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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테스 (0) 2014/02/25 AM 08:59

1. 비스키야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만난 양치기들과의 대화 중에서

"행복한 시절, 행복했던 수세기를 황금 시대라 이름 붙였던 이유는 오늘날 이 철기 시대에 높이 평가되는 황금이 복된 그 시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소. 저 성스러운 시대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지요. 그 누구라도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달콤하게 익은 열매를 아낌없이 주는, 잎이 무성한 떡갈나무에 손만 뻗으면 되었소이다. 맑은 샘물과 흐르는 강물은 사람들에게 맛 좋고 투명한 물을 충분히 제공해주었지요. 바위 틈새와 움푹 파인 나무 구멍에는 부지런하고 분별력 있는 꿀벌들이 그들의 공화국을 건설하고 가장 달콤한 노동의 풍요한 수확을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구에게나 제공했소. 거대한 코르크나무들은 순수한 호의로 자신의 넓고 큰 껍질을 벗겨내어 거친 기둥으로 지탱되어 있는 가옥들의 지붕을 씌우기 위해 사용되었소, 그것은 오로지 하늘의 눈, 비를 막아주기 위한 것이었다오. 황금시대에는 모두가 평화로웠고, 우애가 넘쳤으며 조화로웠지요. 아름다운 목녀들은 초록색 우엉과 덩굴 잎새로 엮은 것을 걸쳐 몸을 가리고 계곡에서 계곡으로, 언덕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녔지요. 액세서리 같은건 없었습니다. 그녀들이 걸친 장식이란 것은 요즘 여자들이 사용하는 티라나의 자주색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세공한 자주색 비단이 아니라 자연의 낙엽들이었소. 사랑을 나눌 때도 인위적인 언어의 현란함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단순하고 소받하게 표현했지요. 진실과 소탈함 속에는 사기와 속임수, 악이 끼어들지 않았다, 이겁니다. 정의도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혜택이나 이득을 얻기 위해 오늘날 정의를 그토록 더럽히고 교란시키고 탄압하는 사람들도 감히 정의를 뒤흔들거나 모독할 수 없었소. 법관의 머릿속에 성문법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재판할 일도 재판받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소. 아까도 말했듯이 정숙한 여인들도 낯선 사람의 뻔뻔스러움과 음탕함이 자신을 욕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혼자서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여인이 정조를 잃는 일은 스스로 원해서 일어났을 뿐이오. 지금 우리의 이 가증스러운 시대에는 그 옛날 크레타의 미로와 같은 새로운 미로 속에 여인을 숨겨두거나 가둬둔다 해도 안전하지 않소. 사악한 열정에 들뜬 사랑이라는 전염병이 작은 틈새로 스며들어와 그녀의 은신처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오. 시간이 흐르면서 악 또한 더욱 퍼져나갔으므로 편력 기사단을 창설하여 처녀들을 지키고 과부들을 돕고 고아들과 빈민들을 구제하기에 이른 것이오. 친애하는 산양 치는 목동 여러분들, 내가 바로 편력기사단에 있는 사람이오. 여러분이 나와 종자에게 베풀어주신 후한 대접과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편력기사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소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러한 의무를 알지도 못한 채 나를 환대하고 호의를 베풀어주었으니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의 모든 호의로써 당신들에게 감사하는 이유라오."


2. 아름다운 여인 마르셀라를 흠모하다가 자살한 청년 그리소스토모의 장례식에서 마르셀라가 자신을 변호하는 말 (가장 인상 깊음)

