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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게임기] [NES] 패미콤 콘솔 (2) 2009/10/06 PM 02:17


>정보
타이틀: ファミリ ーコンピュ ータ(ファミコン) /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NES)
제조사: Nintendo
발매일: JP 1983년 7월 15일 / US 1985년 10월 18일 / EU 1986년 9월 1일
총출하대수 : 약 6,200만대

패미콤의 개발은 1980년부터 마사유키 유에무라 가 이끄는 닌텐도 R&D팀에 의해 비밀리에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경쟁사들보다 저렴하고 최소 1년 동안은 뒤쳐질리 없는 뛰어난 성능의 콘솔이었다. 이를 위해 키보드, 모뎀, 플로피 디스크 등의 악세사리는 전부 배척되었고 15 핀의 확장포트가 달렸다. 장난감이란 느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흰색과 눈에 띄는 빨간색의 조합으로 도장되고 양옆에 패드를 눈에 띄게 장착시키는 도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1982년 몇 개의 아케이드 게임을 성공적으로 발매한 닌텐도는 곧 이 새로운 콘솔의 발매를 선언하고 견인을 위해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 3개(Donkey Kong, Donkey Kong Jr. 그리고 Popeye)를 동시발매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1983년 7월 15일 14,800엔이라는 가격에 출시된 패미콤은 몇 달 동안 호조의 판매량을 보이며 선전하였으나 곧 몇몇 소비자들로부터 게임들이 중간에 멈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칩셋의 충돌에 원인이 있음을 파악한 닌텐도는 그해 쇼핑 시즌 직전에 전량을 리콜하고 수백만 달러를 손해보면서 문제가 완전히 고쳐질때까지 생산을 중단하였었다. 새로운 마더보드로 개선된 패미콤은 곧 경쟁기종 Sega SG-1000을 추월하고 1984년까지 250만대를 일본에서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일본에서의 성공으로 고조된 닌텐도는 곧 큰 시장을 가진 북미권으로 눈을 돌렸다. 우선 닌텐도는 패미콤을 [Nintendo Enhanced Video System]이란 이름을 발매시키기위해 권리를 가지고 있는 아타리와 접촉을 시도하였다. 패미콤을 잠재적 경쟁기종으로 본 아타리는 타협을 거부해왔지만 또 다른 경쟁기종인 콜레코에서 인기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을 구동시키는 것을 보고 닌텐도가 콜레코를 상대해줄 거라는 기대하에 결국 계약을 맺게된다. 그러나 계약 직후에 일어난 ‘북미 비디오 게임의 몰락’ 일명 아타리 쇼크로 아타리가 이 계약사항을 따르지 못할 만큼 좆ㅋ망ㅋ되었고, 닌텐도를 결국 아무런 문제없이 홀로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 (AVS)를 개발하게 된다.

아타리의 몰락이 발매된 콘솔에 대한 자사의 콘트롤 능력 부족이라고 눈치 깐 닌텐도는 10NES라는 락칩을 개발하여 라이센스되지 않은 소프트들의 구동을 막고 본사의 기준에 맞는 소프트만이 발매되도록 제어를 강화시켰다(지나친 통제는 SFC 이후 닌텐도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허나 아타리 쇼크 후 비디오 게임을 단순히 일시적 유행이라 보게 된 시장을 설득시키기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당시 많은 리테일러들이 게임기들을 진열장에 올리기를 망설이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피하기 위해 닌텐도는 패미콤을 완전한 홈컴퓨터로 개조시키기로 했다. 키보드, 카세트 녹음기, BASIC interpreter가 든 카트리지를 추가하고 조이스틱, 패드, 음악 키보드등도 패키지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키보드, 데이터 레코더, 패드 등의 모든 입력 장치들이 적외선 장치를 통해 무선으로 작동되도록 만들었다. 본체의 디자인도 개선되어 장난감 같았던 일본의 적백 스킴이 아니라 박스 형태의 컴퓨터스러움을 기본 골자로 단조로운 문양과 약간의 뉘앙스를 준 회색계열로 도색되어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되었다. 1984년 여름과 겨울의 Com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이 AVS를 선보였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분명 진보된 장치들이 도입된 첨단 시스템이란 인지는 있었지만 키보드와 패드 등의 무선 입력 장치가 시원스럽게 작동하지 않았고 아직 아타리 쇼크를 기억하고 있던 상인들은 단 한명도 이 기기를 주문하지 않았다.

1985년 여름, 닌텐도는 종전에 세웠던 홈컴퓨터적인 접근을 완전히 뒤엎고 장난감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기존의 키보드와 레코더 장치는 모두 빼버리고 재퍼 건콘 그리고 ROB(robotic operating buddy, 배터리로 작동되는 플라스틱 로봇이 스크린의 특정 플래쉬와 반응하여 움직인다)라는 주변장치를 선보인 것이다. ROB라는 물건은 많은 리테일러의 흥미를 끌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선뜻 계약에 나서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Nintendo SWAT team'이라 명명된 홍보팀이 벌인 적극적인 캠페인(텔레마케팅, 백화점 데몬스트레이션, 모든 손해를 닌텐도에서 책임진다는 리스크 프리 계약 등등)을 본 후에야 겨우 계약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약 500명의 소매상들의 지지를 겨우 얻은 닌텐도는 뉴욕에서 시범 마케팅을 열기로 한다. 팔리지 않은 물품과 소비자들의 리턴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90일 연장된 대금징수와 모든 셋업과 홍보는 닌텐도에서 부담하기로 되어있었다. 1985년 10월 18일 뉴욕에 십만대의 상품을 배포하면서 첫 세일의 개막을 알리고, 1986년 2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판매를 시작. 이후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의 12개 대도시의 점포에 진열되고 이내 전국으로 확산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뉴욕에서 최초로 발매된 Deluxe Set에는 재퍼, ROB 주변기기과 대응 게임인 Gyromite와 Duck Hunt가 기본동봉되었으며 가격은 $249.99(현재 물가로 $495)였다. 이후 출시된 저가버전의 Control Deck은 리테일 가격이 $199.99(현재 물가로 $396)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만 동봉되었다.

미국에서의 성공으로 유럽 진출은 한결 수월히 이루어졌지만 먼저 진출하여 터전을 잡은 Sega Master (Mark III)로 인해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 당시 많은 유럽 소매상인들이 기술적으로 앞선 세가 마스터의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987년 이라는 늦은 시기에 등장하였음에도 닌텐도의 느린 반응으로 인해 초기에는 외면 받았지만 말기에 약간의 호조를 보이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세가 마스터를 근소한 차이로 앞섰지만 역시 북미의 마진에 비교할 바는 못 됐다.

닌텐도는 1991년 SFC가 발매된 후에도 새로운 버전의 FC를 만들고 ‘와리오의 숲’을 발매하는 등 3년 이상 서포트를 계속하였다. 수많은 양질의 게임들로 현재는 제법 머리가 굵어진 청년들의 유년기를 열광시킨 패미콤. 1995년이 되어서야 생산이 중지되어 10년 넘게 공장을 가동시킨 몇안되는 콘솔 중 하나이다.

>소장정보
북미 NES Action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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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추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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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에 미국판이 있었는데, 가장흔한 고장이 칩셋결합부위가 닳았는지 팩을 넣어도 인식을 못하는경우가 자주있었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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