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했더니늑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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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일랜드 사가-심해전설-서장.소년 모험가(4) (0) 2019/05/22 AM 12:35

 

4.

 

아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주의 부름으로 일주일간 먼 곳으로 출장을 떠나 있었고, 이제 그리운 자택으로의 귀환이건만, 상황과는 반대로 저택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불편함은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금지된 숲을 끼고 도는 오솔길을 지나 저택의 모습이 먼발치에서 보이기 시작하자 결국 견디다 못한 아브는 수신호로 일행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은빛 갑주로 무장한 왕국 제일검의 태산 같은 풍채에서 어울리지 않는 깊은 한숨이 무너져 나왔다.

귀여운 딸이 기다리는 자택으로의 귀환길이건만, 지금의 아브의 모습은 마치 첫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는 초년병사와도 같은 초조함과 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어르신. 혹시 불편하신 곳이라도...?”

 

 

 

앳된 목소리가 아브의 시야를 환기 시킨다.

돌아본 아브의 눈에 이번 출장에 동행한 수행원이자 종자인 발터가 그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영주도시 벨로나를 떠나 이디아의 생일에 맞추기 위해 이틀 밤낮을 말을 타고 강행군을 해온 일행이었다.

다 큰 성인조차도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정이었다.

이디아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소년이 버티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힐로아에서 볼 수 없는 이질적은 검은 머리가 땀으로 약간 흐트러졌을 뿐, 피곤한 기색 없이 주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소년 견습의 모습이 대견했던 아브는 마음에 깃든 근심을 거두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니다. 그보다 할 일이 있다. 발터.”

 

 

 

“받들겠습니다. 어르신.”

 

 

 

“이제 저택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으니, 먼저 달려가 도착을 알려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흙먼지를 날리며 말을 몰고 사라지는 발터의 뒷모습을 보며 아부는 다시금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앞서간 발터가 아브를 맞이하며 이디아의 부재를 알렸다.

성인식을 겸한 열 세 번 째 생일.

마을의 모두가 축하해줄 중요한 자리를 앞두고 주인공이 자리를 비운 사실에 발터는 초조한 눈치였다.

외출행장을 갈아입지 않고 말의 안장도 내리지 않은 것이 지금당장이라도 이디아를 찾으러 나설 기세였기에 아브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알아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필시 아윈과 어울리고 있을게 분명하리라.. 그리고 아윈도 이디아도 중요한날에 노는데 정신이 팔릴 만큼 철부지가 아니라고 아브는 믿고 있었다.

게다가 아브는 지금 저택에 이디아가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깊이 안도하고 있었다.

 

 

 

“오랜 여정에 피로할 테니 휴식을 취하거라 발터.”

 

 

 

“그전에 어르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터의 목소리는 방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움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카디아...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출장에서 돌아온 아브를 독대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출장의 결과를 듣고, 외지의 정세를 전해 들으며 앞일을 의논하는 늘 해오던 평범한 일과일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과를 전해들은 아브의 눈빛은 발터 못지않게 두려움과 긴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올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아브 뿐이 아니었다.

수행원 모두가 더 나아가 저택의 일꾼, 식솔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일과일 뿐인 일이어야 하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그리고 아브는 그 위화감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저택의 정원 한 곳에 놓인 본적 없는 순백색의 마차가 바로 그것이었다.

금색으로 수놓아진 백룡신의 장식이 빛나는 순백의 마차에는 왕국의 문장이 또렷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데메르바 신학원....”

 

 

 

통곡하듯 쥐어짜내는 아브의 목소리에 모두는 직감하고 있었다.

오늘이 이디아에게 있어 어느 때보다 특별한 생일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디아의 아버지 아브와 할머니 카디야가 중요한 이야기를 한창 진행할 무렵, 이디아는 이미 완전 범죄를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저택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노새 포포에게 마구간으로 알아서 돌아가라고 명령한 다음, 자기는 태연하게 치맛자락에 묻은 넝쿨과 나뭇잎,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자신의 방에 돌아가 문학전집을 읽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디아를 찾느라 사색이 되었던 유모가 호들갑을 떨며 그간의 행방을 추궁했지만, 아윈 때문에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맞이해야했던 이디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하게 둘러댈 수 있었다.

 

 

 

“아윈이랑 저택에서 숨바꼭질했어.”

 

 

 

“아윈을 본 적이 없었는데요! 아가씨!”

 

 

 

“유모도 참. 아윈이 숨으면 아무도 못 찾는 거 알잖아?”

 

 

 

추궁은 이 이상 상대해봐야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모가 결국, 알면서도 져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중요한 건 이디아가 어디서 사고를 쳤느냐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돌아와 있다는 점이니 그 부분에 안도를 하고 유모는 생일 파티를 위한 이디아 치장에 전념하게 되어 첫 번째 위기는 그럭저럭 쉽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곱구나. 이디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난관이 이디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디야 폰 페르젠. 이디아가 가장 무서워하는 할머니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를 보게 되자 이디아는 새 옷을 입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도 잠시, 고양이를 만난 생쥐처럼 주눅 들었다.

물론, 이전 최초의 외출에서도 겪었듯이 할머니가 마냥 무서운 존재인 것은 아니다.

