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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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손 ~ 7 ~ (0) 2010/06/22 PM 01:15


나는 멍 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민혁이 말을 꺼낸다.


“핸드폰 안돼요? 방금 전에도 통화 했었잖아요.”


그랬다.

조장의 지시로 민혁이 본부에 전화 한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119를 부른 것도 여기서 핸드폰을 이용한 거였고.


“배터리를 한 번 뺐다 껴 보죠.”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가는 민혁.

전원도 끄지 않고 배터리부터 뺀다.

재빠르게 다시 끼워 시작버튼을 길게 누르자 약간의 로딩과 함께 화면이 뜬다.


“역시 안 되네요. 이상하네 정말. 갑자기 수신 불가 지역이 된다는 게 말이나...”


“뭐가 이상해! 이미 이상함의 정도를 넘어선지 오래야 여긴!”


문 옆에서 쪼그려 앉은 상태로 있던 조장이 민혁의 말을 잘랐다.

나이는 가장 많아 보이는데 지금은 한 없이 애 같이만 보인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두 번하고 말을 꺼냈다.


“너무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아요. 아까 전에 분명히 민혁씨가 본부에 지원 요청을 했잖아요?”


“예 그렇죠.”


“어차피 저 ‘손’은 우리가 여기 문 앞에 있는 한 우릴 공격할 수 없을 테니 지원이 올 때까지 조금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변기 위에 솟은 ‘손’은 두 사람을 죽인 위용답게,

시뻘건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느린 속도로 원을 그리며 뭔가 아쉬운 속내를 계속 비치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당신도 이제 정신 차려요. 당신은 우리처럼 죽을 위기도 없었잖아.”


쪼그려 앉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조장이 내 말을 듣자,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애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뭐, 어쨌든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어서 나가고 싶구만.”


조장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나와 민혁도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화장실 문 앞에 어른 셋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라.

상상해보면 웃긴 일이었다.

그냥 보통 크기인 화장실에 대체 몇 명이 들어와 있는 건지,

문과 변기까지의 거리도 사실은 큰 걸음으로 네 걸음 정도면 닿는 거리였다.

나름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근거리의 ‘손’을 계속 보고 있자니 공포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거기에 계속 원을 그리고 있는 터라 현기증까지 밀려왔다.


-째깍 째깍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까까지 안 들리던 시계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만큼 고요했다.

우리 세 명은 변기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혹시라도 ‘손’이 어떻게 움직이진 않을까...


“...민혁아 담배 있냐?”


정적을 깨고 조장이 말을 꺼냈다.


“담배는 있는데 불이 없네요.”


민혁이 대답 하자, 조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뭐 그러냐. 그럴 거면 담배는 뭐 하러 가지고 다녀.”


조장의 말에 민혁도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나설 때라고 판단했다.


“저희 집은 금연입니다만. 담배는 여기 나가서 피시죠?”


조장은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그냥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조장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민혁이 돌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저 ‘손’은 대체 뭘까요?”


민혁이 말했다.

나도 정말 궁금했다.

새벽 다섯 시에 뜬금없이 남의 집 변기에 솟아 있는,

저 괴상한 ‘손’은 대체 뭐냔 말이다.


“저는 그보다, 저 손을 따라 변기 안으로 들어가면 대체 뭐가 나올지가 더 궁금한데요..”


나의 대답에 민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 했다.


“이 바닥에서 18년을 썩었는데, 정말 저런 괴상한 건 처음 본다. 우리 아들놈이 보면 신나하겠네.”


여전히 뚱 한 표정으로 조장이 툭 말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거슬리는 째깍 소리가 또 다시 귀에 박히기 시작한다.


“저기... 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나는 조심히 말을 꺼내봤다.


“올 때는 훨씬 지났어요.”


민혁이 깜짝 놀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아니... 저... 어떻게 된...거죠?”


그 때 조장이 끼어들었다.


