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Aus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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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밀덕] 플라스틱 폭탄 -1부- (0) 2011/09/11 AM 12:54
불분명하지만 10세기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화약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합니
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가? 에 대해서는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10세기보다 훨씬 이전
에 중국에서 초석과 황등이 어떤 일을 했던가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본다면 화약의 나이
는 더 오래됐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1249년에 영국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 7부의 초석과 각각 4
부의 목탄과 황이 혼합된 것에 대해 기록을 남깁니다.
그가 화약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때쯤이면 우럽인들도 화약에 대해서 알게됐다라는
반증은 되겠죠.


이 분이 만드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돌팔이 약제사 수도사 Berthold Schwarz

13 ~ 14세기에 들어서면 화약이 필요한 전쟁물자의 목록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총포류에
대한 기록이 남겨지게 됩니다.
한편 로저 베이컨의 화약이 화공용에 가까웠다면 좀 더 본격적인 추진제로서의 화약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15세기로 들어서면 이제 화약과 총포가 전장에 당연하게 사용되는 것들로 자리
잡게 되죠.

아, 참고로 현재도 흑색화약은 여전히 사용중입니다.
비록 총포 발사용과 폭파용으로는 아니고 이전과 같은 지위를 얻은건 아니지만 의장대
의 예포용 공포탄, 각종 화공품, 불꽃등으로 살아남아 있고 개중에는 질산칼륨, 황, 숯
이 아닌 아스코르빈산같은 입에 들어가는 물질을 사용하는 놈도 있습니다.


여기서부터의 발전 상황들.

1425
화약을 고운 가루 상태가 아닌 알갱이지게 만드는 작업 - corning - 이 자리잡게 됩니
다.
이 과정은 일부로 축축하게 적신 흑색화약을 틀에 넣고 큰 덩어리(cake라 합니다)를 만
든 다음 이 케이크를 부수어 알갱이 형태로 만든 겁니다.
이렇게 만든 알갱이 화약(corned powder)은 점화약으로 점화시 고운 가루상태의 화약보
다 더 잘 연소됐고 덕분에 총포류는 더욱 효율적으로 발사됩니다.
부차적으로 잘 연소된 화약 덕분에 총포에 끼는 많은 잔재가 그래도 줄어들게 되죠. (
그러나 흑색화약은 아무리 잘태워도 많은 잔재를 남깁니다.)


1540년대
프랑스에서 권총, 머스킷, 대포와 같이 사용 화기에 따라 화약의 알갱이 크기를 규정하
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corning 을 해준 화약을 체로 쳐서 크기별로 골라내는 것이었죠.
이로 인해 권총과 같은 총신이 짧은 화기는 그만큼 작은 알갱이로 이뤄진 화약을 썼고
머스킷은 이보다 더 굵은 화약을 대포는 더더욱 굵은 화약을 사용하게 되죠.
이런 규정된 화약 알갱이로 인해 화기속에서 화약의 연소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며 그만
큼 화기가 터지는 일이 적어집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흑색화약을 제조하며 무연화약에서도 이 때 터득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걸 본다면 단순하지만 굉장한 발명은 한거죠.


1560년대
아마포(linen)나 종이 따위로 화약을 포장하여 대포에 장전하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포병들이 사용중인 장약 자루가 출현한 것이고 덕분에 장전 속도는 더욱 빨라집
니다.


1578
영국에서 화약을 시험하는 장비와 방법이 등장합니다.
그 때까지만해도 그저 소량의 화약을 태우고 그걸 눈으로 보고 어느정도 잔재가 남냐만
확인하는 것에서 좀 더 과학적인 방법이 등장한거죠.
테스트 장비는 무거운 뚜겅이 달린 작은 실린더로 실린더속에 화약을 넣고 폭발시켰을
때 뚜겅이 어느정도 날아가느냐를 보고 화약의 강도를 보는 식이었답니다.


