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퍼필로우 MYPI

템퍼필로우
접속 : 2245   Lv. 52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23 명
  • 전체 : 126860 명
  • Mypi Ver. 0.3.1 β
[잡담] 감춰진 과제, 인류의 노화 (0) 2019/09/09 AM 12:00

감춰진 과제, 인류의 노화

 

 

 

세계에서 벌어지는 많은 현상들의 근원은 노화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고찰할수록 인류가 늙어가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종 자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선진국의 자국주의화. 이는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을 걱정하는, 그런 늙은 시대임을 방증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기록은 불완전했습니다. 불타거나 잃어버리거나 왜곡되었어요. 그래서 역사가 온전하게 기록되는 일이 적었습니다. 심지어 불완전한 기록조차 기득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교육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사람들은 성숙해질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늙을 수도 없었어요. 늙은 건 언제나 기득권이었습니다. 교육받은 기득권은 대대로 물려받은 가문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늙어갔습니다. 과거에 종속되고 과거에 휘둘렸어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선조가 만들어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니 늙을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그러니까 부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나이서부터 가질 것보다 잃을 것을 걱정하게 되는 늙은 상태로 시작되는데 어찌 부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득권의 대물림은 부와 함께 늙음도 물려주고 있는 겁니다. , 참고로 부패의 순화어는 썩다입니다.

 

그런 기득권의 노화도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해 매번 커다란 변혁을 겪어왔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었어요. 전쟁이나 자연재해는 끔찍합니다. 있어선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인류는 젊음을 유지해왔던 겁니다.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과거의 늙음을 물려받지 않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무기의 발전이 부른 평화는 온전하게 유지 중에 있습니다. 치열한 다툼조차 온건하게 무역전쟁이란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어요.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사상이 연결되는 시점에서 민의에 어긋나는 전쟁은 있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기득권만 늙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 역사를 물려받아 동시에 늙어가고 있어요.

 

평화와 자유와 평등은 올바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인류의 노화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에게 커다란 과제를 알려주게 됩니다. 평화와 자유와 평등은 필요합니다. 따라서 전쟁 없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간단히 과거에 종속되지 않으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젊음을 유지하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는 소중합니다. 과거가 있기에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그러한 장점도 버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과거에 종속되지 않으면 됩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어떻게 접해야 하는 걸까요? 과거사로 촉발되었기 때문에 과거로 접해야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로 끝이 났습니다. 지금 일본의 잘못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습니다. ‘현재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것. 정확히 말해, 표리부동한 사과로 한쪽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한쪽은 사죄피로를 불러일으켜 갈등을 부추긴 것. 이것이 지금 현재 일본의 잘못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일본의 태도도 단순히 그들이 늙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지금 늙었습니다. 이건 비하용이 아니라 냉정한 평가입니다. 인간은 늙어갈수록 성숙해지고 체계적이게 되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닌데 대체로는 그렇습니다. 대신에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수동적이게 됩니다. 그러한 현상을 그대로 닮은 것이 일본입니다.

 

정치는 경쟁이 죽었고 경제는 도전이 죽었고 사회는 변화가 죽었고 문화는 흐름이 죽었습니다. 예컨대 사회의 경우, 매뉴얼을 통해 체계적이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수동적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늙었다는 겁니다. 문화를 봐도 자국의 과거문화의 우수성만 설파하고 있는 시점이죠. 닌자나 사무라이나 기모노나 자기들 문화를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니까 문화도 늙었습니다. ‘현재문화를 새롭게 만들 생각이 없게 됩니다. 새로운 흐름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늙었기 때문에 과거의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를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노화는 이런 행동을 야기합니다.

 

물론 이번 갈등이 무조건 좋지 못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정치와 법조계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경제가 이번에 변화를 통해 일부 젊어지고 있어요. 이러한 현상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추후 이익으로 돌아올 거라 확신합니다.

 

, 시간이 없네요. 사실 좀 더 잘 써보려고 했는데 너무 늦은 밤에 시작해버렸군요. 나중에 좀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시도 나중에 정리해보죠. 그럼.

 

---

 

내일은 쓸지 안쓸지 모르겠네요. 가능하면 써보겠습니다.

