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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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사막의 결전 - 챕터 8 - (0) 2011/07/26 AM 12:08
케인은 파라에게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일행들이 쉬고 있는 아트마의 주점으로 돌아왔다. 술집 여주인 아트마는 케인일행과는 생면부지의 관계였지만 단골손님인 와리브의 소개로 말문을 텄다. 도착한 뒤 이곳에 여정을 풀 적에, 혼자 살기엔 꽤 많은 나이인데 왜 혼자 술집을 경영하냐는 그의 질문에 안색이 어두워지며 대답을 회피하던 그녀의 태도를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엾은 사람이로군.'

케인이 주점으로 들어설 때 아트마는 마침 가게를 비우고 없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으며 안쪽의 객실로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로 곱게 지어진 복도를 지나 자신들이 묵고 있는 방에 이르렀을 때, 케인은 방안에 벌여져 있는 황당한 모습에 그만 꽥 하고 소리를 질러 버리고 말았다.

"티나야앗!"

"돌아오셨군요."

티나가 담담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었다. 침대에는 팔다리가 꽁꽁 묶이고 입이 틀어막힌 카르마가 신음섞인 인사 비스무리 한 것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돌아오셨군요'가 아니잖느냐! 카르마군은 왜 저렇게 해놓은 거지?"

"아까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묶어 놨어요."

티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한 후 곧 마법책으로 눈을 돌렸다. 케인은 혀를 차며 카르마를 바라보았다. 침대에 결박까지 당한 카르마는 도움을 요청하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강렬하게 보내면서 온몸을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사람을 저렇게 해놓으면 어떻게 하냐? 어서 풀어주자."

"꽤 시끄러울 텐데요..."

티나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케인은 다시금 카르마를 바라보았다. 카르마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고 있었다.

"그럴까...?"

"놔 둬요, 그냥. 밥 먹을 때 풀어 주지 뭐."

"그러자꾸나."

그 후 두 사람은 카르마에 대한 관심을 끊기 시작했고, 작은 침실의 좁은 침대 위에서는 카르마의 '고요속의 외침'이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그 친구가 왔구만."

파라는 늙은 마법사의 혼잣말같은 질문에 깜짝 놀랐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무시한 채, 허연 수염을 기른 채 새빨간 옷으로 몸을 감싼 이 루트 골레인의 마법사는 묵직한 지팡이를 옆에 내려 놓고 사막을 향해 침침한 눈을 돌렸다.

"네? 아, 그래요. 케인이 왔어요."

두 사람은 도시방어벽에 걸터앉아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짧게 대답한 파라는 머뭇거리다가 마법사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해가 저물어 가면서 바람의 열기도 그럭저럭 누그러 들고 있었지만, 동쪽의 모래속에서 무겁게 실려온 바람은 파라의 머리칼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그런데 드로간, 어떻게 케인이 온 것을 알았죠?"

파라가 휘날리는 머리칼을 다듬으며 물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일몰의 시간을 늙은 마법사 드로간과 함께 동쪽 하늘이 보이는 도시방어벽에 앉은 채로 맞이 하곤 했다. 바람에 치솟아 오르는 그녀의 붉은 머리칼은 멀리서는 그대로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였고, 일몰의 그림자에 가려진 그 정열적인 대장장이의 실루엣은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던 경비병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곤 했다.

"뭐, 엘직스에게 들었지."

"윽, 마법같은게 아니군요?"

"뭘 기대했는가?"

"예를 들면 강렬한 감이 느껴졌다던가..."

"'감'이라. 글쎄, 좀 그런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데."

드로간은 벽 밖으로 내어진 두 다리를 어린 아이처럼 흔들고 있었다. 파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주었다. 묵묵히 동쪽을 바라보던 드로간은 품에서 둘둘 말려진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그건 뭐예요?"

"케인한테 줄 것."

탁탁. 드로간은 파라에게 그 종이를 넘기며 다짐을 받듯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팔을 두드렸다.

"열어봐도 돼요?"

"안~돼."

"왜요?"

"그냥."

"뭐예요, 그게?"

"아무튼 안돼."

"치사하게, 그러기에요?"

"내 말은 보지 말라는게 아니라, 열지 말라는 거야. 케인한테 갖다 준 다음에 같이 읽는 건 괜찮아."

"아아, 그렇군요."

파라는 일어서서 엉덩이를 툭툭 털어낸뒤 곧 발걸음을 돌렸다. 몇 발자국 걷지도 않고 그녀는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고, 어스름짙어가는 돌길위를 걷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만이 잠시 남겨졌다 아스라져갔다. 사막의 두 오랜 친구 사이엔 만남의 인사도 없고 작별의 인사도 필요치 않았다. 떠나감과 돌아옴이 있을 뿐. 홀로 남겨진 드로간은 파라가 떠난 뒤에도 일어나지 않고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북쪽에서 비치는 그림자가 완전히 도시를 덮을 때 까지.

"어둠이 다가오는군."

그가 중얼거렸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제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사위는 적막에 잠겨 들었다. 모래가 나뒹구는 소리만이 공간을 메꾸고 있었다. 드로간은 목구멍에 차오르는 가래를 칵 벹은 뒤 거처로 되돌아갔다.

바람은 가벼웠지만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파라는 드로간과 헤어지는 길로 곧바로 아트마의 주점으로 찾아갔다. '서쪽에서 온 신기한 여행객들이 묵고 있는 주점'이란 소문은 이미 도시 전체를 휩쓸고 있었기에 그들의 소재를 찾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다행히도 밤이 다가오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집안으로 돌아가버려 주점은 몹시 조용했다.

"아트마?"