1588
네델란드의 베르겐 옵 촘(Bergen op-Zoom)과 박텐동크(Wachtendonck)에서 벌어진 공성
전중 파열탄(shell)이 사용됩니다.
파열탄은 속이 빈 철제 포탄속에 화약을 채운 것이었고 포탄의 한쪽 끝에 달린 점화약
이 채워진 긴 대롱으로 지연되는 구조였습니다.

대롱(시한신관에 해당)은 14 ~ 20초정도 연소했으며 구포로 발사하면 2000야드까지 날
아갔다 하죠.
일설에 따르면 이 때 네넬란드인들에게 이런 시한 신관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준건 파
르마(Parma) 출신의 이탈리아 탈영병이었다 하죠.

탈영없는 병영 문화, 선진 병영 문화.


1590년대
총에서 화약과 총알이 같이 포장된 탄통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작은 나무통에 1회분의 화약과 총알이 들어간 이건 곧잘 12사도(12 apostle)라 불리게
되죠.
그런데 당시 전투중 30분내에 저 12사도를 모두 다 사용한 경우가 드물 정도였다하죠.


1602 ~ 1604
약간의 충격에도 폭발하는 폭금(fulminating gold)이 독일인 연금술사 요한 퇼덴(Joha-
nn Thoelden)에 의해 합성됩니다.
이 초록색의 물질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폭발물로 금을 왕수
(aqua regia, 염산과 질산의 3:1 혼합액) 처리한 다음 암모니아수로 처리하면
(ClAuNH2)2NH가 얻어지고 이걸 세척하여 건조하면 (OHAuNH2)2NH가 얻어지게 되죠.


1611 ~ 1632
30년 전쟁이 진행중이던 시절이자 스웨덴의 구스타푸스 아톨푸스(Gustavus Adolphus)가
살아있던 시절에 종이 약포(paper cartridge)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종이 약포는 화약과 총알을 종이로 포장한 것으로 그저 총알이 든 쪽의 반대편 부분을
이빨로 물어뜯어 화약을 총구로 부어넣고 총알을 장전하면 된터라 총의 장전 속도를 끌
어올립니다.
그러나 대신에 병사들에게 갈증을 선사하죠. (당시 흑색화약에는 소금처럼 갈증을 유발
하는 초석외에 다량의 염분이 불순물로 함유되어 있었죠.)


1613
독일에서 흑색화약에서 초석의 양을 줄이고 숯가루와 황가루의 양을 늘린 이른바 blas-
ting powder를 사용해 광산의 돌을 폭파시킵니다.
기록상 남겨진 화약의 평화적 사용법중 하나죠.


1627
슬로바키아의 반스카 스챠브리카(Banska Stiavnica, 독일인들은 헝가리의 Schemnitz라
부른)에서 화약을 사용한 채광이 카스파 바인들(Kaspar Weindl)이란 기술자에 의해 사
용됩니다.
광산에서의 흑색화약 사용은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됩니다.
초석은 비쌌고 발파 작업이란 것 자체가 광산의 가스등으로 인해 언제나 위험한 작업이
었는데다 심지어 발파공을 만드는 작업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죠.


1628
폭금은 합성후 무기과 오늘날의 마슐쇼같은 무대의 깜짝쇼등에 사용됩니다.
문제는 항상 그렇지만 금을 쓴다는 것에서부터 돈이 깨질 수 밖에 없었죠.
영국 해군에 고용됐던 네델란드인 코르넬리스 드레벨(Cornelis Drebbel)은 잠수함만 아
니라 잠수함에서 쓸 무기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폭뢰에 가까운 폭발물 torpedo를 만들게 되며 여기에 들어갈 충격 신
관에 폭금을 쓸 생각을 합니다.

참고로 torpedo는 어뢰로 번역되며 쏘면 수중으로 항주하는 그 물건으로 보지만 19세기
때만해도 지금은 기뢰나 폭뢰라 부를만한 물건에도 붙여졌던 표현입니다.


