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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진설(真説) 야규 일족(柳生一族) #21 (0) 2017/03/04 PM 11:23

제 2 장 쇼군(将軍)을 지탱한 병법자 -토쿠가와 삼대와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

 

 

◎ 쇼군(将軍)의 병법 사범 자리에 오르다

~ 토쿠가와(徳川) 가문 2대째 쇼군(将軍)인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라 하면, 헤이세이(平成) 23년(2011)에 방영한 NHK의 대하 드라마『江 ~姫たちの戦国~(고 ~히메들의 센고쿠~)』를 통해 약간의 주목을 받게 된 인물이다.

江二弾.jpg

[2011년 NHK 대하드라마『고 ~히메들의 센고쿠~』에서 아자이 세 자매로 각각 우에노 쥬리(고: 스겐인), 미야자와 리에(요도도노), 미즈카와 아사미(죠코인: 쿄고쿠 타카츠구의 부인)가 열연했다]

 

 이에야스(家康)와, 자신의 아들이자 3대째 쇼군이 된 이에미츠(家光) 사이에 끼어 히데타다는 뭔가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 여겨졌지만, 사실은 탁월한 행정 수완을 발휘한 2대째였다. 그러한 부분들이 이 드라마를 계기로 여러 서적들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히데타다는 열일곱살 때 여섯살 연상인 고(江)와 결혼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누이동생인 이치(市)와, 노부나가에 의해 멸망당한 오우미(近江)의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들 중 막내인 고와의 결혼은, 이에야스가 자신과의 유대(絆)를 강화시키기 위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정략을 따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고는 히데요시의 양녀라는 입장에 있었다. 큰형인 노부야스(信康)는 노부나가의 명령에 의해 자결해야했고, 둘째형인 히데야스(秀康)는 토요토미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히데타다는 측실의 자식이었으면서도 일설에 따르면 이미 다섯살 때에 적자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는 가문의 후계자라는 입장에서 고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뜻이 된다.

 이 부부는 결혼한지 2년째인 케이쵸(慶長) 2년(1597)에 첫 아이를 얻었다. 딸로서 센히메(千姫)라 이름지었다. 덧붙여, 센히메를 포함해 히데타다는 2남 5녀를 얻었는데, 모두 정실인 고에게서 태어났다.

 그런 히데타다가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 자리에 오른 것은 이에야스가 쇼군으로 보임된지 불과 2년여 남짓 지났을 때인 케이쵸 10년(1605)의 일이었다.

 천하는 이제 토쿠가와 씨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독점한다는 것을, 故히데요시의 측실인 요도도노(淀殿)와, 히데요시의 남겨진 아들 히데요리(秀頼)를 받든 토요토미 정권의 회복을 단념시키기 위해, 이에야스는 일부러 쇼군직 양위라는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는, 이렇게 해서 새로운 쇼군의 병법 사범이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무네노리의 생애에는,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가 그러했듯이 두 개의 칼날이 교차하는 시합이나, 피 튀기는 칼부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오고쇼(大御所)로서 군림하고 있던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씨를 토벌해 멸망시킨 마지막 대전인 오오사카 여름 전투(大坂夏の陣) 도중에 적병을 베어 죽인 이야기가 있다.

 서군의 장수인 키무라 시게나리(木村重成)의 일족인 키무라 카즈에(木村主計)가 스하다 무샤(素肌武者: 갑옷을 걸치지 않은 경장한 무사) 수십명을 이끌고 히데타다의 본진을 급습했을 때, 당시 마흔다섯살이었던 무네노리가 그중 일곱명을 처치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필시, 병법자로서의 무네노리의 모습을 전하는 유일무이한 무용담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하 기록할 이야기는, 히데타다 시대의 무네노리와 관련된 일로서,『玉栄拾遺(교쿠에이슈이)』이외에도 특필되어 있다. 검을 휘두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이름을 선전하게 된다. 즉, 사카자키 데와노카미(坂崎出羽守)라는 다이묘(大名)에 의한「센히메 강탈 미수 사건」에서 무네노리가 관여한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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