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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사전] 운 (0) 2017/05/30 AM 12:07

[운]

: 이미 정하여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과 기수(氣數) 
 
- 나는 '운'과는 참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다.

 스물아홉살이었던 그때는 정말 아홉수라도 있었는지 힘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이혼과 취업에 대한 부담감과 혼자 짊어진 여러 책임은 그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불운으로 다가왔다. 아홉수가 있다면, 제대로 치른 사람 중 한명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 치른 가장 큰 불운으로 인해 채워진 운이었을까?

 그 다음해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나름 좋은 곳에 취업을 했다. 그 이후 요즈음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 많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있고, 아이들도 엄마의 부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랄만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운은 이렇다. 각각의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른 운의 최저치와 최고치가 정해져있고, 불행을 겪게 되면 그만큼의 운이 채워지는 메카니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세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옛 말이 아니듯이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을 현재의 불운만큼, 아니 보다 몇갑절 좋은 날을 맞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운]

: 이미 정하여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불운을 이겨낸 다음에는 반드시 행운으로 보상되는 메카니즘 혹은 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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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사전] 아내 (12) 2016/09/19 PM 07:08

[아내]

: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

  

 

 1.

 나에게 청명한 세상을 안겨준 첫 번째 아내에게,

 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보면 참 나는 무덤덤했어. 그렇게 이쁘지도 귀엽지도 않아서였나 

 세 번째 만났을 때,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나랑 더 있고 싶어서 집에 가기 싫다고 안겼던 너의 모습에 너무 당황스러웠어.

 솔직히 만난 지 얼마 안돼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웃기게도 그때부터 너를 좋아하기 시작한 거 같아. 

 너를 만나면서 집에만 쳐박혀있던 내가 여러 경험을 했었어. 잿빛 세상이 선명하고 푸르게 보인 건 너를 만난 이후부터였어.

 어디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내가 너로 인해서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했었어. 그리고 평생 겪지 못할 경험도 많이 했어 

 찜질방에서 자고 있을 때 우리 핸드폰 훔쳐간 도둑들 잡아서 경찰차도 타보고, 배탈이 나서 쓰러진 너 때문에 구급차도 타보고. 

 그리고 그때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어, 너랑 만나려고 한 푼, 두 푼 모아서 떡볶이, 햄버거 같이 군것질거리 사 먹는 게 다였던 우리는 그래도 참 행복했었던 거 같아. 그렇게 2년 정도를 너와 함께 만나면서 이 사람이면 나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막연함 속에 아주 선명하게 학교 수업을 마칠 때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와 내 아이의 이미지가 있었어.

 

 

 

 그 막연함이 신에게 닿아서였을까?

 

 

 

 아직 21살이었던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불과 2주 만에 알았고 어쩌면 이 상황을 낙태라는 수단을 통해 되돌리기 쉬웠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는 낳기로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기 전, 8개월까지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고민하지도 않았어. 당연히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 나중에 부모님에게 알리고 나서 양쪽 집안이 뒤집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긴 설득끝에 첫째 아이를 낳기로 허락 받았어

 첫째 아이를 낳던 날, 불과 21살이었던 우리가 뭘 안다고 서명을 하고 했겠어. 무통 주사 동의서에는 온갖 부작용으로 인한 책임은 본인들이 진다는 내용들밖에 없어서 서명을 못하겠더라. 너가 어떻게 될까봐. 그 이후에 너가 아프다고, 아프다고 병원에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퇴근하던 마취담당 선생님을 돌아오게 해서 맞았지. 10시간의 진통에 지친 내가 잠시 밥을 먹으러 나갔을 때 아이가 나온다는 전화가 와서 급하게 뛰어가서 탯줄을 잘랐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너는 그 이후에도 어떻게 아이 낳는데 밥을 먹을 수 있냐며 서운하다고 했었어. 너는 풀스윙으로 뺨 때렸다. 진짜 너랑 만나고 나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스펙타클한지 모르겠다. 장모님한테도 헤드락을 걸질 않나.

