상에는 물로 이루어져 파도가 치는 진짜 바다가 존재하며, 아윈의 아버지 카인은 진짜 바다를 찾아 다른 이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대한 마지막 도전을 떠났다는 사실을…….

갑자기 휘몰아친 돌풍,

그 가공할 바람의 힘으로 큰 구멍이 뚫린 회색 빛 바다.

그 너머에 펼쳐진 하늘 빛 세계를 보며 아윈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하늘 따위가 아니야!’

 

 

 

바람이 천천히 잦아들며 아윈의 몸이 점차 가라앉아 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냥 물도 아니야!!’

 

 

 

닫혀가는 회색 빛 바다.

그 사이로 비치는 하늘색을 끝까지 눈으로 쫓으며 온몸에 끓어오르는 전율과 벅차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한곳에 모아 아윈은 외쳤다.

 

 

 

“저건 바다야!!! 진짜 바다라고!!!!”

 

 

 

소년의 외침이 숲과 절벽을 쩌렁쩌렁 울렸다.

 

 

 

“난 모험가가 될 거야!!! 진짜 바다를 찾아갈 거야!!”

 

 

 

갈라진 회색 빛 바다가 완전히 닫힐 때까지 아윈은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회색 빛 바다 한 가운데에 뚫린 푸른 빛 구멍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아윈의 몸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2.

 

 

 

‘아윈 이 못말리는 바보가!!’

 

 

 

샤농의 수호기사 아브의 무남독녀 이디아는 아윈을 향한 소리 없는 불만을 터뜨렸다.

저택을 몰래 나선 순간부터 지금 막 한 것까지 속으로 되뇌인 ‘바보’ 소리만 벌써 수십 번째로 기사의 딸로서 곱게 자란 그녀가 아윈을 원망하는 데는 전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원래 이디아가 태어나서 가장 기대하던 날 중 하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바로 그녀가 태어난 지 열세 번째 되는 날이자, 왕도로 홀로 출장을 나갔던 존경해마지 않는 왕국 제일 검객인 아버지, 아브가 돌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생일잔치라면 검소한 가문의 신조 상 조촐한 가족식사로 넘어갔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힐로아의 귀족자제들은 열 세 살이면 사교계에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준 성인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성인식을 겸해서 아주 성대하게 벌어질게 틀림없었을 뿐 아니라, 한 달 동안 집을 비웠던 아버지가 왕도에서 유행하는 세련된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해 올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이디아가 구경도 못해본 신기한 물건이 가득할 아버지의 선물, 가족끼리가 아닌 온 마을 사람들이 참석해 축하하는 성대한 파티.

이처럼 이디아의 인생 최고의 날에 걸맞게 숙녀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해 이디아는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의 고운 푸른 머리에 어울릴 아름다운 드레스를 찾기 위해 하녀들과 씨름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내가 왜에에에에!!”

 

 

 

이디아는 다시 한 번 자리에 없는 말썽꾸러기 아윈에게 화를 터뜨렸다.

이디아의 설레는 순간을 망친 것은 다름 아닌 마을 최고의 장난꾸러기 아윈.

하녀들이 새로운 옷을 가지러 잠깐 자리를 비운 그 사이에, 활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온 흰털 담비 엘피르가 그녀에게 아윈이 절벽에서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낱낱이 일러 바쳤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이디아는 황급히 저택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엘피르 때문에 화난 거 아니야. 괜찮아.”

 

 

 

이디아의 손가방에서 걱정스럽게 고개만 빼꼼히 내민 엘피르를 보자, 이디아는 상냥하게 웃으며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라는 게 대체 뭔지…….’

 

 

 

이디아가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늙은 노새 포포는 더 이상 꼼짝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디아의 목적지는 바로 아윈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 숲.

금지된 숲 침묵의 숲이었다.

이디아는 영차 하고 노새의 등에서 내려 [들어가지 마시오] 라고 써진 안내 표지판에 노새의 고삐를 묶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포포. 금방 갔다 올 게 쉬고 있어.”

 

 

 

늙은 노새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긴장을 풀고 자리에 편하게 주저앉았다.

다음은 엘피르 차례였다.

 

 

 

“아윈은 그 언덕에 있는 게 맞지?”

 

 

 

손바닥 위에 올라선 엘피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디아는 바닥에 풀어놓으며 말했다.

 

 

 

“가는 길은 나도 아니까, 선생님께 알려줘. 선생님은 엘피르 말은 못 알아들어도 대충 무슨 일인지 아실거야. 알겠지?”

 

 

 

침묵의 숲 어딘가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흰털 담비를 보며 이디아는 심호흡을 했다.

성인 모험가도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기 어려운 금기의 숲.

모험을 빙자해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거리는 아윈과 숲을 감시하는 숲지기인 선생을 제외하면 이 숲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하물며 어리고 연약한 여자아이인 이디아에겐 더욱더 위험한 곳이었지만.... 숲의 영물이라는 흰털담비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이디아에게 아윈의 소식을 알리러 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에겐 남다른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부탁할게요.”

 

 

 

이디아의 목소리에 움직이는 아름드리 고목들.

 

 

 

“오늘도 말썽쟁이 친구를 데리러 왔어요.”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이디아의 키보다 더 큰 넝쿨들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오늘도 빨리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독을 머금은 가시 넝쿨들이 스스로 물러나며 아윈이 있는 절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열어주었다.

생명 있는 모든 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태어나면서 이디아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힘이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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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완성하고 올릴까 했는데, 일단 서장 분량은 확보가 되어있으니까 올려봅니다.

산을 올랐던 어느날, 산봉우리 아래로 구름이 바다처럼 깔린 것을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평생을 산 위에 살고 산 밑으로 내려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저걸 뭐라고 생각할까?'

 

에서 시작된 이야기였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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