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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선과 악의 환상] 두개의 길 (5화) (0) 2022/06/26 PM 05:06

타락한 천사 루시퍼가 한 인간에게 말했다.

 

-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 모든 것을 신께서 만드셨다고 하셨다.

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지.

오직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

그러나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해야 할 천국에 시기와 불신이 싹텄고,

그 해결책으로 내 놓은 것이 다름 아닌 추방이었다.

거짓말을 한 거야.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내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처럼 너희의 생명에 한계를 둔 것이나 고통을 방관한 것에 숨겨진 뜻 같은 건 없다.

전지전능하다는 거짓말로 모두를 속이고 두려움을 심어놓은 것뿐이야.

그러니 우리가 직접 신을 찾아가 우리의 신념을 전하고,

창조주로서 세상을 방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이전 이야기들은 링크를 통해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재빨리 보급품을 주워 담은 강철이
총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곧장 뛰었다.
그 이유를 알 리 없었던 배급 원들은
총소리 쪽으로 뛰어가는 강철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 미친놈은 왜 저리로 뛰어가?
저놈도 반정부 놈들하고 한패인가?”
 
“그럴 리가, 저사람 전쟁영웅이야.
그 난리 통에 보급품도 딱 자기 것만 챙겨간 것 보라고.”
 
“전쟁영웅은 미치지 말라는 법 있어!”
 
“세상이 이러니 누군들 미쳐버린다고 뭐라
할 수도 없겠지만 저 사람은 아니야.”
 
“쳇,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왜 이런데서 일한데?”
 
“결국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니까.
전쟁영웅도, 우리도, 저기 죽어 나자빠져있는 놈들도
모두 그런 것 아니겠어?”
 
“빌어먹을, 소모품이라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우리 신세가 너무 처량해.”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는걸 어쩌겠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세상에 미친놈들 천지인데
우리한테도 제대로 된 무기 좀 쥐어줘야 할 거 아니야.”
 
“불평해봤자 입만 아프지. 그나마 권총이라도 쥐어준걸
고맙게 생각해야하지 않겠어?”
 
“거참. 자넨 어쩜 그렇게 태평한 거야.”
 
“차라리 그편이 더 나으니까.”
 
배급 원들의 신세한탄 중에도 총성은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점점 더 멀어지고는 있었는데,
그렇다는 것은 강철의 집과는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좋지 않아, 아주 좋지 않아.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저 빌어먹을 개새끼들을...’
 
터질 듯 지친 심장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강철은 더욱 더 빨리 달려야 했다.
그렇게 서두른 덕분에 이제 곧 집 앞에 도착할 터였다.
그런데 집 보다 먼저 나타난 것은 강철의 딸이었다.
총 소리가 여전히 울려대고 있는데,
천둥소리 마냥 근처 가까운 곳에서 쾅쾅 울려대고 있는데,
딸아이가 집 밖에 나와 있었다.
놀란 강철이 모든 신경을 딸에게 집중했다.
다른 것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힘껏 달리던 강철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낚아채듯
아이를 끌어안고는 곧장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고,
재빠르게 침대 밑에 숨겨둔 자동소총을 꺼내
능숙하게 장전한 후 창밖을 살폈다.
군더더기 없이 이어진 그의 행동은 기계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심장이 무서운 기세로 뛰었고, 눈에는 붉은 핏발이 섰다.
그럼에도 강철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창밖을 유심히 살폈다.
또한 집으로 접근하는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칠세라
청각을 예민하게 달구었다.
한창 울리던 총성이 멈춘 것은 거친 호흡이 조금씩
진정 되어 갈 즈음이었다.
그러나 강철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딸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어째서 밖에 나와 있었지!”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아빠가 총에 맞을까봐...”
 
“그걸 말이라고 해! 무서우면 더욱 더 집 안에 숨어있었어야지!!!”
 
극심한 스트레스가 감정을 불안하게 만들자
순간적으로 차오른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 큰 소리를 내었다.
이후 한 시간 가까이 총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경직되었던 감정을 추스르며 낮에 내렸던 검은 비에 대해 물었다.
 
“총 소리가 울리기 전에 검은 비가 내렸었는데, 알고 있어?”
 
“네.”
 
“비가 올 때는 확실히 집 안에 있었겠지?”
 
“네, 비가 오는 동안은 집에 있었어요.”
 
비로소 마음이 누그러진 강철이 고개를 돌려
딸을 살펴보자 처량하게 소파에 앉아
죽은 엄마의 사진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여간 안쓰러웠다.
 
“그래, 잘 했다. 아까 소리 질러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밖에 나온 것은 어리석었어.
내가 걱정되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했잖아.
우리 두 사람이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그동안 정해온 규칙들을 잘 지켜야만 해.”
 
“네. 죄송해요 아빠.”
 
“아빠가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누구지.”
 
“저요.”
 
“하나가 믿고 하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빠요.”
 
“그래, 배가 많이 고플 텐데 오늘 저녁은 일찍 먹자꾸나.
케이크 재료도 많이 얻어왔단다.”
 
“아빠.”
 
“응?”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글쎄, 갑자기 그런 건 왜 묻지.”
 
“사람이 죽으면 모이는 곳이 있다는 글을 읽었어요.
그게 사실이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중에 엄마를 만나러 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나야 엄마는... 그래, 그런 곳이 있으면 참 좋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단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지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어.
상황이 나아질 때 까지 이유는 잠시 접어두고,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그것만 생각하자.”
 
“네, 아빠.”
 
“그래, 이리와라.”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던 강철이
오랜만에 딸을 꼭 안아주었다.
그러나 아빠를 찾기 위해 아이가 집밖으로 나왔을 때.
그때 분명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천둥과도 같았던 총소리의 공포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 통에 죽어나간 사람들의
비참한 얼굴을 떠올렸었고,
아이의 상상력은 그들의 비참한 얼굴을
모두 아빠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죽음을 대하는 공포보다도 컸고,
그 때문에 아이는 아빠를 찾아 집밖으로 나와야만 했었다.
호통을 치긴 했지만 강철도 그 마음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의지할 사람이 단 한 명뿐인 지금상황에 자신이 죽는다면
눈앞에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질 테니까,
차라리 같이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만한 그런 세상이었으니까.
사탄의 증오가 녹아있는 검은 비는
어린 여자아이하나쯤 쉽게 유혹해 내었고,
그 증거로 아이의 왼쪽 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강철은 비를 맞지 않았다는 딸의 거짓말도,
붉은 빛이 감도는 아이의 눈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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