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용사의 편지
- 설곡 정 옥희
열일곱
열여덟
스물남짓
텃밭에서 허리가 휘던 어머니와
알 감자 하나에 허기가 지던
보릿고개 한스런 내 아우와
뽀얀 이빨 드러내며
무 꽃처럼 흐드러지게 웃던 분이,
마을동산 환하게 밝혀주던
고향의 하늘을 사랑하는
착하디 착한 무지랭이 농군의
아들이었습니다
펜 대신 총을 들고
내 어머니와 내 아내
군화에 짓밟히며 소리없이 스러지던
고향의 꽃들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가던 그 날도
오늘처럼 햇살 눈부시고 하늘 푸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지금은 혀도 썩고
귀도 썩고
눈도 썩어
더 이상 썩을 것 없는 뼈만 남아
지명을 알 수 없는
조국 산천에 묻혔습니다
삼천리 방방고곡 백골을 찾아
백발이 되신 내 어머니
슬퍼 마셔요.
조국은 나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이라는
따뜻한 조국의 이름을 압니다.
봉분없는 무덤
잡초 무성해도
백골이 누워 있는 이 곳
고향을 품고 잠든 곳 이기에
오래 전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내 사랑하는 어머니
살은 썩어 거름이 되고
전쟁의 역사는 흘러
평화의 싹을 틔웠습니다.
오늘,
썩을 살 위에 돋아 난
그리움의 촉수
고향의 꽃을 봅니다.
친구여!
사랑하는 것들을 남겨두고
눈물 글성이며 전선을 향하던
나를 잊지 않았다면
내 고향 냉이꽃을
사소하게 지나치지 말아다오
그 꽃에 향기 있다면
내 젊은 날의 꿈이 있다고
부디 기억해 주게나.
호국 보훈의 달 6월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