1654
질산암모늄이 독일의 철학자 요한 글라우버(Johann R. Glauber)에 의해 합성됩니다.
(저 때는 철학자라면 오늘날의 과학자를 의미하는 말이었죠.)


1679
광산등에서 사용되던 blasting powder가 프랑스의 미디 운하(Canal du Midi) 공사중 특
히 Malpas 수로 터널을 공사하는데 대량으로 사용됩니다.
저 운하는 당시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가려면 스페인 아래로 내려가 돌아야 했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획된 공사였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하는 일단 강 4개 삽질해본다와는 차원이 다른 이유에서 출발한 겁니다.

Tunnel de Malpas
개나 소나 들고 파면 다 되는건 아니라능.


1684
알갱이 화약의 겉을 매끈하게 다듬고 코팅하는 glazing process가 도입됩니다.
커다란 나무통에 알갱이 화약을 넣고 흑연을 첨가하여 돌려주면 겉이 흑연이 묻혀지며
매끈해지게 되죠.
이렇게 매끈하게 처리된 화약 알갱이는 습기에 더 잘견뎠고 덜 부숴집니다. (이 glazi-
ng을 안한 화약 알갱이는 습기를 먹었다 다시 마르면서 부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1738 ~ 1742
이탈리아에서 화약을 테스트하는 다른 방법이 개발됩니다.
지금은 closed bomb test라 부르는 방식에 거의 가까운 것이었죠.
그리고 영국의 수학자 벤자민 로빈스(Benjamin Robins)에 의해 이 장치는 더욱 개선됩
니다.
한편 로빈스는 쓸만한 크로노그라프(chronograph)도 만들었으며 탄도 진자(ballistic
pendulum)라는 것도 만듭니다.
탄도 진자는 지금보면 얘들 장난같지만 이걸 사용하여 로빈스는 더욱 고속인 발사체가
저속인 발사체보다 더많은 저항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탄도학이 그냥 나온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이게 탄도 진자

1784 ~ 1788
프랑스의 클로드 루이스 베르톨레(Claude Louis Berthollet)에 의해 염소산칼륨의 순수
한 형태가 분리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물질이 폭발물로 쓸만하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는 1788년에 흑색화약 대신 염소산칼륨이 포함된 화약을 개발합니다.


1800
뇌홍(mercury fulminate)이 영국의 에드워드 하워드(Edward Howard)에 의해 합성되죠.


1807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이던 알렉산더 포시스(Alexander Forsyth)가 뇌홍을 사용한
새로운 격발기구를 선보입니다.

일설에는 사냥에 나갔다 부싯돌 격발기구의 불발과 느려터짐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자
열받아 개발했다하죠.
에, 뭐 서툰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는 말도 있긴 합니다만서도.

어쩌건 그는 이른바 향수병(scent bottle)이라 불린 독특한 형태의 격발기구를 만듭니
다.
이 향수병 속에는 작은 공이와  뇌홍, 염소산칼륨과 숯가루의 혼합물을 은단알만하게
뭉친 알맹이가 들어가며 공이치기가 공이를 치면 뇌홍이 든 알맹이가 터지면서 그로인
해 총이 격발되는 식이었죠.
곧 이걸 특허내긴 하는데 특허를 방어하는데는 실패합니다. (덕분에 이 목사님은 말년
을 소송에 다날렸고 총의 격발방식은 완전히 변하게되죠.)


1825
역청탄으로 코크스를 만들면 나오는 폐기물이던 콜타르에서 벤젠, 나프탈렌, 크레오소
트(creosote)등이 본격적으로 분리됩니다.
이들 화합물은 얼마안가 대부분이 화학공업과 폭약 제조등에 사용되게 되죠.


1832 ~ 1838
진한 질산과 황산으로 여러가지 물질들이 니트로화 처리됩니다.
심지어 종이까지도 니트로화되어지며 테스트되죠.
그리고 이들중 몇몇은 지금도 여전히 폭발물로 사용중입니다.

