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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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손 ~ 18 ~ (0) 2010/06/22 PM 01:49


............

그런데,


“자기야. 뭐 해. 어서 나가! 문 열렸잖아.”


아내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자...잠깐만. 우리 조금만 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보고 있던 조장이 답답했는지 문 쪽까지 양 팔로 기어왔다.


“그냥 나가면 되는거지 뭐야 대...체...어...?”


조장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이 사라졌다.

어느새 다가온 아내도 입을 벌린 체 바보처럼 서 있다.


-꿈틀 꿈틀 꿈틀 꿈틀 꿈틀 꿈틀


문 밖에는,


거실의 벽과 천장 등,

온 사방을 뚫고 나온 무수히 많은 ‘손’들이,

마치 우리를 환영하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꿈틀 거리고 있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지... 지옥이야. 여...여긴 지옥이라고!!”


아연질색 한 표정으로 조장이 소리친다.

그래 지옥.

지금 내가 보는 광경을 딱히 표현할 단어는 지옥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벽에도, 천장에도, 바닥에도,

심지어는 냉장고에서도 ‘손’이 나와 있다.

가늘고 길쭉한 ‘손’이.


“우...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으아앙 우리 집이!!!”


나는 절규하는 아내를 꼭 안아주는 방법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이봐. 어떡하지. 우리 어떡하지!?”


조장의 눈에서 물방울이 맺힌다.

가뜩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데 그 마음이 오죽할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제발 꿈에서 깨어나기만을,

아니 이게 꿈이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푸훅!


멍 하니 있는 사이, 벽에서 ‘손’이 하나 더 튀어 나왔다.

계속해서 늘어날 모양이었다.


“저...기 ‘손’이 계속 늘어나는데... 어떡하죠.”


내가 말했지만 아무에게도 대답을 듣지 못 했다.

모두 그저 자신의 공포를 표현하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나라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다들 조금만 진정하시죠. 우리 아직 ‘손’에 잡힌 건 아니잖아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은 천장, 벽, 바닥 할 거 없이 튀어나와 있었지만 분포는 달랐다.

천장 쪽에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벽,

그리고 바닥 순이었다.

중력의 법칙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바닥에서 나온 수가 적다는 것은 우리에겐 희망적인 일이었다.


-푸악!


“꺄아아아악!!”


생각하는 사이에 또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이번엔 천장이었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바닥을 살폈다.

천장이나 벽에 비해 듬성듬성 나와 있는 ‘손’.

잘만 요리조리 피한다면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맨 몸으로는 무리다.


“주희야. 주희야! 우리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다고!”


“우...우리집이... 우... 우리집이...”


“정신 차려! 주희야. 아까 오일 다 썼어? 조금이라도 남지 않았어?”


베이비오일이 아직 남았어야 했다.

이 곳을 그나마 뚫기 위해선 말이다.

하지만 아내의 상태가 영 아니었다.

그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때,


“오일 남았을 거야. 당신 마누라가 ‘손’과 싸울 때 오일 들이부을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


조장이 말했다.

아까보다 표정이 많이 풀려 있었다.


“어디 있죠?”


“아무래도 저 근처에 있겠지.”


조장이 쳐다본 곳은 다름 아닌 변기였다.

저 곳을 또 가야한단 말인가.

변기 주위의 불길이 아까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불길이... 점점 세지는 것 같죠?”


“당신도 느꼈어? 아마 쉽게 꺼지진 않을 것 같은데.”


선택의 시간은 극히 짧았다.

‘손’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불길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인 오일은 변기 앞에 있다.


“조장, 뭐 이런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저기 한 번 다녀올게요. 그러니, 우리 마누라 좀 부탁합니다.”


조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발목을 팔로 감았다.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물이나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가라고.”


그 말과 동시에 화장실 오른 쪽 벽면에 달려 있는 샤워기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불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냉큼 달려가 샤워기를 붙잡았다.


-촤아아아아


하지만 물을 틀어본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줄기가 너무 약했던 것이다.

이걸로 불을 끄려면 천만년은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약한 물줄기를 몸 이 곳 저 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핏물들이 잔뜩 흘러내려간다.


“아 푸!!! 시원하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대한 물을 적신 나는 변기 앞을 바라보았다.

행여 라도 오일 통이 불에 타 버렸으면 큰일이다.


“이봐! 거기 시커먼 ‘손’ 밑에 그거 아닌가?”