 첫째 아이를 낳고서 6개월 있다가 나는 군대를 가야 했어. 이것도 남들에 비하면 늦은 편이라 서둘렀었어. 입대 전에 회사에 나간 너 대신 아이를 보다 잠깐 안 본 사이에 침대에서 떨어져서 잘못될까봐 엄청 걱정했었어.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부모님 생신 때 전화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아내 생일도 관계 없냐는 나의 물음으로 우리 소대 담당 조교한테 내가 결혼한 사실을 어필 할 기회가 있어서 했어. 그러다가 내 사정이 궁금했는지 훈련 중간 쉬는 시간에 나를 불렀지.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애기는 몇 살이냐고 묻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어. 애기들 높은 데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 해서 너무 걱정됐었어. 그리고 그 핏덩이와 너를 두고 여기 있는 내가 너무 서럽더라. 막 우는 나를 안쓰럽게 보던 조교는 내 사정이 딱했는지 배려해줘서 훈련이 끝난 뒤,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해줬어. 전화통화 후, 첫째 아이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훈련을 잘 받을 수 있었어. 그 조교한테 항상 고맙다는 생각을 해.

 공군이 시험을 봐서 자대 배치받으니까 서울 근처로 가려고 얼마나 공부를 했었는지. 진짜 남들 잘 때 공부하고 외우고, 평소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가점받으려고 생활관 방송 담당 같은 것도 했어. 하면서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 나름 보람이 있었어.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인지 서울 가까이에 자대를 배치받았어.

 그렇게 자대배치를 받고 매주 면회를 오던 너한테 고맙다는 말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어. 오히려 힘들다, 못 살겠다 하기만 했었지. 너도 육아에 시집살이에 직장생활에나보다 어쩌면 더 지옥 같은 하루를 살았을 너인데 나는 푸념과 잔소리만 늘어놓고 참 못났었던 거 같아. 제대하고도 잘해주겠다는 내 약속도 잠시였고 또 공부한다고 너한테 신경을 못 썼어. 안 썼다는 게 맞겠다. 진짜 못된 남편이었어.

 이렇게 편지를 적다 보니 너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주말에 화장실 청소한다고 나한테 애들을 맡기고는 한 시간쯤 뒤에 땀을 흘리면서 화장실 청소를 끝냈던 너,

 친구 결혼식에 가는데 입을 옷이 없어서 가는 길에 펑펑 울어버렸던 너,

 한 번만 나랑 칵테일 같이 마시고 싶다고 했었던 너,

 시아버지 눈치 보느라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밥상도 없이 방바닥에 웅크려서 식은 밥을 먹던 너,

 학생으로 경제력이 없던 나 때문에 힘든 몸을 이끌고 우리 가정을 책임졌던 너,

 

        

 내가 너무 무심하고, 능력이 없어서 그때는 못 해주고 지나가 버린 일이 너무 많아.

 내색은 안 했지만 항상 고맙고 미안했어. 내가 남들 앞에서는 너를 함부로 대했지만, 너없는 자리에서는 너무 자랑스러워했어.

 내 옆에 서서 나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너를 보면 존경하고 복받쳤어.

 내가 결혼식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말했었지?

 친구들이 너를 왜 좋아했냐고 했을 때 시골 여자 같아서 좋다는 내 대답에 모두가 웃었지만, 나는 한마디 덧붙였어.

    

 "요즘 여자 같지 않아서"

   

 그래 나는 그런 너를 사랑해.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어도, 화장기 없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밥을 우걱우걱 먹는 너를 사랑해.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세 아이 낳아주고 키워줘서 고맙고, 열심히 살아줘서 존경해.

 수업을 마칠 때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와 내 아이를 두 손으로 안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막연하고 잿빛이 만연했던 나의 삶에 선명하고 푸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되어준 너에게 너무 고마워.

  

 

2.

 나의 삶을 잿빛으로 태워버린 두 번째 아내에게,

 너한테는 어떤 욕을 해도 모자랄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건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아직도 그 날이 상처처럼 새겨져서 생생해. 지옥이 있다면, 그 때가 지옥이었어. 

 내가 지방에서 최종면접을 보고 올라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날,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라.

   

 "걔, 딴 남자랑 살림 차렸다더라."

 

 그 날 마침 엄마가 생일이었던 너에게 미역국을 가져다주려고 장모님한테 연락했고 장모님이 얘기해주셨지.

 6개월 전쯤 싸우고 애들 데리고 나가서 나는 장모님 댁에 잘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애들 데리고 그놈 집에서 장장 6개월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났어.

 너가 그딴 짓을 했다는 것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새끼들이 그렇게 있었다는 게 치가 떨렸어.

 죽이고 싶었어.