 

적자생존, 전범기, 인재와 자연재해, 가상화폐, 한국정치, 호불호, 악의, 만족

 

쓰고 싶은 거 아무거나 씁니다.

 

그럼 또

신고

 
[잡담] 세계의 노화 (2) 2019/08/30 PM 11:48

세계의 노화

 

 

 

세계에서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평화 속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생존율 증가와 사회의 발달로 인한 출산율 저하가 고령화 사회를 불렀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세계의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에 이론은 없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과학과 사회의 발달을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건 자유를 위해 원시인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그렇다고 노화현상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사회가 늙게 되면 다방면에서 악영향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노화를 방치하면 변화가 없고 활력이 없는 상태에서 천천히 죽어갈 것입니다.

 

한 때 우수했던 나라들이 쇠퇴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저는 그 이유에 대해 감히 말하건대, 국가가 노화를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 현상 중 하나가 기득권의 무변화입니다. 기득권이 부를 독점하니 활력을 잃게 되는 거지요. 기득권은 뭘 해도 부를 유지할 수 있고, 비기득권은 뭘 해도 부를 얻을 수가 없어지면, 노력의 의미가 상실되어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 국가. 늙어버린 국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든 사회든 실제 연령이나 역사와 관계없이 늙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본디 인간의 역사는 혼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환란을 겪어왔었지요. 그 비극들은 인류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부작용으로 인류의 노화를 방지하기도 했었습니다. 인류가 속한 사회가 늙기 전에 사회가 파탄이 나서 새롭게 사회를 만들었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가들은 제대로 늙어본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긴 평화 속에서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대책들이 제대로 나온 적이 없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전쟁이 많아 평화가 없던 나라들은 유래 없는 평화 속에서 국가의 노화를 어떻게 방지해야 할지, 아니 노화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있는 건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겪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조상을 보십시오. 오랜 세월 왕을 모시며 평화롭게 있다 보니 사회가 늙어 쇠퇴해버렸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사회 전체가 전통 규율 따위에 얽매이며 개화에도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급진개화파는 엘리트적인 실수를 저질러 개화를 늦추기도 했습니다. 민중의 의향을 고려치 않고 갑신정변을 일으켰지요. 그 실패의 원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민중의 설득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는 독재건 민주건 민중의 의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노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최근까지는 노화를 막지 못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천천히 늙어가고 있었어요. 다행히도 최근에 정치적, 법률적 대격변이 일어날만한 사건을 겪을 덕에 잠시 노화를 늦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대로 사회가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좀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회의 노화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균 연령만으로 사회가 늙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노화는 변화의 끝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연령이 높다는 것만이 아닌, 변화를 싫어하는 시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이익이든 손해든 변화를 일으켜야 사회의 노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노화를 막거나 늦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하지요. 많은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있는 국가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게 국가를 늙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저 또한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좋아합니다만, 그것을 부각시킬수록 국가가 과거로 향하게 되어 늙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국가의 역사와 문화는 현재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역사와 문화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나, 그것은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되기 위한 본받음이나 반성을 목적으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현재와 과거를 결부시키지 마십시오. 그게 국가의 노화를 부르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기준은 현재와 미래에 두길 바랍니다.

 

기득권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의 노화를 방치하면 다시 한번 국가가 쇠퇴하여 치욕을 겪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득권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기 전에 사회의 노화를 방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부를 분배하여 공정한 경쟁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사회의 젊음을 만들어 국가를 융성하게 해 기득권의 부도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특정 기득권을 위해 국가의 노화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빈부, 성별, 성향, 지역, 인맥 등 관계없이 공정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젊음을 유지하여 노화를 늦추거나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 연령이나 역사와 관계없이 변화와 도전을 바라는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쇠퇴했던 시기, 그리고 지금 쇠퇴하는 국가들 전부 늙어서 그런 겁니다.

 

 

 

지금 세계는 이런 것 같습니다. 선진국은 늙어가고 있고, 후진국은 아직 국민들이 인권을 쟁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인류가 걱정해야 될 문제 중 순위 권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인류의 노화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노화현상은 일어날 겁니다. 자유 평등 정의 행복 등 그런 것의 근원이 되는 활력. 젊음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

요즘 포탈 기사를 보면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네요. 입맛에 맞는 말이라고 무조건 받아드리는 건 위험할 것 같습니다.

