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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지구가 멈추는 날2014.01.23 PM 05:42
"11월 11일, 지상을 떠나온 지 180일이 넘은 것으로 생각된다. 오랜 시간 햇빛을 보지 못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다. 탐사선 내부에 설치된 대부분의 기계는 자기장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졌고, 나를 제외한 탐사원은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우리의 지식으로 예상할 수 있었던, 모든 장애에 대비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아, 나는 오랫동안 혼자 임무를 수행했으며, 지쳤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 것도 끝이다. 내일이면 탐사선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모든 운명은 내일 결정될 것이다."
보이스 레코더를 내려놓았다. 그 것은 내가 임무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다.
지상은 지금 겨울이다.
탐사선의 외부는 지옥의 불길을 옮겨 놓은 것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탐사선 안은 따뜻했다. 탐사선의 온도 조절 장치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수많은 기계가 고장났지만, 나를 포함하여 임무를 끝마치기 위한 모든 부품들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탐사선의 외부가 녹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 지구의 내부를 탐사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높았던 지구 내부의 열과 자기장 때문에, 탐사선 외부의 일부분과 내부의 장치들이 고장 났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는 지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마저 모두 탐사선 외부를 지키는 것에 사용했다. 지구 내부를 탐사하고 돌아가 지구의 영웅이 되겠다던 탐사원들은 모두 이 여행을 견지디 못했다. 차라리, 나도 동료들처럼 끝없는 안식을 향했더라면...... 홀로 지내야만 했던 수 없이 많은 밤이 그런 생각들로 날 괴롭혔다. 탐사선의 외부처럼 내 마음 속에도 지옥이 끓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 모든 것이 다 끝이다. 내일 마지막 날에 내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어느 날,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인간의 몸이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1조분의 1초
1억분의 1초.
그렇게 천천히 변했다. 우리는 지구가 언젠가 멈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했다. 태양을 조사하기 위해 탐사선이 출발했고, 화성을, 수성을, 금성을 우리의 터전을 잃지 않으려 수많은 우주선이 지구 외부를 탐사하기 위해 떠났다. 하루는 점점 길어졌다. 그렇게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구 외부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지구의 중심을 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탐사선이 지구 핵을 향해 떠났다. 나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유때문에 그 탐사선에 탑승했다.
“다들 시간이 없다는 건 알고 있겠죠. 탐사선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
“존, 당신은 어째서 이 임무에 지원했죠?”
“나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내일이면 지구의 핵에 도달한다.
나는 그날 밤, 탐사선에 탑승한 후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밝은 빛에 눈을 떴을 때 탐사선은 이미 멈춰 있었다. 지구의 안에는 또 하나의 태양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는 지구가 탄생한 이래 항상 같은 빛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그 에너지는 항상 그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웅웅 소리를 내며, 지구의 핵이 울었다. 나는 눈을 들어 그 밝은 빛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주시하자 나는 점점 더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숨을 뱉어낼 수가 없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나는 이제 멈출거야.'
'나는 이제 멈출거야.'
지구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이 그건 너무도 편안했다. 나는 물었다.
'왜 멈추려고 하지? 태양은 아직 불타고 있는데, 왜 네가 먼저 멈추는거야?'
'힘을 잃었지.'
지구는 죽어가고 있었다. 지구가 온 몸으로 말했다.
‘처음에 나는 스스로 돌 수 있었어. 처음 내가 태어나 미생물들이 내 몸 위를 덮고, 공룡들이 내 위를 뛰어 다닐 때, 그 때는 스스로 돌며 그들을 돌볼 수 있었지. 그리고 한참을 흘러,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했지. 그 때 모든 것이 변했어. 그들은 말했지, 누군가를 위해 세상은 돌고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돌린다고. 세상을 모두 뒤엎고 있는 말의 힘은 엄청나서 내 마음을 변화시켰고, 나는 스스로 도는 법을 잊어버렸지. 몸의 변화가 마음을 변화시켜 버린 거야. 이제는 스스로 도는 법을 다시 기억해 낼 수 가 없어.’
지상은 더 이상 아무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발달된 문명이, 혹은 우리의 발달된 과학이, 삶의 질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새로운 윤리가 우리를 변화시킨 것이다. 모두 작은 쾌락을 쫓고, 큰 쾌락을 쫓고, 쾌락만이 지배하는 세상. 감정의 교류는 없고, 육체적 교류만이 존재하며, 기계적으로 일상을 사는 그런 세상. 아무도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움직일 수 없는 세상. 처음엔 천천히 이뤄졌지만, 곧 급격히 빨라진 변화들이 우리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고 지구를 멈추게 하고 있었다.
지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이 마지막 사람이야. 그래서 만나고 싶었어.’
나는 지구를 움직이게 하는 마지막 사람이다. 나는 지구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 있는 마지막 사람이고, 종말을 가져올 사람이다. 나는 지상에 있는 그녀를 생각했다. 내가 마지막 사람이라면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타오르는 가슴의 지옥에 존재하는 차가운 강을 느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그녀를 위해서 나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이제는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따스함이 심장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정신 감정을 받을지 몰라, 비웃을 것을 알기에 그 때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지구를 고쳐서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싶다.’는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어제 꾼 꿈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대화하다가 함께 영원히 꿈꿀 것이다.
2008년에 써놨던거네요.
문득 이 때의 감정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댓글 : 4 개
- 불타는 김치덮밥
- 2014/01/23 PM 05:48
목성의 노래 오마쥬 같은 느낌이네요 ㅎㅎ
- Siz.
- 2014/01/23 PM 05:57
자이언트로보 이야긴줄 알았는데...
- netknight
- 2014/01/23 PM 06:03
결국 멈추는군요.....
- 그라우쉐라
- 2014/01/23 PM 06:15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사랑이 지구를 움직인다니
살짝 영화 코어를 보는 느낌도 납니다
사랑이 지구를 움직인다니
살짝 영화 코어를 보는 느낌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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