 면접을 잘보고 뭐고 나는 분하고 어이가 없어서 올라가는 열차에서 부들부들 떨었어.

 올라가자마자 장모님 댁에 무작정 찾아갔어. 아무도 없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한참을 앉아있었어.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이제는 장인이라고 하기도 싫은 사람이 왔지.

 나는 인사를 했는데,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더라.

 왜 여기 있냐고, 너네 끝난 거 아니냐고, 남의 집에 막 이렇게 들어와 있어도 되냐고?

 남의 집? 내가 그 말 듣고 울화가 치미는 거 억지로 누르고 눌러 물어봤어.

 딴 사람이랑 살고 있는 거 맞냐고.

 그렇대, 근데 너가 회사 그만두고 능력 없어서 그 놈한테 간 거래,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다가 나를 벌써 남이라고 생각하는 그 작자 집에서 나왔어.

 내가 왜 그딴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더라.

 항상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밤 10시까지 취업준비를 하고 들어와서 컴퓨터를 하는 나한테 너는 항상 뭐라고 했었지.

 그 동안 너는 다른 남자 만날 궁리를 했으면서, 돈 못버는 나를 얼마나 속으로 비교했을까?

 돈이 없어 삼각김밥으로 배를 채우던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내가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는 걸 알기나 했을까?

 나는 너가 딴 살림 차린줄도 모르고 전화 잘 안받는 상황을 너가 바빠서 그렇겠지라고 내 스스로를 납득시켰고,

 빨리 취업해서 못해준 거 다 해줘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진 순간,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가는 내내 울었어, 병신같이.

 그래도 장모님은 나를 생각해주셨는지 너랑 한번 만나게 해주셨었어.

 만나서 울면서 얘기했어. 내가 지금 분하고 화나는 거, 너가 6개월 동안 했던 모든 행동 다 용서해준다고.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마음 떠났고, 그 사람 사랑한다고 나랑은 같이 살 생각 없다는 말 뿐이었어.

 사람들 많은 곳에서 무릎 꿇고 내 뺨을 때리면서 빌었어.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잘해주겠다고, 애들 생각하라고.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지.

 결정적으로 부부간의 신의를 저버린 너한테 나는 왜 내가 잘못했다고 울고 불며 매달려야 했을까?

 아이들 때문이었어.

 사정하고 애원하기를 수백번, 어느 순간 냉정해지더라.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 너 사업 시작한다고 차를 사줬을 때부터였을 꺼야.

 자동차 동호회를 나가면서 연락도 안 되고 밤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어, 그 때 사달이 난거겠지.

 애초에 장모님 댁에 있지도 않고 그 놈 집에서 내 자식들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하다 아이들 생각을 하니까 정이 확 떨어지더라.

 그 날 깨져버린 마음을 하나하나 줍고 주워 붙이고 나서도 계속 떨어져나가는 조각나는 마음을 부여잡고 부여잡다가,

 잠은 안 오고 말을 해야겠더라 누구한테.

 그래서 영희형한테 전화해서 머뭇거리다가 말했어.

 솔직히 생각은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내가 정말 이 거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믿기질 않았어.

 형한테 말하면서도 울었고, 내 옆에서 자는 딸아이옆에서 나는 소리도 못내고 몇 시간을 펑펑 울었어

 근데 웃긴 건 왜 나만 슬퍼하고 가슴 찢어지고 해야 했던 건데...

 너는 앞으로 너의 인생에서 나만 없어지면 행복할 것처럼 대답했어.

 그 날 이후로 너가 사줬었던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그 날의 월과 일이 되어 멈춰있어.

 나는 죽어도 그 날을 잊지 않을 거야.

 너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마음을 서슴없이 깨뜨려버리고 불태워 잿빛으로 만들어버린 그 날을 잊지 않아.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와 슬픔을 안겨줄 너를 평생 저주한다.


 

3.

 나한테 첫 번째, 두 번째 아내는 없다. 그럴만큼 잘난 놈이 아니다. 한 명의 아내가 있었을 뿐이지.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버린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직도 나는 이해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사람을 둘로 나눠 각각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한 사람에게는 무한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한 사람에게는 한으로 얼룩진 말들을 내뱉고 싶었다.

 이제는 둘인듯 하나인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려한다.

 

 한 때는 아내였던 너에게,

 그렇게 된 후에 내가 언젠가 술 한잔하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 한 적 있었지?