 

 

그럼 또.

신고

 

kjh1208    친구신청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woodspoon    친구신청

사회 고령화,부패, 양극화,그리고 엘리트 주의 등등을 인간의 노화에 연관하여 얘기하셨는데 너무 붕떠있고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이해가 안되네요
[잡담] 약쟁이, 거짓된 우월감 (0) 2019/08/29 PM 11:48

약쟁이, 거짓된 우월감

 

 

 

종종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외국인들이 당황할만한 음식이름은? 그건 마약이름이 붙은 음식이라고 하더군요. 마약떡볶이라던가, 마약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중독성 있는 맛을 보장하는 음식이라는 거죠. 중독성 있는 매운 맛이라던가 말이에요. 사실 전 그렇게 좋게 보는 이름은 아니에요. 마약을 좋게 보지 않는 저로서는 어쩐지 불쾌한 감정이 느껴질 정도죠. 그런데 그렇게 마약이란 말이 가볍게 취급될 수 있는 건 어쩌면, 지금까지 마약청정국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구하기 쉽지도 않고, 구하려는 사람도 적으니, 그에 대한 폐해가 사회적 이슈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이름을 지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 들어 마약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올해에는 무려 마약청정국이 아니게 되었다고 국가에서 인정까지 했더군요. 그만큼 마약수요가 많아졌다는 의미 같아요. 글쎄요. 어떤 이의 의견에 따르면, 마약 접근이 쉬운 외국에서 즐기던 이들이 한국으로 오면서 수요가 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좋지 못한 문화가 악영향을 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다문화가 아닌 다인종을 주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인종도 한국인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흔히 특정 종교의 테러리즘 때문에 난민 아니, 이민조차 저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다문화가 아닌 다인종 사회가 되어 한국사회에 편입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만 한국인으로 인정하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해요.

 

어쨌든, 원래부터 즐기던 이들의 수요가 부르는 마약은, 처음부터 깐깐하게 입국을 허가해야 할 것 같아요. 뭐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하지 않았다면 새롭게 하고, 하고 있었다면 좀 더 강화해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최근에 마약사건이 많잖아요. 이번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어떤 외국인이 미친 양의 마약을 한국에 들여오다가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예요. 나 참. 어딘가 수요가 있어서 그렇게 많은 거겠죠. 직접 팔거나 해외로 다시 팔거나.

 

 

 

마약이 어떤 건지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굉장한 쾌락을 주기 때문에 즐기고 중독되고 의존하게 되는 거겠죠. 그렇게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서 국가에서 막고 있는 거고요. 그런데 굉장한 쾌락을 주다 보니 이상한 자기합리화로 마약 반대에 반대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들 해요. 해외에선 마약이 서브컬쳐로 유행하고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특히 특정 음악 장르를 즐기는 이들이 주로 그런다고 해요. 쿨 하다거나 하면서 즐긴다고 하네요. 어떤 음악인은 이런 소리도 하더군요. “대마초는 신의 선물이다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더군요. 어떤 예술가는 마약을 해서 예술적 영감을 얻으려고 했다고 해요. 마약이 뇌에 영향을 끼치니까 현실에서 일탈해서 새로운 감각을 느낌으로써 특별한 예술적 영감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그런 것이 이해가 안됐어요. 왜 마약 하는 것을 특별하게 여길까요? 자유의지를 약에 빼앗기는 것 아닌가요? 뭔가 다른 걸 하려고 해도, 약 생각밖에 들지 않아, 약에 지배 받는 삶을 살 텐데요. 자발적 노예화죠. 그러니 그건 쿨 한 게 아니에요. 노예가 쿨 한 건 아니잖아요. 특히 자발적 노예는 더더욱. 그건 개돼지죠. 예술적 영감도 마찬가지에요. 왜 약으로 그걸 얻으려고 하지요? 스스로 미칠 줄도 모르나요? 이성적으로 미칠 줄을 몰라서 약에 의존하나요? 스스로 미치는 법을 알려줄게요. 극한 상황을 겪어보세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흐려질 정도의 극한 상황에 닥치면 상상친구를 만들어낸다고 해요. 또는 사막에서 물 없이 헤매다 보면 정신 나가서 신기루를 본다고 하지요. 어쨌든 극한 상황에 닥치면 미칠 수 있으니까, 굳이 예술적 영감이 필요하면 극한 상황에 도전해보세요. 마약보단 낫겠죠. 등산이나 사막횡단이나.

