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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획자 이야기] 게임기획자 이야기 4 - 게임시나리오 작업 2 (1) 2013/05/19 AM 12:12

현재 집에서 잘 놀고 있는 한 게임 기획자의 이야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 하는 것임에 유의하세요.


***

[프로젝트 초반의 게임 시나리오 작업]


프로젝트 초기의 경우 윗사람의 지시가 많이 들어옵니다.
신입이라면 파트장, 짬밥 좀 있다면 PD나 사장님의 요구가 들어오죠.

그래서 어떻게 써야 하느냐?

뻔합니다.
그 분들이 원하는 대로 써줘야 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조낸 재밌고 환상적이면서도 BF한 시나리오?
당신은 회사의 사원입니다.
개인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정 그러고 싶으면 혼자 회사 차려야죠.

다음은 제 경험담입니다.

***

이전 회사에서 사장님이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미래에는 식량위기가 대두되니 그걸 소재 삼아 전쟁 게임을 만들어보자!
그러고 보니 자네가 글 좀 쓴다며?
거기에 맞게 시나리오 좀 써봐!

속으로 아 ㅅㅂ! ㅅㅂ! 했습니다.
무슨 원시인 공룡 지져 먹는 시대도 아니고 식량이라니! 식량이라니!
조낸 재미없을 거 같잖아!

게다가 중간중간 요구 사항도 많습니다.
어렵지 않게 해라, 근미래로 해라, 등등등...

의외로 이런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허나 기획자입니다.
기획자라면 아무리 재미없는 아이디어라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도 말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요구사항을 수렴한 글을 작성했습니다.
보통 이 때 쓰는 것을 시나리오가 아니라 시놉시스라고 합니다.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구분하지 못해 그냥 시나리오라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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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정말로 재앙일까?
아이슬란드의 얼어붙은 토지가 녹고, 메마른 사하라 사막에 비가 내린다.
여름 더위는 불편하지만 그만큼 겨울이 따뜻해진다.
지구온난화는 적응기간이 필요한 소소한 자연변화 아닐까?
에어컨을 설치할 시간과 돈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야.


이렇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간과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는 하나의 방아쇠였을 뿐이었다.
지구 전역을 뒤엎을 도미노가 이제 막 하나 쓰러진 것이었다.

첫 번째 도미노인 지구온난화는 만년설과 빙산을 녹였다.
녹은 물들은 바다에 흘러가 해수면을 높였다.
물의 증가로 바다 염도가 낮아지자 바다 속에 눌려있던 가스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스는 다시 지구온난화를 가속시켰고 해수면은 더더욱 높아졌다.
바다 염도가 더 낮아지자 해수순환이 줄어들면서 대류현상도 줄어들었다.
대류가 멈추고 열이 순환되지 않자 열대지방이 순식간에 얼어붙고 다습한 정글이 사막이 되었다.
기후가 요동치니 대기도 요동치며 태풍과 이상기후가 끊이지 않았다.
이쯤 되자 일기예보는 농담이나 기도가 되어버렸다.

국토의 침수, 토네이도 습격, 기습한파, 이상고온, 등 수많은 자연재해로 세계가 요동쳤지만 인류는 영장류답게 하나하나 대처하고 적응해나가며 재앙을 극복해나갔다. 아니, 극복했다고 착각했다.
진짜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적응여부와 관계없이 급격한 기후변화는 필연적으로 흉작을 몰고 온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밀에 적당했던 기후가 갑자기 감자를 재배할 기후가 되어버리면 기존의 작물은 열매도 맺지 못하고 시들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전세계적인 이상기후는 전세계적인 흉작을 몰고 왔고 이는 치열한 식량전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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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사장님은 흡족하게 납득시켰습니다.
자, 그럼 이게 잘 쓴 게임 시나리오일까요?

아니죠. 이런 작업은 그냥 글 좀 쓰는 외주작가 구해서 시키면 됩니다.
실제 게임 개발에서 이런 글은 개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당장 저걸로 무슨 게임을 만들겠습니까?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라면 읽을 만한 글을 쓰는 것에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게임에 녹아들 수 있는 설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다음과 같은 설정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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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은 축복이자 권력이요, 종자는 미래의 희망이다.]

기상이변으로 지형과 기후가 변화하고 식량생산에 타격을 입음.
극심한 기아로 인해 기존 국가가 해체되거나 통합 됨.
그 어떠한 자원보다 식량이 중요해지고,
이 극심한 기상이변에 내성을 가진 ‘종자’의 중요성이 대두 됨.

우수한 종자를 만들기 위해 각종 유전자 변형 종자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가지고 전세계적으로 무리한 생체실험과 무분별한 임상실험을 강행함.
이러한 실험들의 여파로 변형종자들의 유전인자가 퍼져나가 각종돌연변이 생명체가 생겨난다.

기업들은 무분별한 실험으로 태어난 돌연변이를 제거하고,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노사이더’(Xenocider: 변이종 제거자)라는 용병단체를 설립함.
하지만 제노사이더의 실체는 원주민들이 일궈낸 경작지와 그들이 재배한 종자를 빼앗기 위한 Genocider(대량학살자).

혼돈에 빠진 세계의 이면에서 종자를 빼앗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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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설정을 통해 개발에 사용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최소한 컨텐츠화 시킬 수 있는 설정을 만들어야 기획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개발에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지금은 단순한 메모들이지만 앞의 설정을 통해 다양한 것들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국가(렐름), 몬스터, 자원, 하우징, PVP, 보상 등등등...

그리고 소소한 팁 하나.
이러한 것들을 절대로 혼자 결정하면 안 됩니다.
앞의 설정을 보면 매우 러프합니다.
이렇게 쓴 이유는 이런 바탕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딱 상상력을 자극할 정도로만 정리한 것이죠.
이 바탕설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면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드는 한편으로 팀원들의 참여의욕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정리하면 저 러프한 메모가 양질의 설정서로 변모될 수 있습니다.


***


다시 돌이켜 보죠...

음식점에 들어가면 메뉴판이 있죠.
메뉴를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 시킵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옵니다.
그 음식이 게임 시나리오입니다.

여기서 음식을 시키는 사람은 시나리오 요구자입니다.
메뉴는 그들의 요구사항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요리하는 것은 시나리오 기획자입니다.
그 음식이 맛있다면 요구자는 만족하며 한 끼의 영양분으로 삼겠죠.
물론 맛이 없다면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할겁니다.


이렇듯...
[프로젝트 초기의 시나리오 기획자는 여러 사람의 요구를 취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윗사람...;)

또한 좋은 글이 아니라 영양가 있는 글,
[즉 게임 개발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

음... 글이 길어지니 프로젝트 중기의 시나리오는 다음에 얘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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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유익하네요 계속 연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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