화약류도 흑색화약처럼 혼합물(mixture / composite) 형태와 저 니트로화된 물질들처럼
화합물(compound) 형태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화약은 혼합물이 아닌 화합물의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되죠.
물론 혼합물이건 화합물이건 화약이라 불리려면 적당한 외부 충격에 산소등과는 관계없
이 알아서 반응해야 합니다.


1841 ~ 1843
피크린산염들이 염료만 아니라 폭발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게 발견됩니다.


1845
스위스 바젤 대학의 숀바인(Christian F. Schoenbein)에 의해 면화약(guncotton)이 합
성됩니다.
그는 오늘날 니트로슈거라 불리는 당분을 니트로화하는 것도 해보게 되죠.


1846 ~ 1847
이탈리아의 소브레로(Asconio Sobrero)에 의해 니트로글리세린이 합성됩니다.
소브레로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 그가 심혈관쪽의 일부 질환이 있었고 마침 실험중 흉통을 느꼈을 때라면 어쩌면
의학사가 약간 달라졌을 수도 있을겁니다만 그가 건강했던지 니트로글리세린을 맛본다
음 불쾌감과 두통을 느낀 걸로 끝나버리죠.
그리고 소르레로는 만니톨(mannitol hexanitrate)도 합성합니다만 이게 폭약으로 사용
될 수 있다는건 더 지나서 러시아에서 발견됩니다.


1850
미국 병기국에서 포강내 압력을 측정하는 일련의 실험들이 진행됩니다.
이 와중에 로드맨(Thomas J. Rodman)이 구리 블럭속에 든 장약을 터트렸을 때 압력을
테스트하는 방식을 개발하죠.
한편 로드맨은 포신을 뜨거운 금속으로 두르고 식히면 식으면서 수축한 금속이 포강쪽
으로 응력을 발생시켜 포신 강도를 증가시키는 rodman process를 개발합니다.


1853
니트로글리세린을 산화마그네슘(magnesia, 고토)에 홉착시켜 쓰는 방법이 러시아의 V.
F. Petrushevskii에 의해 개발됩니다.
그리고 그가 개발한 방법은 시베리아의 금광 채굴에 사용되게 되죠.


1857 ~ 1858
칠레초석(질산나트륨)의 광산이 칠레에서 발견됩니다.
덕분에 아메리카 지역의 초석 채광이 활발하게 진행되며 미국에서는 듀퐁(Lammont du
Pont)이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칠레초석을 사용한 흑색화약을 만들게 됩니다.

곧 미국에서는 질산칼륨이 들어간 흑색화약을 blasting powder A라 부르게되며 질산나
트륨이 들어간 것을 blasting powder B라고 부르게 되죠.
blasting powder B는 질산나트륨의 조해성 때문에 습기를 곧잘 먹는다는 점이 문제였지
만 발파용으로는 이쪽이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쩌건 듀퐁은 그 후로 미군에 화약을 납품하게 됐고 아시다시피 지금은 초거대 화학회
사가 됐죠.

2007 ~ 현재까지 별 순위 변동이 없는 세계 10대 화학회사 (석유화학 포함)
1     BASF
2     Dow Chemical
3     ExxonMobil
4     Bayer
5     Shell
6     INEOS
7     Sinopec
8     DuPont
9     Total
10     SABIC
LG 화학은 30위 입니다.
단, 이건 매출 순위고 분야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1860
로드맨(T. J. Rodman)이 이번에는 대포의 장약을 높이 1인치의 육각기둥 형태로 만듭니
다.
그리고 여기에 여러 개의 점화구멍과 흠을 내어 연소 시간에 따라 가스 발생이 일정하
게 혹은 증가하는 식으로 만듭니다.
이런 일부러 모양을 만든 장약 덕분에 대포는 더 먼거리로 포탄을 쏠 수 있게 되죠.


현대적인 다공형 장약. (미국제)
왼쪽은 16인치 함포용, 오른쪽은 105mm 포용.