 

 

 

방송매체서 담배를 멋있게 포장해서 청소년 흡연율이 증가했다는 말이 있지요.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뭔가 멋있고, 어른스럽고, 일탈한 것 같고, 특별해 보이고. 다소 유치한 감성으로 시작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우스개 소리도 있잖아요. 폼을 잡으며 담배 피면서 너는 이런 것 피지 마라하면서 비흡연자를 깔아보는 걸 풍자하여 조소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죠.

 

현재 한국에서 새롭게 마약을 즐기는 이들도 이런 길을 걷는 것 같아요. 뭔가 특별해 보이니까 하는 거겠죠. 그러니까 특정 장르 음악인들이나 재벌들이 폼 잡으며 마약 하다 걸리죠. 정말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해외에서 가난한 국가에선 고통과 절망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걸 생각해보면, 부유한 사람이 즐기는 건, 뭔가 특별해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고통이 아닌 마약의 미화 때문에 시작한다는 거죠.

 

마약 하는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것저것 붙여대며 변명하는데, 참 편향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더군요. 어떤 마약 중독성이 낮다는 이유로 괜찮다고들 하는데, 마약 때문에 나라 자체가 파탄 나서 지금까지 마약에 강경 대응하는 국가가 있는 정돈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자기중심적이죠. 실제 소프트드러그를 허용한 국가에선 중독자가 점점 늘어나서 규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액상화였나? 그거 하면 더 이상 소프트 하지가 않다고 해요. 그럼에도 원래 소프트였다는 이유로 허용되고 있어서 문제라고 하더군요.

 

보통 사람들이 즐기지 않기 때문에 즐기면서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은 거짓된 거라고 생각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신의 자유의지를 약에서 강탈되어 자발적 노예화가 되는 건데, 어떻게 우월감을 느낄 수가 있는 거죠? 노예가 높은 거예요? 비참한 거예요. 자신의 의지로 미칠 줄도 모르는 불쌍한 거라고요. 뭔가 멋있어서 호기심에 마약을 해보려는 사람들은 이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약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 우월한 것입니다.

 

 

 

최근 들어 마약사건이 많아지길래 한번 써봤어요. 마약청정국이 되기 위해서는, 원래 즐기던 이(외국인)들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새롭게 즐기는 이들을 막기 위해 미화를 하는 이(특정 음악인)들을 비판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네요. 정말 특별해지려면 이성적으로 미쳐보던가 했으면 좋겠네요. 자신의 편견, 취향, 사상, 생각, 행동 등을 고찰해서 재정립해볼 정도로 고민해봤으면 좋겠네요. 핵에 의존해서 승리하는 게이머보다, 약에 의존해서 승리하는 스포츠선수보다 더 최악인 것이 약에 의존해서 특별함을 얻는 거예요.

 

 

 

---

 

상황분석 글들을 보고 있으면 느끼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을 너무 이성적으로 보는 것 같더군요. 감성이 아예 배제된 채, 그냥 이해관계로만 사물을 보고 있어요. 그건 정확한 상황분석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은 이성이 행동의 원동력은 아니에요. 욕구와 감정이 원동력이죠. 그 원동력을 배제하고 어떻게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을까요? 분석에 감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공정성이 국가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다방면에서 공정하길. 그리고 노화현상도 다소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사회가 체계화되면서 변화가 줄어들어 사회자체가 늙어가는데, 공정성조차 깨지면 활력을 잃어버릴 지도 몰라요. 그건 최악이죠.

 

그럼 또

신고

 
[잡담] 공유경제와 개인주의 (1) 2019/08/28 PM 11:41

공유경제와 개인주의

 

 

 

개인주의

 

사실 공유경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던 것은 아니었어요. 모빌리티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언뜻 들었던 사상이었죠. 그런데 피상적으로 접하니, 이 공유경제라는 사상이 개인주의와 상충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좀 이상했어요.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주의화가 되어가고 있는 한국에서 소유한 것을 공유하는 공유경제라는 사상이 성공할 수 있는가?”

