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했더니늑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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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일랜드 사가-심해전설-서장.소년 모험가(5) (0) 2019/05/23 AM 01:22

 낮에 아윈을 찾아 빠져나갔을 때, 그리고 몰래 돌아왔을 때보다 배로 길어진 것만 같은 좁은 복도를 쫓기는 기분으로 다급하게 걷던 이디아는 돌연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야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적막한 복도에 이디아의 발소리가 아닌, 다른 또 하나의 발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절그럭..]

 

 

 

차갑고 둔탁한 금속성 발소리. 그 소리와 함께 다소 가라앉은 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가십니까. 이디아 아가씨.”

 

 

 

약간의 초조함과 불안감. 그리고 노기가 숨어있는 소년의 목소리....

이디아는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올 초부터 아버지가 어디선가 데려온 소년 발터였다.

이디아는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택을 몰래 빠져나가려는 계획이 들켰다는데 대한 당혹감과 더해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발터라는 점이 이디아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들었다.

이디아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내뱉었다.

“니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이디아는 발터가 싫었다.

살갑지 못한 태도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하고 밝은 아윈의 금발과 대조적으로 칙칙한 검은 머리도 음침한 분위기를 더 하는 것 같아 싫었다.

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도 싫었다.

그렇다고 이디아가 외모와 인상만으로 차별하고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였기에 아윈이 다가와 주었던 것처럼 자기가 먼저 다가가려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발터는 철저히 벽을 친 채 마음을 열지 않았다.

발터는 항상 주인의 딸과 종자라는 수직적 지위로 거리를 두고 또래의 친구가 될 생각은 없어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관계뿐이었다면 이디아도 발터를 그저 고용인 중 하나로만 여기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발터가 이디아에게 심각할 정도의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종자로서 일이 없거나 훈련이 없는 날이면 발터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이디아가 어디서 뭘 하는지, 저택을 나가진 않았는지 먼발치에서 몰래 감시하기 시작했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건, 자신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려고도 하지 않는 주제에 스토킹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윈의 험담까지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짓거리를 하인들과 바람, 자택의 정원수, 화분, 하늘을 나는 새부터 저택을 오가는 노새까지 모두에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던 이디아는 발터를 정말정말 끔찍하게 싫어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뒤를 몰래 쫓아와 훼방을 놓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니 이디아가 얼굴을 보지 않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 아니,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디아 나름의 ‘상냥한’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마주보는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무슨 말을 할지 자신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발터는 이디아의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금 쇳소리 섞인 발소리를 내며 거리를 좁혀왔다.

 

 

 

“오늘은 상관해야겠습니다.”

 

 

 

“.....뭐라고?”

 

 

 

참지 못한 이디아는 화를 터뜨리려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시간.

여기서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목구멍까지 차올라왔던 난폭한 말들을 간신히 삼키며 이디아는 발터를 무시하고 나가려했다.

하지만, 성큼 거리를 좁혀온 발터가 앞서나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평소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무례한 행동에 이디아의 눈살이 분노와 불쾌함으로 꿈틀거렸다.

 

 

 

“비켜.”

 

 

 

“못합니다.”

 

 

 

“시간이 없어.”

 

 

 

“아시면서 이러십니까?”

 

 

 

말장난 같은 꼬리잡기가 이어지자 이디아는 끝내 참지 못했다.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당장 비키지 못해?!”

 

 

 

발터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안 된단 말입니다! 오늘이 어떤 날인데 아윈 같은 놈 때문에 자리를 비운단 말입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 아윈이 위험하단 말이야! 당장 비키지 못해?!”

 

 

 

“위험하다고? 그럼 더더욱 가실 수 없습니다!!”

 

 

 

벽창호 같은 발터의 태도에 이디아는 치솟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힘으로 발터를 제압할 수도, 하인을 부를 수도 없었다.

어쨌든 발터의 말에 틀린 건 없었으니까, 이디아 본인도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점만큼은 잘 알고 있었기에 앞을 가로막은 발터를 어찌하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이디아의 귓전을 간지럽히며 지나가는 한 줄기 산들바람이 속삭여주는 소리에 이디아는 미소와 함께 외쳤다.

 

 

 

“그래! 휘라! 저 녀석을 쳐 박아버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좁은 복도에서 돌연 불어온 무시무시한 돌풍에 밀쳐진 발터는 굉장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복도의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쌤통이야 발터!’

 

 

 

구석에 처박힌 채 신음하는 발터를 보며 이디아는 눈을 흘겼다.

걸리적거리는 것을 치운 이디아에게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평소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난폭한 일을 저질러 버린 그녀였지만, 그만큼 머리끝까지 화가나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그렇기에 발터가 얼마나 다쳤는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중요한건 발터가 아니라 위험한 곳에 남아있는 아윈이었으니까....

 

 

 

“가시면....... 안됩니다.... 오늘은....”

 

 

 

신음과 함께 발터가 마지막까지 발악했지만, 이디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발터로부터 쏟아져 나온 다음 한 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어지는 그 말이 이디아의 발목을 잠궜다.

 

 

 

 

 

 

5.

한편, 아윈은 당연하게도 허탕을 치고 있었다.

이디아의 생일을 위한 선물, ‘요정의 꽃’은 진작 주인에게 전달되어 있건만, 그 조약돌의 원래 모습이 바로 애타게 찾는 그 꽃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아윈은 그저 묵묵히 짐작 가는 곳을 찾고 또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질 때까지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성과가 없자, 부아가 치밀어 오른 아윈은 죄 없는 풀밭을 발로 차 넘기며 불평을 터뜨렸다.