1863
TNT(trinitrotoluene)가 독일의 빌리브란트(J. Willibrand)에 의해 합성됩니다.
그런데 TNT는 등장하자마자 폭약으로 사용되지는 못합니다.
거의 30년이상을 염료 생산의 중간 물질정도로 사용되죠.


1862 ~ 1866
노벨(Alfred Bernard Nobel)에 의해 상업적인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이 설립되고 가동됩
니다.


1865
영국의 아벨경(Sir Frederick A. Abel)에 의해 니트로셀룰로오스의 정제방법이 개발됩
니다.
그리고 정제된 니트로셀롤로오스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만드는 방법도 개발됩니다.
이 시기만해도 이 니트로셀룰로오스는 총포의 추진제외에 폭발물로의 사용도 타진되던
때입니다.


1865
프러시아의 슐체(Schultze)에 의해 무연화약이 발명됩니다.
오늘날 bulk powder라 불리는 것의 일종으로 무연 화약을 총포 발사용으로 사용한 비교
적 빠른 예입니다.


1866 ~ 1867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노벨에 의해 발명되죠.

그리고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기폭하기 위한 새로운 신관도 개발합니다.
이 물건은 관모양으로 다이너마이트에 들어가는 부분에는 뇌홍이 들어있는 뇌관이 박혀
있고 뇌관은 흑색화약이 들어간 지연요소(도화선 혹은 관)에 연결됩니다.
지연요소에 불불 붙이면 일정시간 동안 타들어가다 뇌관에 불을 붙이고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게 되는 식이었죠.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도 몇종으로 다시 구분됩니다.
위의 규조토를 사용한건 혼합 다이너마이트(composite dynamite)의 한 종류이며 니트로
글리세린 75에 규조토 25 정도를 혼합하여 만들죠.

지금은 이 규조토 사용 혼합 다이너마이트를 사용안합니다.
규조토는다이너마이트의 부피와 무게를 증가시키면서 폭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홉
착제 역활 밖에 안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걸 해결해보자해서 나온게 straight dynamite라고 질산나트륨, 나뭇가루, 탄
삼칼슘이나 필요하다면 황을 혼합한 것이 등장합니다.

이외에 질산암모늄을 홉착제로 사용한 ammonia dynamite도 나오게 되죠.

한편 다이너마이트는 미칠듯이 추운 날씨에서 규조토에 홉수된 니트로글리세린이 얼고
세어나오기도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니트로글리세린보다 어는점이 낮은 니트로글리콜을 사용한 것도 등장하죠.

더하여 어린이 위인전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신물나게 사용됐다는 식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만 전쟁 사용보다 상업적 판매가 더 성행합니다.
전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대놓고 쓴 곳은 미국이 잠시였고 대부분은 다이너마이트가 아
닌 다른 새로운 폭약으로 갈아탑니다.


1868
영국의 화학자 E. A. Brown이 면화약을 뇌홍으로 폭발하는 실험을 합니다.
그리고 젖은 면화약이 적은 양의 마른 면화약에 의해서도 폭발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됩
니다.
그는 뇌홍 --> 마른 면화약 --> 젖은 면화약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만든거고 이건 오늘
날 기폭제 --> 전폭제(booster) --> 폭약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기초를 깐 셈이었죠.

한편 이 발견 덕분에 해군의 기뢰에 사용되던 면화약을 젖은 상태로 둠으로 비교적 안
전하게 기뢰를 보관할 수 있게 되죠. (니트로셀룰로오스의 가수분해 문제를 일단 잊어
버린다면 말입니다)


1871
스프렝겔 폭약이 독일출신의 영국인 스프렝겔(Hermann Sprengel)에 의해 개발됩니다.
이 폭약은 염소산, 니트로화물이나 질산등의 산화제 역활을 할 물질과 연료 역활을 할
니트로나프탈렌이나 벤젠등으로 혼합된 것으로 사용 직전에 혼합하여 쓰는 식이었죠.
어떤 의미에서는 로켓 추진제의 초기 버젼을 만든 셈입니다.
한편, 스프렝겔은 그저 염료로만 사용되던 피크린산염이 폭약으로 쓸 수 있다는 점도
다시 확인합니다.