 나와 아이들을 두고 간 너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평소에는 날 이렇게 만든 너한테 욕을 너무 퍼붓고 싶었어.

 근데 왜 첫마디가 "잘지내니?" 였을까? 불행하길 바라던 내 입에서... 그리고 말을 이었어.

 애들이랑 나 버리고 행복하느냐고 왜 그랬냐고 채근하던 나한테 돌아오는 말은 없었어. 대신 너의 흐느낌만 돌아왔지.

 그 순간에 너가 나를 매정하게 버리는 장면보다 나 때문에 울고 고생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나도 무슨 말을 할 수 없었어.

 욕도 저주도 퍼부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나를 버린 너도, 고생하고 인내했던 너도 너였으니까.

 

 몇 분동안 흐느끼던 너가 말했어.

 "미안해"

 

 그리고 내가 말했어. 내 자신도 놀랄만큼 다정하게.

 "미안할 짓은 왜 했어? 뭘 잘했다고 울어, 내가 울고 싶은데"


 그리고 너가 말했어.

 "애들은 잘 지내지?"


 그리고 내가 말했어.

 "잘지낸다. 엄마 없이도 기특하게."


 그리고 너가 말했어.

 "미안해."


 그리고 내가 말했어.

 "잘못해줘서 미안하다. 고생만 시키고. 너가 살려고 나갈만큼 갑갑한 집이었으니까, 나도 이해해. 그러니까 나랑 애들 버리고 간만큼 잘 살아."


 그리고 너는 말이 없었어. 또 흐느끼기 시작했어.


 그리고 내가 말했어. 마지막으로.

 "정말 사랑했어. 이제 전화할 일 없을꺼야."


 나는 솔직히 아직도 혼란스럽다. 예전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 날 정도로 속상하고 아련한데, 그 시점 이후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화가나.

 측은하면서 미워.

 하루는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 비가 갑작스럽게 오던 날, 아빠가 큰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었나봐.

 너도 걱정이 됐는지 교문앞에 서서 기다리더라고... 그 모습을 아빠가 봤겠지.

 엄마는 너한테 전화했고, 너는 그래도 엄마라고 기다렸는데 그렇게 못봐서 울면서 얘기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너무 가슴이 먹먹해졌어.

 정말 많이 미워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불쌍해서 나도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두 이질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나는 너를 어떻게 기억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거니...

 나한테 무엇보다도 소중한 아이들을 품에 안겨줬고, 나에게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모두 주었으면서, 한편으로는 죽고 싶을 만큼 고통과 배신감, 비참함을 준 너를 어떻게 해야되는건지 모르겠어.

 이 편지는 너한테 쓰는 편지지만, 갈 수는 없겠지.

 그래도 첫 번째,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은 고치고 싶다.


 그래 나는 그런 너를 사랑했어.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어도, 화장기 없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밥을 우걱우걱 먹어도 너를 사랑했어.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세 아이 낳아주고 키워줘서 고맙고, 열심히 살아줘서 존경했어.

 수업을 마칠 때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와 내 아이를 두 손으로 안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어.

 막연하고 잿빛이 만연했던 나의 삶에 선명하고 푸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되어준 너에게 너무 고마워 지금도.


 나는 죽어도 그 날을 잊지 않을 거야.

 너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마음을 서슴없이 깨뜨려버리고 불태워 잿빛으로 만들어버린 그 날을 잊지 않아.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와 슬픔을 안겨줄 너를 평생 미워하겠지만, 저주하지 않아.

 대신 내가 고생시킨 만큼, 나와 너의 아이들과 맞바꾼 삶인만큼 제발 잘 살아.




[아내]

: 마음을 산산히 부수어버린 여자이자, 부서져버린 그 마음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희망과 기억을 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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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도넛팔    친구신청

ㅠㅜ 슬픈 이야기네요.

wedge    친구신청

네, 지금의 제 이야기에요.

GUIDEPOST    친구신청

곧!! 행복한 날이 올거에요 그때까지만 견뎌요

wedge    친구신청

ㅋㅋ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씨발라마    친구신청

마음이 아프네요... ㅇㅅㅜ

wedge    친구신청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ㅠ_ㅠ

황혼의 수호자    친구신청

헤어진 사람한테 더 잘살고 있고 좋은 사람 만나서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래요.

wedge    친구신청

혼자인 것도 무리일 것 같고 좋은 사람 만나고는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네요~ ^^
꼭 좋은 모습 보여주려구요~ 복수심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저와 아이들을 위해서...