파라가 주점으로 들어서며 조심스레 외쳤다. 곧 카운터에 엎드려 있던 여인으로부터 그에 반응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파라, 늦은 밤에 무슨 일인가요?"

술집여주인 아트마는 검은 조복위에 보랏빛이 감도는 겉옷을 휘감고 있었다. 검은 옷은 얼마전에 죽음의 무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녀의 아들과 남편을 기리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파라는 두루마리를 슬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오늘 서쪽에서 도착한 분들 있지? 드로간이 뭐좀 갖다주라고 해서."

"아아, 안쪽 방에 있어요. 그럼."

아카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몸을 돌려 주방으로 사라졌다. 파라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중년의 미망인의 가슴속에 남겨진 상처는 너무 큰 것 같았다.

그리고 파라는 곧 서쪽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이 묵고 있는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푸하-앗! 내 귀야, 잘 있었니? 안녕? 손, 발아? 너희를 다시 보게 된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 기쁘구나아~!?"

파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채 다 풀리지도 않은 손과 발을 미친듯이 쓰다듬고 있는 시끄러운 남자였다.

"풀어주지 말 걸 그랬나?"

"시끄러워."

"오와아아아아~!!! 자유다! 자유야!"

맹한 얼굴로 투덜거리고 있는 깜장 아가씨, 그리고 데카드 케인. 방 안은 마구 날뛰고 있는 남자에 의해 상당히 난잡해져 있었다. 게다가 세 사람은 파라가 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저어, 저기..."

"카르마 군! 자리에 앉게나!"

"시끄러워."

"우히히히히~키하하하하하~기쁘다~"

파라는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해보았으나 완전히 묵살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

"실례합니다만...

"자자, 묶어놓았던 건 사과하네! 그러니까 앉아, 앉으라고!"

"...시끄러워..."

"끄아아아아~세상끝까지 달려보자~"

..여전히 아무도 듣지 않고 있었다. '희한한 사람들이네.' 파라는 생각했다. 솔직히 좀 시끄럽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

"면목이...없네. 이상한 꼴을 보였으니..."

"아니 뭐, 신경쓰실 필요까지야."

파라가 웃어 넘겼지만 케인은 시뻘개진 얼굴로 카르마를 째려보았다. 카르마는 그런 케인의 시선을 피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에히구, 내 신세야.'

케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됐네. 이렇게 와 주었는데 시끄럽게 굴어서...저 친구가 말일세. 티나가..."

하면서 자연스레 티나를 바라보던 케인은 그녀가 갑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눈초리로 쏘아보는 바람에 '티나가 묶어놓는 바람에...' 라고 이어지던 말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초리는 너무도 명백히 '우우~케인, 케인 때문에 시끄러웠어.' 라는 말을 파라에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같이 카르마를 묶어두자고 동의했던 케인은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무너져내렸다.

'아아, 새파란 후배에게 밟히는 내 신세여.'

하면서, 케인은 모든 것을 자신이 뒤집어 쓰기로 작정했다.

"에...그럼 이제부터는 그 두루마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볼 수 있을까요?"

케인의 표정이 수십가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파라가 말했다. "뭐? 아, 이거? 아, 그래! 그렇고 말고! 아핫하하! 그래, 맞아! 이걸 보자고! 우린 이걸 봐야해! 크아하하하하!"

......

껄껄 웃고 있던 케인은 모두의 싸늘한 눈초리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두루마리를 열었다. "헛흠...뭐, 별다른 건 없군. 그냥 열리는데."

"뭐지? 드로간은 나한테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는데요. 같이 보는 건 되더라도..."

파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케인은 턱을 쓰다듬다가 글쎄, 모르겠군. 하는 표정을 짓고는 두루마리를 쭉 읽어보았다.

"뭐라고 적혀 있어요?"

딴청을 피고 있던 카르마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만, 조용히 조용히. 좀 읽어 봐야 겠으니...음..."

집중하던 케인의 표정은 슬슬 묘하게 복잡해져 갔다. 가만히 옆으로 달라붙어 두루마리를 훔쳐보던 티나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고대문자의 나열을 지켜보다가 머리를 싸쥐고 물러섰다.

"흠..."

그렇게 모두가 침묵하여 침 넘어 가는 소리만 꿀꺽 꿀꺽하고 들리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케인은 소매로 연신 이마를 훔쳐가며 두루마리속에 적힌 내용을 열심히 읽어내려 갔고, 방안에는 갑작스레 불안한 열기가 맴돌고 있었다.

"흠."

마침내 케인이 두루마리를 말았다. "다 읽었네."

...

모두들 다음에 이어질 케인의 말을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

...

"...뭐야? 다들 왜 그러고 있는겐가?"

"말을 해요 말을!"

파라가 외쳤다. 케인은 이마를 철썩 때리며 껄껄 웃었다.

"헛허, 이것 참, 내 정신 좀 봐. 그걸 깜빡 잊었군."

"별로 재미없어요."

"뭐가 적혀 있는데요?"

케인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드디어 모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그러니까 이건...최근에 사막등지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드로간의 일종의 보고서 일세."

"에...그러니까...뭐, 뭐라구요?"

케인은 카르마에게 짜증섞인 눈길을 던졌지만 결국은 한 말을 다시 또 했다. 그러나 잠시 후 파라가 "뭐, 뭐라구요?" 하고 되묻는 바람에 다시 한번 되풀이 해야 했고, 티나가 "나 못들었어요. 다시 한번." 하고 말할 때 쯤에는 붉으락푸르락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끄으으..."

"미안해요, 케인."

"괜찮아요?"

"다신 안 그럴께요."

케인은 갈수록 처참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다른 모두는 즐거워 할 수 있었다.


아, 아아-캬아-아악!


그 떄, 문 밖에서 들려온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모두를 깨어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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