 

 

 

“바보, 병신아! 그걸 주머니에 넣어놓는 새끼가 어디 있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퍼붓는 욕설.

아무리 돌풍의 위험에 다급했다지만, 전설적인 발견물을 호주머니에 쑤셔놓고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꼴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모험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요정의 꽃을 손에 넣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린 아윈은 머리를 움켜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넋을 잃고 흘린 듯 구경할게 아니라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헝겊에 싸서 헝겊에 싸서 가방에 넣어두었어야만 했었다.

무수한 모험담을 들었고 상상해 왔다고 한 들, 실전에서 실행하지 못하는 지식이 무슨 소용일까?

자괴감에 휩싸인 아윈은 앉은 자리에서 아예 바닥에 벌러덩 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렇게 좌절로 가득한 몸부림이 이어지길 얼마간, 누운 채로 두 다리를 하늘로 높게 뻗은 아윈은 다리를 힘껏 내리며 반동을 타고 앉은 자세로 돌아와 턱을 괴고 앉았다.

헛수고, 자괴감에 이어지는 진지한 고찰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럼...”

 

 

 

턱을 괸 채로 ‘진짜 바다’를 보았던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 빛 파도의 너울 너머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아윈은 말을 이어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아윈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쉴 새 없이 요동치고 꾸물거리는 회색 파도의 포말을 눈으로 쫓으며 생각에 잠겼다.

언덕 근처는 조약돌 하나까지 뒤집어 봤을 만큼 꼼꼼하고도 샅샅이 뒤져 보았으니, 남은 가능성은 하늘로 날아올랐을 바로 그 때, 아윈의 품에서 떨어진 꽃이 이 근처가 아닌 숲 속 깊은 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뿐이었다.

하지만 아윈은 고개를 저었다.

 

 

 

‘숲을 무작정 찾으며 헤맬 수는 없어...’

 

 

 

놀이터 대신 어울려온 숲이라고 해도 익숙함에 취해 위험을 망각할 만큼 아윈은 철부지가 아니었다.

숙련된 모험가조차도 삼켜버린 이 숲의 무서움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아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윈은 선택을 주저하고 있었다.

 

 

 

‘선생이었다면.. 마술로 추적을 했을 거야. 이디아였다면 나무와 바람에게 물어봤겠지...? 하지만 나는?’

 

 

 

선생과 같은 경험과 노련함도, 이디아 같은 재능과 재주도 갖고 있지 않은 나만의 방법을 아윈은 눈을 감고 골몰히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모험가를 떠올렸다.

바로 자신이 보았던 ‘진짜 바다’를 찾아 떠나간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그 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렴풋이 남은 두 사람의 모습을 기억 속에 되새기며 수 없이 들었던 모험담을 머릿속에서 펼쳐 넘긴다.

정확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과 같이 특별함 없이도 전설적인 모험가가 되었다는 아버지의 방식을 아윈은 되새겨 보았다.

아윈의 머릿속에서 기억을 토대로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윈과 함께 언덕의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아버지.

요정의 꽃을 눈에 새기듯 관찰하는 아버지.

그리고 하늘로 날았다가 내려왔을 때, 불었던 바람의 방향과 함께 날렸던 잡동사니의 비거리를 가늠해보고 방향과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아버지.

아윈은 감았던 눈을 힘차게 뜨고 고개를 돌려 태양을 쫓았다.

기울어가는 태양은 저 높이 힐로아의 최고봉.

영주도시 벨로나의 드높은 성벽에 걸려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성벽 너머로 사라지고, 성채를 검게 물들이면 밤이 시작된 다는 것을 아윈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숲이 가장 위험해지는 시간인 동시에, 숲에 잠들어있는 죽음이 깨어내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대낮에도 은은한 빛으로, 하지만 찬란하게 빛났던 요정의 꽃을 떠올리며 아윈은 가방을 열고 식물의 잎으로 꽁꽁 감싼 꾸러미를 꺼냈다.

넓적한 활엽수 잎으로 몇 겹이고 단단히 묶은 포장을 벗겨내자, 꼭꼭 숨겨져 있던 흉측한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묵혀둔 짐승의 내장이 썩어 문드러진 것만큼 흉악한 악취를 내는 검은 빛깔의 질척질척한 덩어리를 아윈은 나뭇가지에 묻혀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옷가지 곳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아주 어렵게 구한 숲에서 가장 위험한 포식자의 배설물, 이것을 몸에 바르는 아윈의 의도는 분명했다.

 

 

 

‘무모하지만... 이 방법뿐이야!’

 

 

 

바람의 방향과 비슷한 무게의 비거리로 추정해 보면, 꽃은 아윈도 결코 접근해 본적 없었던 위험한 지역 쪽으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깊은 숲 속에서 꽃 하나를 찾아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아윈은 생각해냈다.

대낮에도 빛나던 꽃, 꺾어도 빛을 잃지 않던 그 특징을!

 

 

 

‘아버지라도 이렇게 했을 거야! 어둠이 길어지면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찾아낼 수 있어!’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선생의 경고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디아가 아윈이 위험에 처하면서 가져올 선물을 과연 기뻐할 것인가,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아윈은 걸음을 옮겼다.

오기도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 또한 생각할 수 없었다.

멀리 벨로나의 성채로부터 어둠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며 아윈은 다시금 결의를 되새길 겸, 이디아의 저택이 있을 숲의 입구 쪽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쯤이면 이디아의 생일파티가 성대하게 시작되고 있을 그곳을 바라보면서....

 

 

 

“조금 늦을 거야. 이디아.”

 

 

 

라고 말하며 아윈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윈의 눈앞에 이디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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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장 분량까지 2회분이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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