황혼의 수호자    친구신청

그렇죠 복수가 주가 아닌 본인과 아이들의 먼저가 되야죠..,

wedge    친구신청

넵, 이제는 그래도 미운마음보다는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져서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7시간일본닼    친구신청

어린 나이에.. 상처를 겪으셨군요...
솔직히 누가 잘못했다 이런건 말못하겠습니다.
힘내시고 새 사랑도 찾으시고 세 아이들도 잘 키우세요.
현실은 힘들것 같지만 그래도 이겨내시길 염원합니다~

wedge    친구신청

비교적 어린 나이라면 어린 나이였죠 ㅎㅎ
말씀처럼 저도 잘한건 없고 누구의 잘잘못은 없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잘이겨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삶의 사전] 딸 (14) 2016/09/04 PM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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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 여자로 태어난 자식

 

- 나에게는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다.

 모든 자식들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딸에게 더욱 정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소위 말하는 딸바보 아빠’가 나인 것 같다. 또한, 나에게 딸은 나에게 있어 더욱 애잔하며 아픈 자식이다.

 2010 2 월에 처음 세상에서 나와 만난 내 딸은 태어난 모든 아기가 그렇듯 작고 따뜻했다.

 아들을 유독 좋아하시고 딸을 이상하게도 싫어하셨던 아버지 덕에 딸은 아내와 내가 전적으로 키우게 되었다.

 당연히 부모가 키우는 것이 맞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졌던 아내와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던 나에게 육아는 큰 일 이었다. 한편으로는 첫째 아들의 육아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도와주셨던 부모님 덕에 갓 태어난 둘째에게 전적으로 신경 쓸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 정도가 지난 후 육아휴직이 끝나 다시 일터로 돌아간 아내,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에게 낮에 아이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딸은 낮에는 사설 유아돌봄시설에 맡겨졌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아내가 퇴근할 무렵에는 아이를 시설에서 데려와 집에 데려다놓고 다시 공부를 하러갔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나이인 것 같았지만 그렇게 두고 가는 아빠를 종종 걸음으로 서서 바라보는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몇 주를 지내던 중 아이의 대변에서 당근이나 채소 덩어리가 나왔고 그 어린 아이는 탈이 났다. 문제는 사설 유아돌봄시설에서 다른 큰 아이들이 씹어먹어야 될 채소들을 이도 나지 않은 내 딸에게 준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딸을 맡길 시설이 없어 탈이 난 채로 계속 같은 곳에 보내야만 했다. 신경 좀 써달라고 말을 해도 어린 부모에 대한 무시였는지 나아지지 않았다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추워져 딸을 데려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어린 것이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얼마나 춥고 아프고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아직도 하게 된다.




1.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게 몹시 추웠다. 어김없이 딸을 데리러 갔고, 집까지 가는 마을버스정류장을 향했다. 아기 띠를 메고 걷는 동안 아이가 입고있던 바지와 내복이 말려 올라가 종아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찬바람이 아이의 살결을 매섭게 할퀴었다. 걱정이 되어 입고 있던 점퍼를 벗고 아이를 싸서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버스는 올 줄 몰랐고, 점퍼의 틈새로 찬바람이 파고들어 차갑게 얼어버린 아이의 종아리를 내 손으로 어루만지며 마을버스가 오는 지를 살폈다. 기다리면서 못난 부모 때문에 배탈까지 나고 추운 겨울 거리를 매일같이 다녀야 하는 딸에게 너무 미안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빨리 취업해서 이 고생을 끝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온 한숨을 툭 뱉고는 문득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춥고 배탈로 속이 말이 아닐 텐데 뭐가 좋은지...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아빠가 뭐가 좋은지... 그렇게 웃고 있었다. 울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어서였을까, 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에 비례해 더 울었다. 내 자신이 너무 못나서 그대로 서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나를 보고 웃어주는 이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딸은 점점 자랐고 나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되며 한편으로는 나를 지탱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아내 역시 나를 지탱해주는 큰 존재였으나 여러 일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된 후, 혼자가 된 나에게 딸은 더욱 소중해졌다.