“짭새 들이랑 실갱이라도 붙은 거겠지. 요즘 그 새끼들 우리랑 사이 안 좋거든.”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조장은 한 번 한숨을 크게 쉬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 때도 차암 짜증나는 날이었지. 뭐 오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장은 민혁을 한 번 쓰윽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 새끼가 그 뭐냐, 맨홀 뚜껑을 열어 놓았는데, 젊은 여자 한 명이 밑을 못 보고 거기에 떨어진 거야.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는데, 그 여자 핸드폰의 발신 정보를 보니 119에 거의 수백 번 정도 걸었던 모양이더군.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우리 상황처럼 안테나 표시가 한 칸도 없던거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나요? 그리고 거기서 떨어진다고 죽기까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운이 없었어. 머리부터 떨어져서 크게 다친 데다, 늦은 시각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 믿을 거라곤 119뿐인 상황인데 아무리 걸어도 받지를 않았던 거야. 아니 받을 수가 없었지. 발신 불가 지역이었으니까.”


말을 마치고 조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민혁이 말을 잇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에요. 우리가 도착하고, 조사하던 중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그 여자를 물에 빠뜨려버리고 만 거예요. 그 때 호영이 말로는 죽은 여자가 갑자기 눈을 떴다고...너무 놀라는 바람에 실수를했다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민혁을 대신해서 조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 어쨌든 실수였지. 그런데 경찰들이 와서는 관리를 똑바로 못했느니, 혹시라도 살아 있었으면 당신들은 살인자라느니 시시껄렁한 소리를 해 데는 거야. 뭐 화날 만도 했겠지. 자기들이 하수구를 뒤져서 시체를 찾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결국 찾긴 했나요?”


“찾았지. 정확히 보진 못했는데 그 놈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시체의 양 팔이 잘려져 있었다 그러더라고. 다시 찾으러 들어가야 된다고 식겁하는 목소리로 말이야.”


조장은 다시 한 번 민혁을 쓰윽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때 또 짭새 놈들이 우리한테 난리를 치기 시작했어. 민혁이 이 녀석을 포함해서 세 녀석이 집중 포화대상이었지. 뭐, 우리는 우리대로 할 말이 있으니까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지금까지 쭈욱 이어져서 여전히 짭새놈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듣기 거북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걸려 지지도 않는 119를 수백 번이나 눌렀을까.

거기다 뒤늦게 도착한 119대원들은 시체를 하수구에 빠뜨리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두 번 죽게 한 셈이였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였나요?”


내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여기랑 가까워. 아마 이 아파트 입구에서 50미터도 채 안될 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섬뜩한 정리가 시작 되었다.

이 근처, 하수구, 핸드폰, 그리고 잘려진 두 팔...


“...저기, 왠지 저 ‘손’...길쭉하지만 어쩐지 여성의 손 같지 않나요?”


내가 말을 하자, 조장과 민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주시한다.


“아... 그런 것 같네. 남자 손처럼 투박해 보이진 않는구만.”


“맞아요. 그런 것 같긴 한데. 그게 중요한가요?”


나는 입을 굳게 다문 체 말 하지 않았다.

일단 내 나름대로의 정리로 남겨 놓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구태여 술렁거리는 분위기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조장과 민혁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말없이 그 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민혁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부었다.

처음 보다 거의 2배 이상 얼굴이 커진 느낌이다.

조장도 그걸 느꼈는지 민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음... 얼굴이 너무 부었는데. 이거 응급처치라도 해야겠는걸?”


조장은 바지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실과 바늘을 꺼내들었다.

아마도 피를 뺄 모양이었다.

민혁은 말없이 조장이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부 할 맘은 없는 모양 이었다.

그런데 그 때,


-꿈틀


“응?”


-꿈틀 꿈틀


“들었죠? 뭔가 움직이는 소리!”


“글쎄.. 변기 위에서 ‘손’이 계속 움직이니까 뭐 아까부터 뭐 아까부터 들렸다고 해야 하나.”


나의 물음에 조장은 바늘귀에 실을 꼽는데 집중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민혁 역시 못 들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분명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내 귀에 분명히 소리가 들려왔다.


-꿈틀


또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디쯤인지도 알 수가 있었다.