조장의 목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시커멓게 탄 ‘손’ 밑으로 허연 물체가 하나 보였다.

나는 그 즉시 뛰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길이 닿는다.

물에 젖어있는 걸 감안해도 무척이나 뜨겁다.

왼 팔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시커먼 ‘손’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으로 오일 통이 보인다.

다급하게 오른 손으로 ‘손’을 잡아 옆으로 치우고 오일 통을 집으려는데,


-꿈틀


“제기랄 뭐야! 움직여!?”


다 타버린 줄만 알았던 ‘손’에서 움직임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염려와는 달리 그 움직임은 매우 미미했다.

간신히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오일 통을 집었다.

그리고 황급히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나가려는데,


-촤아아아아


이 소리는?

깜짝 놀라 뒤를 보자 시뻘건 ‘손’이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손’이 뒷머리를 스치는 느낌이 든다.

최초의 ‘손’.

변기에 있던 ‘손’이 분명했다.


“어서 몸을 던져!!”


조장의 소리가 들려온다.


“하압!!!”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몸을 던졌다.


-콰악


새끼발가락 쪽에 통증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손’에게 붙잡힌 모양이다.


-콰당


다행이 불길에서는 벗어났지만,


“크으으윽...”


발에서 큰 통증이 느껴졌다.

앉은 채로 발을 살펴보자, 역시나 새끼발가락에 살점이 뜯어져 나간 게 보였다.

어쨌든 오일 통은 가져왔다.

통 여기저기 검은 그을음이 보였지만, 오일이 새거나 하진 않았다.

‘손’ 밑에 깔려서 그나마 불길에 보호를 받은 것 같았다.

남은 양은 3분의 1가량,

많지 않았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조장. 라이터, 라이터는 어디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이 또 있었다.

설마 또 변기라고 하진 않겠지?


“글쎄. 라이터는 자네 마누라가 계속 가지고 있었으니...아마 변..”


조장의 말에 점점 울상이 되어가던 중,


“나한테 있어 라이터.”


아내의 말이 들려왔다.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조금은 안정을 찾은 모양이었다.


“라이터, 라이터 가지고 있다고?”


“응. 주머니에 있어 잠깐만...”


아내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바지 주머니를 뒤적뒤적 찾기 시작했다.


“자. 라이터... 자기야.”


“응?”


“우리... 살 수 있는 거지?”


“...살, 살 수 있어! 나만 믿으라고!!”


라이터를 건 내주는 아내의 눈이 몹시 애처롭다.


“주희야.”


“...응.”


“나 여기서 나가면...”


“...응.”


“...정말 술 안 마실게.”


“...풋...”


아내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번엔 조장을 쳐다보았다.


“조장... 일단 제가 부축을 할 테니 팔 좀 줄래요?”


조장은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젓는다.


“조장! 시간이 없어요. ‘손’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단 말예요!”


“내 걱정 말고. 둘이라도 어서 가.”


“....예?”


나는 조장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까 까지만 해도 제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사람이 조장 아닌가.


“이 다리로 저길 뚫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손’에 잡혀 죽을 바에는 여기 있는 게 나아.”


“......."


맞는 말이었다.

조장을 부축한 채 이곳을 뚫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를 두고 간다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었다.


“어서 가! 계속 머뭇거리면 업어달라고 할 걸세!!”


“맥...”


“응?”


“매...맥주!! 여기서 나가면 시원한 생맥주 먹기로 했잖아요!”


“응 그랬지.”


“나 혼자 먹으라는 거예요?”


“하하하. 내가 꼭 죽을 것처럼 말하네. 밖에 나가면, 경찰이든 뭐든 좋으니까. 나 구하러 꼭 돌아오라고. 꼭!”


여기 있으면 ‘손’으로 부터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불길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조장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서 가. 당신들이 어서 가야 나도 살 확률이 높아질 거 아냐!”


조장이 소리친다.


“제기랄 알았다고요. 돌아 왔을 때 죽어 있으면, 평생 저주할겁니다!”


-푸아악!


이번엔 바닥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조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향해 윙크를 한 번 하더니 화장실 안쪽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장이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걸을 수 있지? 이제 우리 둘 뿐이야.”


아내는 사뭇 장엄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 걸음.

지옥 같았던 화장실에서 빠져 나와,


우리는 또 다른 지옥으로의 한 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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