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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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손 ~ 15 ~ (0) 2010/06/22 PM 01:39


"나 이제부터 진짜 술 안 먹을거야. 맨날 맨날 일찍 들어올게. 히히.”

“이그,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니?”

“어? 가암히 서방 말을 못 믿어?”

“하하하. 개가 똥을 참지, 자기가 술을 어떻게 참니.”

“정말이야! 두고보라고. 멋진 아빠가 될 테니깐.”






..........


두고보라고.

멋진 아빠가 될 테니깐.

-따르르르르르릉!



시끄러운 알람소리.


“으...아... 뭐야 벌써 여덟시야?”


자도, 자도 자고 싶은 게 잠이다.

그런데 아주 기가 막힌 꿈을 꾼 것 같은데 뭐였더라.


“자기야 일어났어? 아침 차렸으니까 어서 나와~”


방 바깥으로 아내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침대 난간에 멍 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뭔가 끔찍한 일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꿈이 떠오르질 않는다.

평소 같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잊어버릴 텐데 이상하게 집착이 생겼다.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봤지만,

'화장실'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야!! 밥 먹으라고 밥!!”


아내의 소리가 거칠어졌다.

결국 나는 찝찝한 마음을 지우지 못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머릿속에는 화장실만 떠올랐다.


“저, 자기야. 혹시 우리 화장실에 무슨 일 있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화장실? 무슨?”


“그러니까, 뭐 변기가 막혔다거나, 뭐 구더기가 번식한다거나 같은...”


막 입안에 음식을 넣고 있던 아내가 인상을 확 구기기 시작했다.


“아~ 밥 먹는데 왜 그딴 얘기를 하니!!”


“아니, 그게 아니고 꿈이 조금 이상해서...”


아내의 대답에 머쓱해진 나는,

이후로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용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막 문손잡이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번쩍하고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손!”


나도 모르게 내 뱉는 탄식.


“뭐? 갑자기 문 앞에서 무슨 소리야.”


그릇을 치우던 아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손! 손 말이야! 변기에 손이 있었잖아!”


“꿈 꿨다는 게 그거야?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꿈을 꾸냐. 어서 씻기나해 늦겠어!”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는 아내.

하지만 난 모든 게 떠올랐다.

변기에서 나와 사람을 죽이던 ‘손’.

그리고 죽은 사람의 몸에서는 또 다른 ‘손’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손’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를 맞이했었다.

갑자기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억.

그게 꿈이었단 말인가?


“자기야. 오늘 며칠이지?”


“24일~”


“뭐? 오늘 24일이라고? 어제 2일이었잖아. 9월 2일.”


“빨리 세수하고 잠 깨세요 아저씨~”


뭔가 이상했다.

어제는 9월 2일이었는데.

어제 밤에, 과장님 그리고 동료 몇 명이랑 9월이 된 기념을 하자며 술을 마시러 갔었다.

분명했다.

얼큰하게 취한 과장님이,

옷을 벗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경찰까지 왔던 것이 똑똑히 기억나니까.

여러모로 이상했지만 일단 모든 게 꿈이라 결론 짓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변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혹시라도 ‘손’이 있을까봐.

하지만,

역시 없었다.

나는 '참 정교한 꿈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변기로 다가갔다.

소변을 보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데,

변기 안에 있는 물에서 뭔가 이상한 게 비친다.


“헉! 이게 뭐야!”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왠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천장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변기를 바라보자 방금 그 여자의 얼굴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별 헛 게 다 보인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용변과 세면을 마쳤다.


“이그 회사 늦겠다. 오늘 따라 왜 그렇게 꾸물대니.”


화장실에서 나오자,

어느새 아내가 옷가지를 준비해 놓고, 넥타이 줄 길이를 조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어서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

머리를 빗는 둥 마는 둥 손질하고 급하게 옷을 입는다.


“다녀와. 일찍 온다고 약속한 거 얼마나 오래 지키는지 보겠어!”