 

일인가구가 늘어나며 일인식당도 늘어가고 있죠.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면서 현실의 관계성이 옅어지고 있어요. 그럼으로 개인주의는 좀 더 확산되고 있죠. 예전 같으면 외로워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만났을 텐데, 요즘은 인터넷만으로도 외로움이 다소 달래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나타난 공유경제는 심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효율성만 생각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개인의 소유욕을 배제한 채,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개념은, 지극히 이상적이었죠. 실제로 몇 가지의 공유경제는 변질되고 있었어요. 집을 공유하는 사업은 집을 대여해주는 사업으로 변질되었고, 차를 공유하는 사업은 차의 택시 사업으로 변질되었죠. 따라서 공유경제는 인간의 소유욕을 고려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상이다, 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인간의 소유욕이 가부장제나 권위주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집단주의성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아마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 나라도 시간이 흘러 발전함에 따라 개인주의성향이 강해질수록 변질되겠죠. 인간의 소유욕은 본성이니까요.

 

 

 

미래사회

 

그런데 거기서 끝날 것은 아니더군요. 미래를 생각해보면 일정부분은 공유경제화가 될 것 같기는 해요. 몇 가지 생각해봤어요.

 

첫째, 노동가치 상실

 

사실상 자동화 시대가 오는 것은 확실하죠. 그건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해요.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런 상황에서는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겠죠. 인간이 아닌 존재가 대신 노동해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노동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모든 직업의 노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필요 없어 지는 직업이 있겠죠. 그런걸 굳이 고집하는 건, 지금 시대에 굳이 산에서 사는 자연인과 비슷할 것 같네요.

 

노동의 가치가 희미해지면, 소유의 개념도 변할 것 같아요. 노동으로 번 돈으로 구매한다는 개념이 되지 않으니까, 대여한다는 개념으로 바뀔 수 있겠죠. 이 부분은 약간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노동가치 상실이 소유개념 희미로 이어져 공유경제활성화가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둘째, 감시사회 적응

 

소유욕의 근원 중 하나는 개인의 사생활이죠. 프라이버시라고들 해요. 개인이 소유함으로써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있는 측면이 있죠. 그런데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가 감시사회에 적응하면서 둔화되고 있어요. 표현이 애매한데, 이게 맞는 것 같아요.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반응이 무뎌진다고 해야 할까요? 편리를 위해 프라이버시가 전부 수집되는 빅데이터의 활용증가로 인해 감시사회 적응이 촉진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반응이 무뎌질 거라 생각해요.

 

프라이버시 침해가 싫어서 감시사회에 반항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편리해서 그걸 못해요. GPS를 활용해서 얼마나 편하게 길을 찾고 있나요? 그런데 그 GPS가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다 수집이 되어서 활용되고 있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검색, 콘텐츠 이용, 커뮤티니 활동까지 전부 수집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프라이버시 침해에 적응하면서 소유에 관한 개념이 희미해질 것 같아요. 프라이버시에 대해 포기하는 시점이 온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공유경제활성화가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셋째, 편리함의 중독

 

요즘 많은 자영업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에 대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와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 배달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죠. 뭐 대부분의 것들이 배달되고 있어요. 매장을 갈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지는 거겠죠. 한쪽 산업이 성장하면 한쪽 산업은 쇠퇴할 수 밖에 없어요.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 중 하나가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나중에 VR산업이 활성화되어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 그 장점조차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요. VR로 거의 똑같이 만들어진 제품을, VR로 가족, 연인, 친구, 지인과 같이 구경갈 수 있게 될 거니까요. 앞으로 가상현실쇼핑이 활성화되면 오프라인 매장은 매우 어려워질 것 같네요.