 아이 셋을 전적으로 아빠인 내가 부담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있었다. 전 직장의 경영 악화로 인해 다른 직장을 구하던 도중 이런 사달이 났다. 그 일이 있고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어 전 직장을 같이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매일 연락하던 동기 형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먼저 취업이 된 형에게 다짜고짜 전화해서 조금 머뭇거리다가 "형, 저 이혼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딴 남자가 생겨서 애들을 내가 키우게 됐어요."라는 말을 하고 옆에서 자고 있던 딸의 숨소리를 듣고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형은 처음에 장난치지말라고 이 상황을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눈물로 젖어버린 나의 목소리에 이내 납득했다. 그리고는 나의 우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 얘기는 이쯤에서 접어둬야겠다. 딸에 대한 이야기가 이혼얘기로 퇴색 될 것 같다. 그렇게 졸지에 애 셋 딸린 이혼남이 되어 취업준비를 하게 되었다. 맘이 뒤숭숭해서 뭐든 손에 안잡혔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두 달 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운이 좋게도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라도 힘든 나를 돕는 게 맞다. 나를 사지로 몰려면 충분히 몰았다. 아이들을 이 세상에 놔두고 저 세상으로 가고 싶을 만큼...

 



2. 새로 들어간 회사 연수중에 나의 팀장이 되실 분을 신입사원들의 회식자리에서 처음 뵈었다. 여러 테이블을 전전하다가 팀장님이 계신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본인의 팀에 들어올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아이가 세명있고, 결혼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셨다. 그때 당시에는 이혼은 확정이었지만 서류까지 정리 된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도 물론 모르고 계신다. 그렇게 술잔이 오고가고 몇 마디를 나누던 중 팀장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너는 이제 취업해서 첫월급 타면 가장 하고 싶은게 뭐니?"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 "놀고 싶습니다.", "여행가고 싶습니다." 등의 무난한 답변을 할 수 있었지만, 문득 그 질문에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연수때문에 같이 있어줄 수 없는 딸이 생각났다. 연수를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나에게 잘가라고 인사를 하고 색칠공부를 하고 있던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답했다.


"애들한테 취업준비한다고 못해준게 너무 많습니다. 장난감도 못사주고, 사달라는 과자하나 제대로..."


말을 맺기가 무섭게 또 가슴이 뜨거워져서 울고 말았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이혼과 딸과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갔다.

우는 나를 덤덤히 보시던 팀장님께서는 지갑에서 십만원을 꺼내시며 "이번주에 올라가서 애들 사주고 와라." 라고 하셨다.

나는 우는 얼굴을 황급히 정리하고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받으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시간이 지나서 말씀하시기를 무척이나 놀라셨다고 했다. 그때 덩달아 옆에 앉아있던 여자 동기도 울었고 지금 회사의 동기중에서 내 상황을 제일 먼저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울어버린 내가 너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3. 2015년인 작년, 딸아이와 막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다. 반차를 쓰고 늦지않기 위해 서둘렀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모두 다 참석하겠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전부니까 늦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하지만 부모들의 극성 덕분에 내가 도착한 6시 30분에 이미 자리는 모두 차있었다. 재롱잔치 전날 통화하면서 아빠가 꼭 간다고 통화했는데 많은 인파속에서 아빠를 찾지 못할까봐 걱정되었다. 행사는 시작했고 딸의 차례가 왔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딸이 아빠가 왔음을 알아주기를 바랬지만, 쉽지 않았다. 따로 자리를 잡으신 부모님과 첫째 아들의 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딸이었지만, 아빠가 왔는지 계속 찾는 눈치였다. 그렇게 아빠가 왔는지도 모르는 채 모든 원생 아이들이 나와 합창을 하는 마지막 순서까지 지나왔다. 아빠가 안와서 서운한지 무표정으로 합창하는 딸의 모습에 너무 미안해서 다시 한번 크게 딸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을 들은 딸은 놀란 얼굴로 나를 찾았고 나와 눈이 마주친 딸은 또,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이 웃는 딸의 모습에서 어렸을 때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울렸던 그 미소가 떠올랐다.

복받쳐오르는 무언가에 또 눈물이 났고 고개를 돌려 눈 주변을 훔쳤다.


 

 

[딸]

: 한없이 아프고 아프며, 벅차고 벅차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살아가게 하는 유일무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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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리타짱짱몬    친구신청

ㅠㅠ

wedge    친구신청

울지마세요~ㅎㅎ

Veloci Raptor    친구신청

가슴이 참 먹먹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행복한 일이 가득 넘치는 그런 가족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wedge    친구신청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길고 답답하게 보이는 글인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기도해주신다니 더 감사합니다~!