"오, 암브로시오!
당신이 말한 이유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해명하러 온 것이며, 그리소스토모가 받은 고통과 그의 죽음을 모두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지 말씀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 자리의 모든 분께 간청드리건대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신중한 여러분들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을 뿐더러, 많은 말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제게 아름다움을 주셔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이 제 아름다움이 저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고 말씀하지요. 여러분이 제게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이유로 제가 여러분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셨고, 더 나아가 그러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타고난 분별력으로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름답기에 사랑받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더욱이 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못생겼을 수도 있는데, 그 못생겼다는 것만으로 증오의 대상이 될 만하다면 '아름답기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비록 못생겼더라도 나를 사랑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똑같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며, 또한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아름다움은 눈을 즐겁게 해주지만 마음까지 빼앗아버리지는 못하지요. 모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마음까지 빼앗겨버린다면,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정착해야 할지 모른 채 혼란스러워하며 방향을 잃을 겁니다. 아름다운 대상이 무한한 만큼 그것을 얻고자 하는 바람 역시 무한한 법이니까요. 제가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진정한 사랑은 깨지지 않으며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믿고 있듯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것인데, 여러분들은 왜 제게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줄 것을 강요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디 한번 말씀해보세요. 하늘이 저를 아름답게 만들었듯이 저를 못생기게 만들었다면 여러분들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가 불평하는 게 옳았겠습니까? 하물며 저의 이 아름다움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님을 아셔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은혜일 뿐 제가 달라고 한 적도, 선택한 적도 없었습니다. 살모사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을 가졌다는 그 천성으로 인해 비난받을 수 없는 것처럼 저 역시 아름다움을 타고났으니 아름답다는 이유로 지탄받을 수는 없지요. 정숙한 여인에게 아름다움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불꽃, 혹은 예리한 칼날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데이지도 베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명예와 정절은 영혼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니, 이런 것이 없는 육체는 비록 아름답더라도 아름답게 보일 수 없는 법입니다. 만일 정절이라는 것이 육체와 영혼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미덕이라면 왜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랑받는 여인이 그저 재미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달려드는 남자의 의도에 의해 정절을 잃어야만 하는 겁니까? 저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또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초원에서의 고독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산속의 나무들이 곧 제 친구이며, 투명한 시냇물이 제 거울입니다. 저는 이 나무들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시냇물에게 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요. 저는 저만치 떨어져있는 불꽃이며, 멀리 놓여진 칼입니다. 제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말로써 정신을 차리게 해왔지요. 그리고 욕망은 희망으로 지탱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리소스토모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고, 그건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제 잔혹함이 그를 죽였다고 하기에 앞서 그의 집착이 그를 죽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의 생각이 옳았기에 제가 그에게 화답해야 했다고 책임을 지우려 하시니, 지금 그의 묘자리를 파고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가 저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저는 그에게 영원히 혼자 살고 싶다는 점과 오로지 대지만이 제 은둔의 열매를 얻을 것이며, 아름다움의 전리품을 가질 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허황되게 집착하고 바람에 맞서 항해하고자 했다면, 그가 지나치게 광기의 바다 한가운데 빠져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제가 그의 마음을 유혹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잘못 아시는 겁니다. 그의 기대에 부흥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저의 선의를 잘못 해석하신 겁니다. 그는 아니라는 것을 다 알았음에도 집착하며 걷잡을 수 없이 좌절의 나락에 빠졌지요. 그 사람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일인데 저에게 죄를 묻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속았다고 불평하시고 아무런 희망의 약속도 없었다고 좌절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유혹했다고 믿어도 좋고, 제가 받아들여 죽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런 약속도 안 했고, 속이지도 않았으며, 유혹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은 사람이니 부디 잔인하다거나 살인자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지금껏 하나님은 저의 운명적 사랑을 원치 않으셨으며 제가 누군가를 선택해 사랑하는 것도 금하셨지요. 이렇게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은 제게 사랑을 고백하시는 모든 분들이 들어두었으면 하는 것이니, 앞으로 저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질투심이나 불행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란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질투심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거절을 경멸로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저를 야수나 바실리스코라 부르는 분은 저를 해롭고 악한 존재처럼 그냥 내버려두세요. 저를 배은망덕하시다 부르는 분은 제게 은혜를 베풀지 마시고, 저를 은혜도 모른다 하시는 분은 저를 알려고 하지 마세요. 저를 잔인하다고 하시는 분은 저를 따라오지 마세요. 이 야수 같고, 바실리스코 같고, 배은망덕하고 잔혹하며 은혜조차 모르는 저는 여러분을 어떤 식으로든 찾지도 않을 것이며, 은혜를 베풀지도 잘 지내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여러분을 따르려 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리소스토모가 인내심이 부족하고 욕망이 지나쳐 죽었을진대, 왜 저의 정직하고 신중한 행동에 죄를 씌우려는 건가요? 제가 나무를 상대로 순결을 지키고 있는데, 왜 남자들을 상대로 그 순결을 잃으라는 것입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재산이 많기에 남의 재산을 탐내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로우며 구속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요. 이 사람을 속이고 저 사람에게 구애하지 않으며, 한 사람을 농락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유혹하지도 않았답니다. 이 마을의 양치기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양을 돌보는 것이 제 기쁨이지요. 결국 이 산이야말로 제 갈망의 대상이며, 만일 제가 이곳에서 발걸음을 내디뎌 제 영혼이 본향을 찾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다 그 누구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등을 돌려서는 가까이 있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남은 이들은 그녀가 아름다울뿐 아니라 참으로 신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경탄해 마지 않았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렸는데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조르바에서는 아름다운 과부를 한 청년이 좋아하고, 역시 거절당하자 자살한다. 그녀의 미모에 질투하던 많은 여인들과 마음을 얻지 못한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고, 결국 그녀는 청년의 아버지에게 목이 베어져 죽게된다. 이런 폭력에 조르바는 홀로 분노하고 대항한다. 조르바와 마르셀라의 삶에 대한 태도는 닮은 점이 있다.