1875
영국에서 폭발물법(Explosives Act)이 시행됩니다.
버밍헴에서 벌어진 폭발사고로 53명이 목숨을 잃자 내놓은 법으로 폭발물 제조 설비가
갖춰야할 안전 규정과 민가 지역에서의 제한등이 추가되게 됩니다.
덕분에 폭발물 제조시 사고로 인한 인명 손실이 줄어들게 되며 이 법안은 다른 곳에서
도 참고됩니다. (영국법이 여기저기 뭔가를 먼저 시도해본게 좀 된다하죠.)


1875
교질 다이너마이트(gelatine dynamite)가 노벨에 의해 개발, 특허 신청됩니다.
니트로글리세린을 약면약(니트로셀룰로오스)으로 콜로이드 상태가 되게한 것으로 니트
로글리세린이 90% 미만 40%이상 들어간 gelatinous dynamite와 니트로글리세린이 90%이
상인 blasting gelatin이 여기에 속합니다.


1882
갈색화약(brown powder) 또는 코코아 가루(cocoa powder)가 독일에서 화포의 장약으로
개선됩니다.
갈색화약은 흑색화약과 조성이 비슷하나 완전히 탄화된 숯가루 대신 덜 탄화된 목분을
사용합니다. (독일 버젼은 호밀 지푸라기를 덜 탄화시켜 사용.)
흑색화약보다 느리게 타는터라 연소속도 조정에 사용되며 대신 마찰에 민감하다는 문제
가 있었죠.
곧 이 독일 방식은 미국에서도 사용되며 미서전쟁 당시 사용된 장약중 절반 정도가 갈
색화약이었다 하죠.


1883 ~ 1884
독일의 막스 폰 두텐호퍼(Max von Duttenhofer)에 의해 덜 탄화된 목분을 니트로화하는
방식으로 니트로셀롤로오스가 포함된 발사약이 개발됩니다.
이건 곧 독일군에 의해 채택되죠.

한편 이 두텐호퍼는 후일 다임러(Daimler)와 마이바흐(Maybach)의 엔진공장에 제정적
지원을 하기도 하며 제펠린을 지원하기도 하죠.


1884
프랑스의 Paul Vieille에 의해 본격적인 무연화약이 개발됩니다.
백색화약(Poudre B)이 탄생한거죠.


1884 ~ 1885
오스트리아의 마하(Ernst Mach)와 잘허(Peter Salcher)에 의해 고속 촬영 카메라를 사
용한 탄도학 실험이 실시됩니다.


1885
질산암모늄을 사용한 암몬풀퍼(Ammonpulver)와 아미드풀퍼(Amidpulver)가 독일에서 개
발됩니다.
무연화약보다 저렴하면서 성능은 무연화약과 비슷하고 연소온도는 낮은 꽤 괜찮은 물건
이었으나 질산암모늄의 결정상이 온도에 따라 변하고 그에 따라 부피가 변해 장약으로
쓰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 암몬풀퍼는 1차대전중 독일군에 의해 조금씩 사용되긴 하나 그렇게 환영받지는 못했
다죠.


1885
뉴욕항의 헬 게이트(Hell Gate)에서 34,000kg의 다이너마이트와 니트로벤젠을 홉수시킨
11,000kg의 염소산칼륨으로 Flood Rock이라 불리던 암초 하나를 날려버립니다.
그 때까지 이뤄진 것중 최대의 발파작업이었다죠.


요즘같으면 환경 보호 단체에서 난리나겠죠.


