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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0) 2015/08/26 PM 06:04
그래버는 정원으로 되돌아 나왔다. 친절하신 분이라니, 하고 그래버는 생각했다 알폰스는 자기가 집단 수용소에 집어 넣은 수학교사 부르마이스터에게도 친절했던가? 아마도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는 친절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정반대겠지.

p. 185

"리저 부인은 지금 집에 없어요. 여성 애국단 모임에 갔어요."
"너절한 여편네들의 모임. 그렇지! 그 여자라면 어울리는 곳이지!"
그래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여자가 없으니 여기 분위기도 금방 달라지는군."
"지금은 현관에 불이 켜져 있어서 다르게 보여요." 엘리자베스가 대꾸했다. "난 그 여자가 나가자마자 곧 불을 켜요."
"그 여자가 있을 때는?"
"아껴야 한다, 그 것이 애국심이다 하면서 잔소리가 심해요. 그래서 모두들 암흑 속에 있지요."
"맞아. 그들은 우리가 그런 상태에 있기를 바라는 거야."

p. 186, 187

방의 일부는 여느 집들과 다름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창문 맞은편 벽에 걸린 화려한 액자 속에는 전나무 잎과 떡갈나무 잎으로 장식된 히틀러의 천연색 초상화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그 밑의 탁자에는 커다란 갈고리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검은 가죽 표지를 한 특제본 [나의 투쟁]이 놓여 있었다. 책의 양쪽에는 초가 꽂힌 은 촛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총통의 사진들이 있었다. 셰퍼드와 함께 찍은 사진, 흰 옷을 입은 아이가 총통에게 꽃을 전달하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명예의 단검과 당원 배지가 진열품의 백미를 장식했다.
그래버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비슷한 것들을 이미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었다. 독재자 숭배는 자연스럽게 종교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가 왜 나이가 들어 버렸다고 느끼는지 이제 알 것 같아 . 더러운 걸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야. 우리보다 나이가 많고 따라서 당연히 현명해야 할 사람들이 휘저어 놓은 똥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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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불멸을 읽다가 (0) 2014/08/09 PM 09:21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고 있다.
첫 100단어를 읽기도 전에, 예전에 농담을 읽던 시기가 떠올랐다. 작가인 밀란 쿤데라가 작품 속에서 불멸을 획득하고 사는 것 같이, 농담의 주인공 루드빅은 시간을 초월해서 살고 있는 그의 삶 일부일지도 모른다. 첫사랑과 이별하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나는 얼마나 루드빅에 몰입했나. 젊음이 주인공일 때 역사는 끔찍했다는 말이 폐부를 깊숙히 찌른다.

그 서툶으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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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로칼랭 - 로맹 가리 (0) 2014/08/04 PM 09:46

대도시 속에서 더 치열해지는 고독.
이방인으로 살아가다 결국 열렬한 포옹이 필요해지고 마는 프롤로고멘 상태의 인간.
모두 같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길 바라는, 동물원 같은 세계, 파시즘에 맞서서 살아가는 진정한 자유로의 열망


예전에 부장이 동료 직원에게 "그 사람은 아무도 마음에 두질 않아." 하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보름 동안 괴로워했다.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해도, 내가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는 사실이 바로 나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그로칼랭이라 이름 붙인 내 비단뱀과 있을 때는 다른 느낌이 든다. 내가 받아들여지고 존재에 둘러싸인 기분이 드는 것이다. 부모가 죽은 것이 확실할 때 남들은 어떻게 위안을 받는지 모르겠다. 비단뱀이 내 몸을 감아 허리와 어깨를 꽉 조이며 목에 제 머리를 기댈 때 눈을 감으면 다정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것이 내가 온몸으로 열망하는 불가능의 끝이다. 말해두지만, 나는 항상 팔이 결핍되어 있다고 느꼈다. 팔 두 개는 허전하다. 팔이 두 개는 더 있어야 한다. 비타민 결핍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결핍이다.

우리에게 신이 부족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신은 아랍의 석유보다 더 흔하니 마음껏 가져다가 사용만 하면 된다.