“죄송한데요. 지금 하는 건 조금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막 바늘에 실을 끼우고,

민혁의 얼굴에 바늘을 갖다 대던 조장이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눈은 아까 전에 죽었던 윤철과 호영의 시체 쪽에 고정 되어 있었다.


-꿈틀 꿈틀


확실하게 느껴졌다.

저 안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이번엔 조장도 그걸 느꼈는지 숨을 죽인 체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틀 꿈틀 꿈틀


대원들의 시신과 경비의 시신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약간 위치가 떨어져 있었다.

변기를 기준으로 왼 편에는 경비, 오른편에는 대원들이었다.

그리고 셋 중에서 유일하게 배를 보이고 죽은 사람이 윤철이었다.


“자...잠깐만... 윤철이 지금 움직인 거 맞지?”


-꿈틀 꿈틀


“예 보이죠? 지금도 배가 움직였어요.”


조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마른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는 상태면 '숨을 쉬나보다' 생각할 테지만,

죽은 사람의 횡경막이 운동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다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이 괴상한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숨을 쉬듯이 움직이고 있네요...”


-꿈틀 꿈틀


우리의 말소리 외에는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곳에 온 신경을 집중한 터라 비교적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소리에 비유 하자면,

물을 마실 때 목에서 꿀꺽 꿀꺽 하고 넘어가는 소리랑 비슷하다고 할까?


“니미 짜증나 죽겠네 정말 ‘손’이고 나발이고 그냥 발로 밟...읍!”


“쉬잇!”


검지손가락을 들어 조장의 입을 막았다.

눈치 없는 양반 때문에 집중력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대원들 쪽에서만 들려오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경비 쪽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벌레 비스무리한 종류들이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위화감이 나의 집중을 더욱 강요하고 있었다.


-꿈틀 꿈틀 꿈틀


-째깍 째깍 째깍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시계소리와 꿈틀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규칙적인 시계소리와,

불규칙적인 꿈틀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져,

나로선 견딜 수 없는 초조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장 또한 식은땀을 흘리며 말없이 정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민혁에게 별다른 기척이 없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민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조장! 민혁 대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그는 시뻘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눈은 감은 채,

힘겨운 듯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얼굴은 못 본 사이에 더 크게 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서 흐르는 땀의 양만으로도 그 상태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야 임마 민혁아! 정신차려! 임마 정민혁!”


조장은 민혁의 모습에 상당히 놀랐는지,

퉁퉁 부은 민혁의 볼을 때려보기도 하고,

어깨를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민혁을 깨우려는 시도를 했다.

나 또한 ‘손’에서 죽을 위기를 넘겼던 터라,

계속 변해가는 민혁의 모습에 덩달아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제발 민혁에게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는데

지금 민혁의 상태는 정말 안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얼굴에 나쁜 피가 고인 게 원인인 것 같아. 일단 피 좀 빼야겠어.”


조장은 주머니에서 다시 실과 바늘을 빼 들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앞에서는 괴상한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려오고,

뒤에서는 민혁의 상태가 점점 악화 되고 있었다.

나는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하게 앞과 뒤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당신은 앞이나 잘 보고 있어. 이래 뵈도 18년 동안 사람만 구해 왔으니까”


조장이 말했다.

걱정이 가득한 나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신뢰하지 못 할 행동도 많았으나 어찌됐건 119대원이 아닌가.

나는 조장을 신뢰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고 소리에 집중했다.


-꿈틀, 꿈틀, 꿈틀... 찌직... 꿈틀


꿈틀 거리는 소리에 섞여 다른 소리 하나가 귀에 박혀왔다.

큰 가죽 보다는 작은 종이가 찢어진다는 느낌의 소리였다.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호흡하듯 움직이던 윤철의 배가

위 아래로 움직이다 못해 좌 우로도 흔들리시 시작한 것이다.

느린 속도였지만 불규칙한 뱃가죽의 움직임이 점점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아까 전에 나를 살려준 니퍼의 손잡이만 꽉 잡고 있었다.

바닥 모퉁이에 샴푸통이나 세제통 따위가 놓여 있었지만,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어느새 내 목을 지나 상의를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땀을 닦기 위해 한 쪽 손을 들어 이마에 대려는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바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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