3.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에게 해준 이야기 중

"네, 제 마음의 주인님. 아까 이야기했듯이 이 목동은 토랄바를 사랑했는데, 그 양치기 처녀는 땅딸막한 데다 말괄량이였고, 콧수염도 좀 돋은듯한 게 어찌나 남자 같은지 지금도 눈앞에 보이듯 선하네요."

"그럼 그녀를 안단 말이냐?"
"알지는 못하지만요, 제게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 말이 이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때는 그 여자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불쌍하게도 그 양치기 청년은 불면증으로 완전히 폐인이 돼서 결국에는 그 양치기 처녀를 향한 사랑이 증오와 악의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목동이 그렇게 된 것은 그녀가 불러일으킨 질투심이 도를 지나쳤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목동이 양치기 처녀를 얼마나 혐오스러워했는지, 그녀를 보지 않기 위해 고향땅을 떠나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답니다. 전에는 단 한 번도 목동을 사랑하지 않던 토랄바는 로페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고서야 그를 몹시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그게 바로 여자들의 속성이란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증오하는 자는 사랑하지. 계속해라, 산초야."


4. 빨래방아를 커다란 위험으로 착각한 다음날 아침의 대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웃을 일이 아니라고는 나도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떠들어댈 일은 아니다. 누구나 모든 이치를 다 깨우칠 만큼 사리분별이 명확할 수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5. 마침내 둘시네아가 알돈사 로렌소라는 것을 안 산초에게 슬픈 얼굴의 기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지금까지도 누차 말했지만, 산초야, 넌 참 말이 많다. 게다가 머리가 무딘데도 불구하고 제법 약게 굴려는구나. 그러나 네가 얼마나 미련한 놈이고 또 내가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짧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 어느 아름답고 젊고 자유분방하며 부유하고 특히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과부가 뚱뚱하고 꽤 몸무게가 나갈 것 같은 수도사에게 반해 버렸다고 생각해봐라. 이것을 안 수도원장이 어느 날 그 과부에게 훈계했다.

'부인, 저는 부인같이 그토록 지체 높고 아름답고 부족함 없는 분이 아무개처럼 음탕하고 비천하고 아둔한 남자에게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랑에 빠졌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수도원에는 수사들과 수도사들, 신학자들이 워낙 많아서, 부인께서 마치 배를 고를 때처럼 이게 좋네, 저건 별로야 하면서 선택하실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자 과부는 아주 당돌하고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원장 신부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신부님 눈에 바보처럼 보이는 그 아무개를 제가 잘못 택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원장님께서 아주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이를 사랑하는 제 눈에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철학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산초야,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은 나에게 지상에서 가장 고귀하신 공주님인 것이다."



