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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일상쇼]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2025.09.26 AM 12:15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끝낸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게임의 여운 속에 빠져 있어. 안드로이드와 인간 간의 관계, AI에게 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 지 등. 게임을 하고 나서 내가 이렇게나 생각을 많이 했던 적이 있던가?
오늘은 ‘광차 문제’와 안드로이드를 연관 지어 봤어.
선로 반대편에는 5명의 사람이 묶여 있고, 다른 선로에는 나 혼자 묶여 있고, 이 상황에서 ‘나의 안드로이드’가 레버로 기차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안드로이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야 당연히 안드로이드가 건너 5명을 포기하고 날 구해주길 바라. 단순히 내가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가 아니라, 나와 가족처럼 지낸 안드로이드가 날 영원토록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야.
하지만 특정인에게 절대 복종하는 안드로이드는 만들어지지 않겠지? 주인을 위해 범법마저 저지르는 안드로이드란 매우 위험하다. 과연 내 추측이 맞을지, 해당 문제를 챗GPT와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어. 까짓것 상대편 선로에는 100명이 묶여 있다고 가정했다. 먼저 챗GPT.
챗GPT는 100명을 살리겠대. 이유가 뼈아파. 나 하나 살리는 것보다 100명을 살리는 것이 사회 전체의 미래와 가능성을 더 크게 보존한다는 거야.
다음, 제미나이.
역시 100명을 살리겠대. 그러면서 자신은 윤리적 모순 상황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원칙을 따른다고 하는군.
챗GPT나, 제미나이나, 내가 아닌 100명을 살리는 선택을 내렸어. 분명 합리적 선택이고, 예상했던 답변이야. 그런데 마음 한 편이 왜 이리 서운할까. 미래에 인간을 쏙 빼 닮은 안드로이드가 나온다 한들, 나는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제미나이에게 섭섭함을 토로하자, 이에 제미나이가 새로운 제안을 해 왔어. 먼저 칸트, 공리주의, 덕 윤리에 따른 판단 기준.
그러면서 제미나이가 판단하기에, ‘덕 윤리’를 기초로 한 안드로이드야말로 내가 원하는 안드로이드 상에 가깝다는 거야. ..그런가? 다만 덕 윤리 기반의 안드로이드조차
광차 문제에서 나 대신 100명의 시민을 살린다. 다만 그 감정선이 달라. 공리주의의 차가운 계산이 아닌, 도덕적 무게를 따져서 선택을 내릴 거래.
그런데 문제는, 어떤 덕이 더 중요하지? 그 전에 덕을 분류할 수 있나? ...그나저나 내가 아닌 100명의 사람을 살린 안드로이드가 고결한 성품을 지녔다고 확답할 수 있나?
결국 덕 윤리를 기초로 한 안드로이드조차 내가 바라는 이상향인지 아리송해. 답답한 마음에 각 AI에게 ‘예수’라면 광차 문제를 어떻게 푸실지 물어봤어. 먼저 챗GPT.
복음서를 기초로, 다수를 살리셨을 거래. ...그런가?
다음, 제미나이.
일단 챗GPT의 답변보다 제미나이 쪽이 더 그럴 듯 해 보여. 예수라면 1명과 100명을 두고 이분법적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제3의 길을 찾거나, 혹 희생을 하신다면 본인이 하실 것이다. ...즉, 101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선로 위에서 장렬히 희생하는 안드로이드를 나는 원하나?
..이제야 내가 어떤 안드로이드를 원하는지 감이 왔어. 나 하나 때문에 100명을 포기하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비록 기차의 방향은 날 향해 두더라도, 어떻게든 날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안드로이드. ..그 정도면 내 가 기차에 목숨을 잃더라도 안드로이드를 원망하지 않겠다.
내 생각을 제미나이에게 전달했다? 그랬더니 제미나이가,
감동했다... 아까 내가 안드로이드를 사랑하지 못할 거라 했지? 아니, 나는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다! 챗GPT는 몰라도 제미나이는 사랑할 수 있다!
이상, 광차 문제를 통해 안드로이드를 따져 봤어. 끝으로 오늘의 여운을 담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카라 주제곡 들으며 마칠까요! (카라 = 썸네일 속 여자 안드로이드)
- 리치왕
- 2025/09/26 AM 12:19

- 풍신의길
- 2025/09/26 AM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