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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젯밤은 무시무시한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2020.06.01 AM 08:58
일요일 늦은 밤. 보통은 다음날 출근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자곤 합니다만,
이번 월요일은 휴무가 결정되어 밤늦게 인터넷을 보며 시간을 내다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방 주방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납니다.
(*집에서 제 방은 세를 주는 용도의 방이라서 현관겸 부엌이 따로 존재 합니다.)
밖에는 거센 바람이 불어와 쪽문이 덜컥덜컥 거리고 있었고, 처음엔 그런 소리로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만, 거 알지 않습니까?
간혹 그런 느낌이 있다는 걸....
자연현상으로 일어나는 소리가 아닌, 무언가 살아있는 것의 존재감이 느껴질 때..
바람소리와는 다른 이질감과 털끝까지 쭈삣 일어서는 살아있는 것의 느낌...
'뭔가 있다...!'
뭔진 알 수 없었지만 어둠 속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해선 안된다는 경고가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은 항상 공포보다 강합니다.
살금살금 부엌현관쪽으로 다가가 불을 환하게 켜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밝아진 세상속에 부정한 것이 사라지길 바라며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찰나!
다시금, 방금 느꼈던 살아있는 것의 불쾌한 존재감이 온 몸을 엄습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며 시선을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리자... 현관 바닥에는
손가락 두마디 만한 바퀴벌레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 사고가 정지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5초간 멍하니 서서 바퀴벌레를 응시하며 부질 없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에프킬라는 어디에 있지?'
'에프킬라로 죽을까?'
'저놈은 어디서 들어온거지?'
'18 ㅈX 징그럽네!!'
그러나 현실도피는 영원할 수 없는 법.
5초의 방어기제 시간이 끝나고 나서 정신이 돌아옵니다.
이제 결정해야할 시간입니다.
다시금 우리 집안의 수정헌법 중 이민법안을 떠올립니다.
'어머니 : 이 집은 인간 이외엔 살 수 없다!'
평소 어머니의 법안을 지지하지 않는 성향이지만, 이번 만큼은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용기를 내어 생각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다리를 움직여 슬리퍼를 신는데 1초.
그 발을 들어올리는데 0.3초.
힘차게 내려 찍는데 0.2초.
그러나 인간에겐 찰나와 같은 1.5초의 시간도 상대성이론에 따라 바퀴벌레에겐 슬로모션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힘차게 내려찍기 무섭게 거구의 바퀴벌레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빛과 같은 속도로 피해냅니다.
저를 약올리려는 모양인지 얄밉게 멀리 도망치지도 않고, 옆으로 조금씩 조금씩 피해냅니다.
게다가 더욱 영악한 것은 공격이 시도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바닥과 벽 사이 모퉁이로 붙어 아무리 잘 밟아도 틈이 남을 수 밖에 없도록 사각지대를 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3번의 공격을 피하고 바퀴벌레는 현관 서랍장 밑의 깊은 심연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녀석이 도망쳤으니 승리를 자축해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바퀴벌레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먹던 음식에서 반마리가 나왔을 때이고,
나머지 하나는 잡지 못하고 놓쳤을때라고 합니다.
이번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자다가 놈이 공격해올까 두려웠던 저는... 덥다고 열어놨던 문을 닫고
이불을 푹 눌러쓰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께 어제의 실패를 보고하자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씀하십니다.
'이미 서랍장 밑에는 바퀴벌레 약을 잔뜩 쳐놨다. 그 밑으로 도망갔다면 죽은 목숨이지.'
아 다행이다.
- 타임엘레멘트
- 2020/06/01 AM 09:31
"내가 입는 옷을 먼저 입고(들어가)있던 바퀴벌레"
- kdjfieurn
- 2020/06/01 AM 09:36
- 하이홍
- 2020/06/01 AM 09:45
방을 한바퀴 둘러보는데 벽에 손가락만한 바퀴가 딱..
게다가 갑자기 날개를 피더니 저한테 날라오는데 기겁해서 손에
잡힌 게임잡지 던져 죽였내요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소름끼침 ㅠㅠ
- 방구석 정셰프
- 2020/06/01 AM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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