 

어쨌든, 이렇게 사람들이 점차 편리함에 중독됨에 따라 앞서 말한 프라이버시 침해에도 보다 쉽게 적응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처음에는 프라이버시 때문에 택배박스 주소를 일일이 지우다가, 나중에는 질려서 그냥 내다버리는, 그런 과정을 거칠 것 같아요. 편리함에 중독되어 나태해짐에 따라 소유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질 것 같네요. 귀찮아서 직접적인 침해가 아니면 대응하질 않는 거죠. 어쨌든 나태해짐에 따라 공유경제활성화가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개인주의 때문에 공유경제활성화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기술발달에 따른 인간의 나태함에 의한 소유욕구저하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어쩌면 공유경제활성화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뭐 그래도 인간의 소유욕은 사라지진 않겠죠. 그러니 인간의 욕구를 대신 충족해주던 개그나 에로처럼, 소유욕을 대신 충족시켜줄 수단이 등장할 것 같아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당장 생각나는 건, 취미산업의 발달이 예상되네요. 취미만큼은 소유욕의 충족을 위해 공유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공동육아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면, 어쩌면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것을 것을 적어볼게요. 예전에 집단주의가 만연했을 때엔 마을이나 친족들의 공동육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요. 그러다가 사회가 발전하면서 핵가족화가 되며 공동육아개념이 사라지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함에 따라 공동육아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가족들끼리 어린이집을 만들어 공동육아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하더군요. 공유경제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기숙사 형태의 신혼부부집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네요. 공동육아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여 육아의 부담을 나누는 거죠.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거고요. 프라이버시 개념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 어쩌면 활성화될지도 모르겠어요.

 

 

 

현재의 공유경제는 개인주의로 인해 활성화가 되기 어렵고, 미래의 공유경제는 노동가치 상실, 감시사회 적응, 편리함의 중독으로 인해 활성화되기가 쉬울 거라 생각해요.. 뭐 공유경제는 사회적 교환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자본이 엮이면 거기서 끝나지는 않겠죠. 어쨌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래에는 공유하며 살지도 모르겠네요.

 

---

 

모 대학의 투표가 이슈가 된다거나, 모 대학의 시위가 이슈가 된다거나 하는 사건들이 있지요. 뭐 그건 좋아요. 개인자유죠. 근데 그걸 하기 위해 아이디를 구매한다거나, 외부인원을 보낸다거나 하는 식의 방식은 당황스럽네요. 아직도 정치를 엘리트만으로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과거 운동권을 지켜봤으면 엘리트들만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았을 텐데요. 반복되는 걸 보면 배우는 것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냥 이용만 할 줄만 알았지, 왜 이용당하는지는 모르나 봐요. 공산주의 침략의 피해자가 맹목적인 지지를 보냈다면, 군사독재 횡포의 피해자가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거예요. 특정 엘리트들의 의견(그것조차 인위적인 간섭이 섞인)만으로 세상을 바꾸려 시도한다니 어처구니 없군요. 야당의 힘은 엘리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요. 민중의 공포와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정당이 그걸 착각하다니. 아니, 사실상 모든 정당은 정치를 하는 이상, 엘리트가 아닌 국민에게서 힘이 나옴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는 경제가 아니에요. 엘리트만으로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야당이 이 흐름을 깨고 싶다면, 과거 군사독재정부를 비판할 수가 있어야겠죠. 군사독재 횡포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이 흐름은 바뀌기가 어려울 겁니다. 만약 여성주의에 입각한 여성중심정책이 수년 유지된다면, 역차별의 피해자가 정치세력화가 되어 또 다른 균형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만, 아직 그건 멀었지요. 그리고 무교정당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요.

 

세계경제 성장의 둔화는 어쩌면, 세계의 노화가 부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사실 그 전까지는 등쳐먹는 국가들이 줄어들어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습관화를 위해 무조건 써보겠단 마음가짐으로 써보고 있습니다만 쉽지는 않네요.

22:00부터 본격적으로 썼는데 잘 안되네요.