그녀는 아주 예쁘다. 상상 속에서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만 더 거리감이 느껴질까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집에 비단뱀만 없다면 내겐 여자가 엄청나게 많았울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은 것은 곤란하다. 하지만 나를 위해 일반적으로 거부되고 배척받는 파충류를 기른다는 식으로 넘겨짚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비단뱀을 기르는 이유는 사랑할...... 아니, 용서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이 글의 본 주제인 박물학을 벗어나는 이야기다.

그래도 잠시 망설였다. 나는 나약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약함에 엄청난 힘이 있어서 저항하기 매우 힘들다는 것을 잘 모른다. 나도 내 비단뱀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주의자로 보이기는 싫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노벨문학상을 주려고 드는 부류도 아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체온은 36.6도인데 영하 5도 정도로 느껴진다. 이러한 열 부족은 언젠가 아랍인과 상관없는 새로운 에너지가 발견되어 치유될 것이고, 과학은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으니 언젠가는 콘센트에 접속만 하면 사랑받는 느낌이 들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껍질 속에서도 불편해 하는 것은 그 껍질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부 말이 맞다. 나는 미국적인 잉여 상태로 고생하고 있다. 나는 잉여라는 병에 걸렸다. 나는 이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며, 세계는 흘러 나가지 못해 공격적으로 경쟁하게 된 사랑의 초과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요새 안에서 엄청나게 축적된 애정의 자산이 쇠퇴하고 손상된다. 요도 겸 생식기 말고는 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애정을 절약하고 저축해온 소산이다. 그래서 스테그플레이션 같은 문제가 생긴다.

나는 가끔 모든 사람이 입술을 움직이지만 실제 흘러나오는 대사와 잘 맞지 않는 더빙된 영화 속에 사는 기분이 든다. 촬영 후에 녹음하는 가끔 녹음이 아주 잘되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평생 사랑을 기다려온 사람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계점 주인은 곧 다른 '고급' 시계를 권했다.
"이건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없습니다. 수정 시계라 일 년 내내 가니까요."
"오히려 내가 꼭 있어야 하고 내가 잊어버리면 멈춰버리는 시계를 찾는데요. 나만의 것 말입니다."
타성에 젖은 사람이 다 그렇듯 주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허전해질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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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존재하지 않는 기사 - 이탈로 칼비노 (0) 2014/05/15 AM 02:07


책을 읽은지가 오래 되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한 권을 사면 또 한 권이 나오므로 아무리 빠르게 모으더라도 제논의 역설처럼 평생 따라잡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과 함께 이탈로 칼비노의 선조 3부작 중에 한 권이다. 환상 소설에 가까워서 쉽게 읽히고 150p 가량으로 페이지도 많지 않다. 위 쪽은 맘에 드는 구절을 적어놓았고, 그 아래 감상을 적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나름 분석해보려고 했는데, 머리 속에 구름처럼 떠다니기만 할 뿐 실체가 잘 잡히지가 않는다. 대학시절 읽은 책들의 서평을 쓰지 않은 것이 화가 난다. 감상을 글로 옮겨서 실체로 만들지 말고 머리 속에만 두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본 영화도 제대로 리뷰한 적이 없다. 써보려고 하면 할수록 글이 막히는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 이 서평도 어딘가 끊어진 것처럼 끝나버렸다. 다음 책을 읽고는 제대로 쓸 수 있으려나.



‘젊은이는 그렇게 언제나 여자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그를 떠민 게 정말 그녀에 대한 사랑일까? 혹시 그를 떠민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아닐까? 여인만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존재의 확실성을 찾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행복하기도 하고 절망적이기도 한 젊은이는 달려가서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 여자란 분명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이며 그녀만이 그의 존재를 확인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자 역시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젊은이 앞에 있는 그 여자도 불안에 떨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젊은이는 어떻게 할까? 두 사람 중 누가 힘이 세고 누가 약한지가 중요할까?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젊은이는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가 갈망하는 그녀는 존재하는 여자이고 분명한 여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많은 것을 안다. 아니 더 적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그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들을 알고 있다.’
-p. 80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내가 여기 왔다, 여인이여. 당신이 어떻게 나의 사랑을 기꺼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 여인은 대관절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녀는 내가 자기에게 줄 수 있고 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격분해서 이성을 잃더니 갑자기 한순간 그녀에 대한 사랑은 순전히 자신에 대한 사랑,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 버렸고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둘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사랑으로 변했다.
-p. 105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소설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