1885 ~ 1888
프랑스의 튀르팽(Eugene Turpin)에 의해 피크린산을 사용한 멜리나이트(Melinite)가 개
발됩니다.
피크린산은 분말상으로 만들어 압축하면 감도가 지나치게 민감해서 탈이었고 녹여서 틀
에 부으면 너무 둔감해져 기폭이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폭약으로 사용되지 못했었죠.
그러다 튀르팽에 의해 포탄속에 녹은 피크린산을 부어넣고 이걸 분말상의 피크린산을
압축한 전폭약(booster)로 기폭하는 방법이 개발됩니다.

프랑스의 새로운 폭약에 대한 이야기는 곧 각국에 퍼졌고 영국은 튀르팽에게서 제조법
을 얻어내어 리다이트(Lyddite)를 개발합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당시에 쓴 시모제 화약도 피크린산을 쓴 폭약입니다.

교훈: 과확자와 기술자, 하여튼 공돌이들에게 돈 좀 제대로 제때 주셈.
나중에 기술들고 날랐다고 욕하지 말고.


1888
미해군 어뢰창의 먼로(Charles E. Munroe) 교수에 의해 성형작약으로 발전될 먼로 효과
(Munroe effect)가 발견됩니다.

먼로 효과: 치마속에 든 것을 확인하고 싶어지는 효과 일리가 없잖아?




1888
노벨에 의해 니트로글리세린이 포함된 복기 추진제(double-base propellant)인 발리스
타이트(Ballistite)가 개발됩니다.


1888 ~ 1889
영국에서 니트로글리세린을 사용한 복기 추진제 코어다이트(Cordite)를 개발합니다.


1889 ~ 1890
독일의 화학자 쿠르티우스(Theodor Curtius)에 의해 하이드라진(hydrazine)과 아지드화
물(azide)이 연구되며 그의 연구는 뇌관용 기폭제에 적용되게 됩니다.


1895
액체산소 폭약이 독일의 린데(Karl von Linde)에 의해 개발됩니다.
이건 액체산소속에 다공성 주머니에 담긴 숯가루를 넣은 것으로 광산등에서 곧잘 사용
됩니다.


1896
스웨덴의 보포스(Bofors)에서 여러 겹의 무연화약을 층층이 적층시켜 장약 입자를 만드
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겉부분의 무연화약층은 느리게 연소되고 속으로 갈수록 빨라져서 연소특성이 중성 혹은
증가되는 장약을 만들 수 있게 된거죠.


1897 ~ 1898
염소산 혹은 과염소산염에 피마자유와 니트로화물을 혼합한 체다이트(cheddite, 혹은
세디트)가 영국의 스트릿(E. Street)에 의해 개발됩니다.
간혹 체다이트는 Chedde라고 불어식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완성된 체다이트를 비교적
빨리 도입해서 제조하고 판매한게 프랑스라)


1899
RDX 혹은 cyclonite나 hexogen이 독일의 헤닝(Georg Friedrich Henning)에 의해 합성됩
니다.
그런데 이 물질 역시도 처음에는 폭약으로 사용이 고려된게 아니라 의약품에 관련된 쪽
으로 연구됩니다.

그러다 1920년대 들어서 영국에서 폭약으로의 사용이 연구되며 덕분에 Research Depar-
tment eXplosive의 약자를 따서 RDX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죠. (다른 이설도 존재)

그 후로는 TNT를 대신하는 군용 폭약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죠.
영국등에서는 RDX 또는 사이클로나이트(cyclonite)라 불리며 독일어권에서는 헥소겐(h-
exogen), 이태리등에서는 T4라 불립니다.


1899
독일에서 폭약에 알루미늄을 혼합하는 방법이 개발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암모날(Ammonal)로 질산암모늄에 숯가루, 알루미늄 분말을 혼합한 것이
죠.


1900
영국군의 무연화약 코어다이트가 보어전쟁에서 높은 열과 과도한 침식 현상을 보여줍니
다.
영국군은 이 때문에 코어다이트의 성분비를 변경하게 되죠.