 

그럼 또

신고

 

악성코드    친구신청

공동 육아는 뭐랄까
예전에는 성별 역할이 뚜렸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상품이 발달하면서 라이프스타일도 선택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개인주의라는 측면에서 공감하고

테일즈 디스티니2같은 게임이나 우아한 신세계(?)인가 소설같은 걸 보다보면, 가족 개념이 없는 고도화된 사회?는 그때는 그렇게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능도 하겠다 싶더군요
[잡담] 삶의 의미, 그들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0) 2019/08/27 PM 11:20

삶의 의미, 그들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그들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자율주행차량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량이 등장하면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이 많을 거라 주장했죠. 뭐 이건 당연합니다. 앞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산업의 이재민이 되어버리겠죠.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어쨌든 그랬을 무렵, 택시업계에 큰 사건이 발생했었더군요.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 놀랐죠. 불공정한 경쟁상대의 등장에 대한 항의표시로 70대 택시기사가 분신자살을 했다고 하더군요. 왜 그래야 했을까요?

 

불매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고요. 그 후 생각해보니까, 정치적 행동동력은 감정이지만, 정치적 수단은 이성이어야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수를 늘려야 합니다. 어쨌든 그랬을 무렵, 불매운동 중 당혹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충격 받았어요.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한 항의표시로 70대 사람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더군요. 왜 그래야 했을까요?

 

사실 이 두 사건 다 자살까지 갈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죽을 필요까진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혹스러운 죽음이었죠. 특히 불매운동 분신자살시도는 정말 당혹스러웠을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이 사건이 별다른 파장을 주지 못하고 끝이 났는데, 아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사는 것도 의미가 없을진대, 죽음이라도 의미가 있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까?’ 70, 불매운동, 삶의 가치, 의미, 행동, , 그리고 죽음. 죽음에 숭고하다는 표현이 알맞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의도는 숭고할지도 모르죠. 적어도 본인은. 그래서 그걸 의미 있게 죽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이 저어되기도 해요. 그 의도가 퇴색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가정으로 접근할게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정말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거라면,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랬던 거겠죠. 약간 손이 떨리네요. 그러면 왜 그랬을까요? 70대라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빈곤? 외로움? 절망? 정말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있었을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이 죽었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죽고 있죠. 최근에도 집단자살사건이 종종 눈에 띄었으니 말이에요. 따라서 연령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우리 국민들이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러니 죽겠다는 거죠.

 

 

 

삶의 의미

 

사실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어요. 불매운동 분신자살시도를 보고 충격 받아서 써보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저 자신도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삶의 의미를 부여할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 쓰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로 사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니까요.

 

최근 고민상담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어떤 학생이 자학을 하더군요. 자신은 가치가 없는 존재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남) 그런 자학을 하며 한탄하고 있더군요. 왜 한탄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유를 적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학생과 가치를 떠올려보면 아마 경쟁 때문일 거라 생각해요. 경쟁에 뒤쳐진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는 경쟁이 국가를 발전시켰지만, 경쟁이 자살률을 늘게 만들어버렸죠. 그래서 수능실패하고 자살하는 학생들도 있었죠.

 

이는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특정한 삶의 의미가 없으니까 남들의 평가기준을 삶의 의미로 삼고, 그 평가에서 낙오되면 삶의 의미가 사라져 절망하고, 때론 죽음을 택하기도 하는 거겠죠. 따라서 경쟁을 유지한 채, 학생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면 전국민이 삶의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능동적인 삶이 가능해져서, 사회가 활력을 얻고, 젊음을 되찾을 거라 생각해요.

 

삶의 의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 중 하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대로 된 답변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전부 피동적이었죠. 뭐라고 해야 할까, 국가 전체가 철학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돼요. 그러니까 어린 아이들의 방황에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없었던 거겠죠.

 

우리나라는 정말 빠르게 발전해왔어요. 세계에서 놀랄 정도죠. 그런데 그렇게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기초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어요. 기초과학 기초철학 등. 기술 발전도 좋고, 경제 발전도 좋은데, 그 근간이 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찾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삶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마치겠습니다.

 

 

 

---

 

정치를 한다면, 중국하고는 선을 그어두는 편이 나을 텐데요.

봄만 오면 반중 정서가 부각될 테니까요.

그리고 국익의 차원에서도 중국하고는 선을 긋는 편이 나을 텐데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공산독재국가니까요.

홍콩을 보세요. 민주화가 되지 않는 이상, 위험한 국가입니다.

 

 

그럼 또.

 

신고

 
이전 6 7 8 현재페이지9 10 다음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