내용은 이렇다. 오래전 떠돌이였던 아질울포는 겁탈당하려던 소프로니아를 구해 주고 기사작위를 받았는데 어느 날 그녀의 아들임을 주장하는 청년 토리스먼드가 나타난다. 소프로니아의 처녀성을 지킴으로써 기사작위를 받고 지금껏 기사로 존재할 수 있었던 아질울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뒤를 구르둘루, 브라다만테, 랭보가 쫓는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는 네 명의 주요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하얀 갑옷으로만 존재한다. 그는 의지로 일어나 의식으로만 존재한다. 그의 갑옷 안은 육체가 없고, 비어있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전쟁터를 걸어와도 언제나 그의 갑옷은 흠집 하나 없어 이질적으로 보이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옳고 이성적이다. 실존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존재로의 그는 완벽함, 이데아, 초자아 등을 상징한다.

두 번째 인물은 아질울포의 하인인 구르둘루다. 그는 존재하지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물에 자신을 동일시하려고 한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짐작할 수 없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성적 욕구,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마도 원초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르둘루가 아질울포의 하인인 것은 당연하다.

세 번째 인물은 아질울포를 짝사랑하는 여기사 브라다만테로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혼돈의 모순적 인간이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어리석고 허약한 인간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나를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루초 마르크스의 말에서 탄생한 것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모순적 존재인 아질울포(비현실적인 완벽함)에게 끌린다.

마지막은 젊은 기사 지망생인 랭보다. 그는 전쟁에서 아버지가 이교도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그 복수를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전투에서 청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그 기사가 브라다만테라는 것을(브라다만테라는 것보다는 여성임을) 알게 된 후에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후 그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브라다만테에 대한 사랑 혹은 성욕에서 에너지를 얻으므로 리비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구르둘루를 제외한 세 사람의 관계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버지를 잃은 랭보는 복수의 방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질울포를 만난다. 비현실적인 아질울포에게서 차가움을 느끼고, 그가 알려주는 지식에 대해서 고지식하다거나,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이 생기면 그에게 털어놓고 싶은 모순적인 감정을 품는다.(아질울포 역시도 전쟁터에 처음 발을 디딘 랭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브라다만테가 사랑하는 존재가 아질울포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하는데 그 후에 다른 기사가 아질울포를 공격하자 뱉는 말은 아주 인상적이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 아니 내가 보기에는 모두 너무 잘 정리되어 있고 질서정연한 것 같아……. 난 덕성과 용기를 보았는데 모든 것이 아주 차가웠어. 네게 고백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기사가 있다는 게 난 두려워……. 하지만 난 그에게 감탄했는데 그 사람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존재하는 사람보다도 더 신뢰할 수 있어. 그리고 거의…….”
랭보는 이렇게 말하다가 얼굴을 붉혔다.
“난 브라다만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질울포는 분명 우리 군대 최고의 기사야.”
-p.85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상태로 등장하는 랭보는 죽어버린 아버지보다 아질울포를 더 아버지처럼 대한다. 두려워하면서도 의존하고 싶어 하다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자, 그를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소설의 구조가 상당히 쉬워지고 결말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브라다만테의 사랑을 얻는 법이란 복잡할 필요 없이 정의된다. 부친인 아질울포와의 동일시를 통해 초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실체 없는 의식, 지식과 의지의 집합체를 상징하는 존재를 알고 있다. 랭보가 그를 받아들일 상태가 되면 아질울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부친과의 동일시는 외형적으로도 준비되어있다. 동일시는 그의 하얀 갑옷을 입는 것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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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농담 - 밀란 쿤데라 (0) 2014/02/26 AM 10:01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게 내게서 달아나 버린 이 여인은 도피의 여신, 헛된 추적의 여신, 안개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내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미친 듯이 등불을 흔들어대며 해안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밤에, 길 잃은 배가 거친 파도에 휩싸여 헤맬 때, 이 사람은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그러나 나는 이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의 파도가 나를 온통 집어삼켰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내 나이에 대한 분노였고.......

나는 문득 내가 당에서 축출당했던 그 사건을 불가피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아득히 멀고 너무도 문학적인 이야기로만 비추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의 물결, 그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 것 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가겠는가.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만 상쇄한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 질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왜 왕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것은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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