돈키호테는 정말 너무 재밌게 읽어서 매년 이 책을 뗀 날 세르반테스를 기념하면서 스페인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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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정의 행복 - 레프 톨스토이 (0) 2014/02/23 AM 09:53


하지만 나는 그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겨울 역시 고독 속에서 헛되이 보내고 있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 우울한 고독과 권태로움은 방을 나서지도, 피아노를 거들떠보지도, 책을 손에 잡지도 않을만큼 심해졌다. 카탸가 내게 이런저런 것을 해보라고 설득할 때면 나는 말했다.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으며, '무엇 때문에?' 라는 말이 내 마음 속에 들려온다고.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이 헛되이 사라진 지금, 무언가를 왜 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무엇 때문에'에 대한 다른 답은 없었다.




펭귄 판으로 읽었는데 서문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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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탄잘리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0) 2014/02/23 AM 09:51



님만을, 오직 님만을 원하고 있음을 끝없이 되풀이해 말하도록 내 마음을 이끌어 주소서. 낮이나 밤이나 나를 혼란케하는 모든 욕망은 속속들이 그릇된 것이고 또 공허한 것입니다.
밤이 빛을 향한 열망을 자신의 어둠 속에 감추고 있듯, 내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갈망의 외침이 울리고 있습니다. 「나는 님만을, 오직 님만을 원합니다.」
폭풍우가 온 힘을 다해 평온함을 깨뜨리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평온함 속에서 종말을 맞이하듯, 나의 반항은 님의 사랑을 깨뜨리려 하지만 그럼에도 갈망의 외침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님만을, 오직 님만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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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바닥 소설 (1) 2014/02/08 AM 07:12

심심할 때 자주 읽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집입니다.
정말 재밌고 아름다운 글 들이 많은데, 스타일도 좋구요. 특히 '불을 향해 가는 그녀'는 정말 좋아해서 첨부합니다.
특히 무덤덤한 톤으로 마무리 짓는 마지막 구절이 제일 좋아요. 좁은 문의 마지막 구절 '하녀가 등불을 들고 들어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 멀리 호수가 아련히 반짝인다. 오래된 정원의 썩은 샘물을 달밤에 보는 것 같은 빛깔이다. 호수 건너편 둔덕 숲이 고요히 불타오른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간다. 산불인 모양이다. 물가를 장난감처럼 달리는 증기 펌프가 또렷이 수면에 비친다. 언덕을 시커먼 인파가 끝없이 올라온다. 정신을 차리니, 주변 공기가 소리 없이 바짝 마른 듯 환하다. 언덕 밑 시내 일대는 불바다.

-- 그녀가 빼곡한 사람들 무리를 휘휘 가르며 홀로 언덕을 내려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이는 그녀 한 사람뿐이다. 신기하게도 소리 없는 세계이다. 불바다를 향해 똑바로 치닫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안절부절 못한다. 그때, 말로써가 아닌 그녀의 마음과, 참으로 분명한 대화를 나눈다.

“어째서 당신만 언덕을 내려가는 거지? 불에 타 죽을 셈인가?” “죽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서쪽엔 당신의 집이 있잖아요. 그래서 난 동쪽으로 가요.”
화염 가득한 내 시야에 까만 한 점으로 남은 그녀의 모습을, 내 눈을 찌르는 통증처럼 느끼며 나는 잠을 깼다. 눈꼬리에 눈물이 흘렀다.

내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걷는 것조차 싫다는 그녀의 말을 이미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성에 채찍질하여,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싸늘이 식어버렸다고 겉으로는 체념하고 있었다 해도, 그녀의 감정 어딘가에 나를 위한 한 방울이 있으려니 하면서 실제의 그녀와는 무관하게 오직 나 자신 제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한 자신을 호되게 냉소하면서도 은밀히 담아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꿈을 꾼 걸 보면, 그녀의 마음이 눈곱만치도 내게 없다고 나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굳게 믿어버리고 만 것일까.
꿈은 나의 감정이다. 꿈 속 그녀의 감정은, 내가 지어낸 그녀의 감정이다. 나의 감정이다. 게다가 꿈에는 감정의 허세나 허영이 없잖은가.

이런 생각에, 나는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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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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