루리웹-7467211426    친구신청

훌륭한 아빠 이십니다.
살아갈 날들이 더 소중하기에 더욱 힘내시고 가족 모두 행복하게 회복되시길 마음 모아 기도드립니다~

wedge    친구신청

제가 엄마 몫까지 하려면 아직 많이 부족해요 ㅠ_ㅠ
꼭 행복한 가족이 될께요~

MadGear    친구신청

저 역시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게 많아서인지, 보면서 몇번이고 울어버렸네요.

wedge    친구신청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럴수록 애들한테 더 잘해줘야하는데 요즘에는 많이 신경을 못썼네요.

별의고동    친구신청

화이팅! 행복하세요

wedge    친구신청

넵! 고동님도 행복하세요 ㅋ

SoulHackrs    친구신청

일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몇번이나 울컥하는걸 참고 봤습니다. 네 저도 이제 20개월된 흔히 말하는 딸바보입니다. 미운 2살이라고 가끔 힘들게도 하고 사고도 치지만 별로 해준것도 없는 이 바보같은 아빠를 찾고 활짝 웃을때면 정말 표현할수 없는 기쁨이 생기더군요. 정말정말 이 얘를 위해서 뭐든지 해주고 싶다라는 맘도 들구요.
힘내시구요 애들도 아마 아빠의 이런 고충과 노력을 언젠가 알아줄 날이 올꺼라고 믿습니다.

wedge    친구신청

먼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주변 친구들은 아직 32, 31살에 아직 결혼을 안했거나 이제 막 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일을 이야기해도 많이 공감은 못하더라구요. SoulHackrs 님께서 일하시는 와중에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아이들이 나중에 이해해주면 좋으련만 삐뚤어지게만 안컸으면 합니다.

황혼의 수호자    친구신청

앞으로 사는 인생 행복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wedge    친구신청

황혼의 수호자 님께서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삶의 사전] 죽음 (4) 2016/08/10 PM 09:04

gateofheaven.jpg

 

 

[죽음]
: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生)의 종말을 말한다. 
 
- 삶의 사전에서 제일 처음 얘기하게 될 단어가 '죽음'이 될 줄은 몰랐다. 어떤 단어를 시작으로 내 삶을 정리해 나가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보통은 어떤 일의 서두를 장식하거나, 시작하기 위한 단어로 오히려 '삶' 혹은 '탄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죽음'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정의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현상이며, 어느 누구도 이것에 대해 확실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가장 부정확한 개념이다. 저 사전적 의미조차 맞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고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가수 신해철 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면서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내뱉던 그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이었으며, 그가 라디오를 진행할 때 말했던 멘트가 문득 떠올랐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자신은 유서를 적는다고 했었다.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다며 익살스러운 말투로 말했고, 이내 진지해진 말투로 왜 자신이 유서를 남기는지에 대해 말했다. 자신이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서였을까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났다. 신해철 씨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많은 걱정이 있었겠지만, 그렇게 새해마다 써내려갔던 유서가 그에게는 안도할 수 있는 한 부분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 뒤에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나의 감정들과 생각을 정리했었던 것 같다.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개념,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 고차원적인 것들에 대해서 단순하게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삶'이라는 것은 삼십년이라는 짧은 삶을 통해 정의하는 것은 섣부르기도 하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며, 나중에는 좀 더 나이가 든 뒤에는 적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삶'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순간은 나에게 '죽음'이라는 놈이 나를 엄습할 때가 가까워졌을 때가 될 것 같다.
  죽음이라는 상태가 마치 텔레비전의 전원이 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나라는 자아만 존재하는 상태인지, 종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이라는 어떤 차원으로 보내지는 것인지, 아예 자아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천국에 다녀온 소년 (Heaven Is for Real, 2014)이라는 영화는 사후세계를 경험한 한 아이에 대한 실화를 다루고 있다. 나는 사후세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편이다. 죽음이라는 상태에 이른 후, 그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으며 무언가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할 뿐이다.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한 사이클이 아니라, 더 큰 개념의 삶이 존재하고 그 순환의 일부일 수도 있고... 이렇듯 나는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정의할 수 없다, 이것이 나의 한계이며 현실이다.
  죽음은 검은색이나 어두운 배경, 혹은 무서운 이미지로 보통 표현된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는 죽는다는게 무서운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 이미지가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겪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친하지도 않고 말도 해본적없는 아이였지만, 그 애의 친한 친구가 우리반에 있어 거의 매일 놀러오곤해서 남같지는 않았다. 그 아이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등교하던 중 갑작스럽게 교문앞에서 쓰러졌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방학이 끝나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친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았다.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 아이가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안쓰러웠으며, 답답했다. 그와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  
 