한편 리다이트 폭약이 충전된 포탄이 폭발은 했지만 확실하게 폭약이 반응하지 않아 위
력이 감소되는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원인은 잘못 만들어진 신관으로 판명됩니다.


1900
황산과 발연황산(oleum)의 접촉법(contact process) 제조법이 독일의 Badische Anilin
& Soda Fabrik에서 개발됩니다.
연실법(chamber process)에 비해 황산 제조 비용과 순도가 높으며 덕분에 화약 제조에
서도 기초물질의 확보에 길이 트인 셈이죠.

아, 저 Badische Anilin & Soda Fabrik도 지금 있는 회사입니다.
저 위에 듀 퐁에서 세계 10대 화학회사에서 BASF가 바로 이 회사죠.


1900
전기 뇌관이 개발되어 상용화 됩니다.


1901 ~ 1904
독일에서 TNT의 3단제조법(three step process)이 개발되고 TNT의 생산이 증가됩니다.
그리고 TNT는 1902년 이후로 독일에서 포탄 및 공업용 폭약의 기본이 되죠.
물론 이 방법은 다른 나라에도 알려지며 곧 TNT가 폭약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죠.


1902
도폭선(detonating cord)이 프랑스에서 개발됩니다.


1905
질산전분(nitrostarch)을 다른 니트로화 폭약(TNT나 다이너마이트같은)의 겉에 발라주
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TNT등은 피부 접촉을 통해 홉수될 경우 니트로글리세린처럼 두통을 일으켰고 질산전분
은 이런 불쾌한 일을 막아줍니다.

단, 이 방법은 완성품에 대한 이야기지 제조중에 발생하는 문제와는 별개였습니다.
덕분에 테트릴 공장에 근무한다든지 하면 두통과 피부가 노란색으로 변색된다든지 하는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했다하죠.

특히 이 경험은 1차대전과 2차대전중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기억될만한 것으로 남기도
합니다.
남자가 떠난 탄약 공장은 여성 노동자로 채워졌고 그 이후 여성의 참정권과 권리 획득
에 탄약 공장에서 일한 '카나리아'(피부가 노랗게 변했다고)들과 같은 여자들이 있었다
는건 부정못할 사실이 되죠.

'948,000'
--- 1918년초 영국의 탄약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 숫자.


1904 ~ 1906
무연화약의 폭발을 막기위한 안정제(stabilizer)에 대한 연구가 진행됩니다.
또한 무연화약을 진공관속에 넣고 약하게 가열하여 얻어진 가스를 분석함으로 안정도를
확인하는 방법이 개발됩니다.


1906
러시아에서 뇌홍보다 저렴한 아지화납(lead azide)를 사용하는 뇌관이 사용됩니다.


1907
프랑스는 전함 레나(lena)를 폭발로 잃습니다.
그리고 곧 해군 함포용 장약(poudre B)의 안정제로 디페닐아민(diphenylamine)이 사용
됩니다.


1907
dinitroacetin과 dinitroformin같은 글리콜과 에스터 혼합물들이 다이너마이트의 부동
제(anti-freezer)로 사용하는 방법이 이탈리아에서 개발됩니다.
그 전만해도 다이너마이트는 추운 날씨에서 속에 든 니트로글리세린이 얼어버린다는 문
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스웨덴등에서 몇가지 방법들을 고안합니다.


1908
프랑스에서 개발된 도폭선(cordeau detonant)은 흑색화약을 쓰다가 TNT를 쓰는 버젼이
탄생합니다.
TNT 도폭선은 초당 4,880m(= 16,000 ft)의 속도로 폭굉합니다.


1909
Dunnite 혹은 explosive D라 불리던 피크린산암모늄이 미해군의 AP탄용 작약으로 사용
됩니다.


1909
니트로벤젠과 같은 둔감하고 안정된 방향족 니트로화물(low-nitrated aromatic
hydrocarbon)이 광산용으로 자주 사용되게 됩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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