당당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의 이디아는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할머니가 이디아의 행방을 추궁하는 대신, 생일 의복을 칭찬하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고운 모습을 좀 더 일찍 보여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 내려오느냐’

 

 

 

이번만큼은 이디아도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디아는 배경이 ‘금지된 숲’ 이라는 것만 쏙 빼고 그간의 일을 할머니에게 낱낱이 고했다.

아윈이 자신의 선물을 준비하다가 절벽에 떨어질 뻔한 일이며,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간 이디아와 선생이 아윈을 구해냈고, 아윈이 선물을 잃어버려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모두 마친 이디아는 증거로 아윈이 건내 준 조약돌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뜨였다.

 

 

 

“이디아! 이걸 아윈이 구했다고 했느냐?”

 

 

 

“네. 할머니.”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조약돌의 곳곳을 세심하게 살폈다.

 

 

 

“믿을 수가 없구나...”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요정의 꽃을 다시 보게 되다니....”

 

 

 

선생으로부터 건네받은 돌이 보통의 조약돌이 아니라는 것은 이디아 본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은은한 온기를 뿜어내는 분홍빛의 조약돌이 힐로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는 아닐 테니까.

하지만 요정의 꽃이라니 이디아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할머님. 하지만 선생님은 이걸 보고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는걸요?”

 

 

 

세계각지를 여행했고 박학다식한 모험자인 선생이었다.

아윈을 구해낸 다음에도 아윈의 낙서를 보고 요정의 꽃을 알아맞히지 않았던가?

그런 선생이 요정의 꽃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고 이디아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돌이 요정의 꽃이라면, 선생이 아윈이 혼자 남아 찾도록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그야 요정의 꽃 전설을 모르는 모험자는 없겠지. 워낙 유명한 전설이니까... 하지만 꽃이 돌로 변한다는 사실은 아윈의 애비인 카인도 모를게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험가도 알지 못하는 전설!

그런데 이 사실을 어떻게 할머니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해답으로 변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디아의 의문을 알아차린 카디야가 다시금 입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은 돌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지만, 시선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과거의 추억을 더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할미도 아주 옛날엔 모험가였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를 위해 용감한 기사가 절벽을 내려가 꽃을 꺾어 주었단다. 신비롭게 빛나던 그 꽃은 기사의 손안에서 작은 조약돌로 변하고 말았지. 바로 이것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다정하게 이디아의 손에 손을 포개어 돌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방금까지의 추궁은 어디 갔냐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소중히 간직 하거라. 아가야. 꽃도 사람도.”

 

 

 

아리땁고 지혜로운 동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젊고 용감한 기사는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비록 둘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남겨진 이의 기억 속에 영원토록 간직된다.

평소의 이디아였다면, 두 눈을 반짝이며 경청했을 이야기였다.

기사님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할머니는 얼마나 대단한 모험을 했으며 둘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갔을지 등등.. 궁금한 부분을 꼬치꼬치 물으며 낭만에 푹 빠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와 달랐다.

할머니의 옛 사연은 이디아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디아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말은 오직 ‘이건 요정의 꽃이란다.’ 라는 하나 뿐.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며 이디아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고 뒷걸음질 쳤다.

그런 와중에도 이디아의 생각은 흐른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할머님의 말씀대로 요정의 꽃이 여기 있으면, 아윈은 뭘 찾는 거야..?’

 

 

 

또 던진다.

그리고 곧 답을 찾는다.

사실 답은 할머니의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꽃이 나한테 있는데, 아윈이 뭘 어떻게 찾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요란하게 지르면서, 이디아는 마음을 굳혔다.

 

 

 

‘아윈을 데려와야만 한다!’

 

 

 

아윈이라면 포기 없이 지금도 끈질기게 언덕의 어딘가에서 떨어뜨렸을 꽃을 찾아 헤매고 있을게 분명했다.

혹시 모르니 절벽을 다시 기어 내려가 봤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탐색반경을 넓혀서 금지된 숲 구석구석을 찾으러 다닐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디아는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낮이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밤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달랐다.

금지된 숲. 그곳은 낮에도 위험하지만 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윈이 위험해! 지체할 시간이 없어!’

 

 

 

때맞춰 마을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가 이디아를 재촉하게 만들었다.

곧 해가 떨어짐을 알리는 종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로비를 벗어나 뒷문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이디아는 고민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선생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으나 이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가주시는게 제일 좋겠지만, 엇갈릴지도 몰라!’

 

 

 

심부름꾼을 시키건, 엘피르를 보내건 선생만 만나 상황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선생이 숲지기 오두막에 있을지, 아윈의 이모와 생일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아윈의 집에 있을지, 아니면 저택으로 오는 중일지 이디아로선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선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마냥 시간을 버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방금 종이 울렸으니, 이제 일몰까진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디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을 굳혔다.

 

 

 

‘선생님이 계신 곳은 몰라. 하인을 시킬 수도 없어. 내가 직접 가서 데려올 수밖에 없어!’

 

 

 

노새 포포가 좀 고생하겠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 숲에 도착하기만 하면, 조금 늦어 소동이 벌어지더라도 둘 다 아무 탈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디아는 저택 뒷문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급한 마음과는 반대로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저택 복도는 이상하리만치 길었다.

낮에 아윈을 찾아 빠져나갔을 때, 그리고 몰래 돌아왔을 때보다 배로 길어진 것만 같은 좁은 복도를 쫓기는 기분으로 다급하게 걷던 이디아는 돌연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야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적막한 복도에 이디아의 발소리가 아닌, 다른 또 하나의 발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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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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