모르겠다,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 가끔 너무 힘이 드는 순간이 왔을 때, 문득 그렇게 자신의 삶을 꽃피우지 못한 그 아이를 생각하며 마음을 바로잡았다. 나에게는 '죽음'이 오히려 나를 일으켜세우는 '삶'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된다면 그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겪을 많은 죽음 속에서 누군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슬프고 괴롭겠지만, 그 누군가와의 아름다운 추억속에서 웃을 수 있도록 '죽음'보다도 어쩌면 더 지독하고 괴팍한 '삶'이라는 녀석과 잘 지내야겠다. 또한, 앞서 얘기했던 신해철 씨처럼 죽음을 맞이할 최소한의 준비도 필요할 것 같다.
 
 계속 쓰다 보니 무슨 말을 어떻게 끝내고,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정의보다도 나의 단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갈 단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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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n    친구신청

이런 식으로 글을 썼던 작가들이 생각나네요. 잘 봤슴니다.

wedge    친구신청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글이♡    친구신청

어릴 때는 죽음이 많이 두려웠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죽음 그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더라구요. 차라리 그 과정에서의 고통이 더 두렵구요. 예전엔 나라는 존재와 자아가 사라진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웠던 것인데, 생각해 보니 매일 겪는 수면과 죽음은 전혀 다를 게 없더군요. 긴 잠인지 짧은 잠인지의 차이일 뿐. 그래서 저는 사후세계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아요. 사후에도 세계가 있어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길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이겠죠. 물론 실제로 죽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지만요.

wedge    친구신청

동글이님 말씀처럼 생각해보니 죽음은 내 자아를 느낄 수 없는 수면과 느낌이 비슷하네요.
저는 죽음 자체보다는 그렇게 가버리고 남아있을 자식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장 괴롭네요.
그래서 몸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ㅋㅋ
[삶의 사전] '삶의 사전'을 작성하기에 앞서서 (2) 2016/08/10 PM 08:55
 나 자신을 드러내기 극히 싫어하는 나로서 이걸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느낀 많은 감정과 기억의 편린들속에 존재하는, 나에게 의미 있는 단어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가끔은 넋 놓고 하나의 단어를 정하고 그것으로 파생되는 내 삶의 여러 기억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이 내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사색한다.
 그 시간 동안 정리해놓은 나만의 의미는 그 당시에만 존재하고 휘발되어버려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단어를 하나하나 정리하며 나 자체를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걸 적고 있고 이것이 내 삶에 있어서 무의미한 일이 되지 않길 바란다. 이 글을 누가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이 먹고 할 짓없다, 허세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냥 꾸밈없이 내 삶을 정리하는 작업이니까 허세는 없고, 딴지를 걸고 싶으면 걸고, 수긍하면 수긍할 수 있는 일종의 낙서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일단, 내 삶은 평범하지않다. 스무살부터 보통사람은 겪을 수 없는 버라이어티한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내 원래 삶인지, 어디서부터 뒤틀려버린 건인지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그가 안배해놓은 삶이라면, 그에게 욕지거리를 해도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말 못할 사정도 있고 솔직히 녹록하지 않다. 앞서 말한 보통은 겪을 수 없는 일이 크게 세 번 있었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그 일들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들은 그대로 내가 작성할 이 '삶의 사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때로는 긍정적인 단어를 극히 부정적이고 삐딱한 나만의 시선으로 정의하더라도 내 삶이 투영된 정의이므로 '이런 삶을 살았구나'라는 수준에서 봐주었으면한다.
 
[원래는 카카오스토리에 작성하고 있었던 글이었지만 회사 지인들에게 제 삶을 다 오픈하기도 그렇고해서
차라리 이곳에 올려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이야기 하는 게 맞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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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n    친구신청

좋은 시작이군여

wedge    친구신청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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