그 약속이 깨진지가 언젠데.

역시 뭔가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천천히 생각할 여유는 없다.

일단 지각은 면해야한다.


“그래 알았어. 다녀올게 이따 봐~”


평범한 검정색 서류가방을 손에 쥐고 빠른 걸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양이 나를 비춘다.


“여~ 오늘은 조금 늦은 모양이네요~”


매일 아침 복도에서 체조를 하는 903호 아저씨도 그대로였다.

평범한 일상의 시작과 진행.

역시 모든 건 다 꿈이었나.

엘리베이터를 내려 경비실을 지나치려는 순간,

갑자기 아까 전 꿈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비실 문을 두드려 보았다.


“아저씨, 아저씨!!”


옆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십니... 아 901호. 안녕하세요.”


꿈에서 처참하게 죽었던 그 경비였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직 교대 안 하셨네요? 피곤하시겠어요.”


“이놈의 늙은이가 정신이 나간게지. 지금이 몇 신데 안 오고. 휴~”


한 숨을 쉬니 깊게 패인 주름이 더욱 도드라진 느낌이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곳에서 나와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 가던 길로 걸음을 떼려는 데,

문득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후미진 길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왠지 그 길로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지하철역까지 거리는 비슷했다.

잠시 손을 올려 시계를 한 번 확인한 후,

나는 그 길로 걷기 시작했다.

짓다 만 건물들,

여기저기 방치 된 쓰레기들,

같은 아파트 앞인데 늘 다니던 길과 전연 딴 판이었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맨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보니 뚜껑이 열려있었다.


-살......세요


맨홀 앞에 서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엎드리고 맨홀에 귀를 기울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만약 내가 이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 여자는 오랫동안 구출 받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와줄게요!”


아래로 소리를 지른 다음,

맨홀에 붙어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하수구의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

사다리 밑으로 내려간 나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그런지 그 여자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용 플레시를 켰다.

그리고 좌우로 빛을 비추며 살피고 있는데,


“도와주세요.”


“으악!"


갑자기 내 귀 바로 옆으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아. 깜짝 놀랐잖아요. 저기 괜찮으세요?”


떨어진 핸드폰을 집으며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도와주세요.”


아까와 같은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예. 도와주러 왔어요. 어쩌다 이런 길로 들어오셔서 봉변을 당하시고.”


어둠에 가려 여자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다.

긴 생머리에 짙은 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쓰러져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맨홀에서 떨어진 거.. 아닌가요? 서 계실 수 있으시네요..?”


“도와주세요.”


또 같은 말이었다.

나는 왠지 이 여자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 저기 죄송한데요. 그.. 그.. 일단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지 제가 좀 보겠습니다.”


나는 다시 핸드폰의 플레시를 켜고 이번엔 그 여자 쪽을 비춰보았다.


-파앗


“우아아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양팔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와주세요.”


검정색 민소매 원피스의 어깨끈 옆으로,

당연히 있어야할 그녀의 팔이 없었다.

거기에 그녀의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잘려진 팔 부위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으... 으어어어... 당...신 뭐야!!”


그 여자가 비틀비틀 조금씩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는 뒤로 엎어져 땅에 손을 짚은 채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첨벙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자 손에 물이 닿는 느낌이 난다.

화들짝 뒤를 돌아보니 하수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못 한 채,

이빨만 딱딱 소리를 내며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이윽고 그 여자는 내 바로 앞까지 도달했고,

허리를 숙여 내 면전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다.


“도와주세요.”


또 똑같은 말.

숨 막히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기 시작한다.


“대... 대체 뭘 도와 달라는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저. ‘손’을 잃어버렸어요.”


-촤아아아아아


갑작스런 물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하수구에서 치솟은 ‘손’이 내 얼굴을 덮치고 있었다.


-콰악!


‘손’이 내 얼굴을 붙잡고 터뜨릴 듯 쥐어짜려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찾았네. 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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