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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해후2014.01.23 PM 11:15
'딩동딩동!'
현관벨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괘종시계가 뎅뎅하고 열두시를 쳤기 때문에 밤이 아주 늦은 것을 알았다. 이 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올만한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어 나는 읽고 있던 책을 곧바로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반갑네. 미하일. 왠일인가?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다니."
역시나 현관에는 오래된 친구가 서있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것이 벌써 40년. 어느새 함께 하지않는 시간을 상상할 수 없는, 유쾌하고도 애틋한 친구는 온 몸이 비에 젖은 채로 아주 슬픈 표정을 하고 현관에 서있었다. 깜짝 놀라 나는 그의 코트를 벗기고 테이블에 앉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자 미하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왔네. 아마 자네와 나의 마지막 대화가 될거라고 생각되네."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겐가?"
"나는 이제 떠나야한다네. 저 곳으로."
미하일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렇게 나이를 먹게되면 큰 병도 작은 병도 찾아오기 마련이고 언제나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몸이 아픈가.
"그게 아닐세."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방금보다 조금 더 굳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때문에 평소처럼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았다.
"아픈게 아닌가? 그럼......"
온갖 상상이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게 아닐세. 시간이 없네. 내 얘기를 차분히 듣게나. 이건 자네에게만 해주는 이야기라네."
그리고 그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지구인이 아니라네. 아니지. 어쩌면 지구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만.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인이 외계인인 셈이지만. 나는 여기서 235만 광년 떨어진 파비앙이라는 별에서 왔네. 우리말로 하자면 RFHDAOUKJS(여기서 그는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발음을 했다.)정도 지만, 그래. 우리가 성지라고 부르는 별이지. 나는 이 곳에 동생을 찾으러 왔네. 오래전에 이 곳으로 날아온 내 동생을 말이야."
그는 여기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찾았나?"
내가 물었다.
"찾기야 찾았지. 그래서 오늘 떠나려는 거라네. 그 애에 대해 이제 충분히 알았거든. 데리고 돌아갈 수 없는게 아쉬울 다름이라네. 내가 너무 늦었어."
"그게 무슨 얘긴가? 설마 동생이 죽기라도 한건가?"
"아닐세. 그 이유를 가르쳐주려면 우선 우리 별 사람들만이 가지는 어떤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만. 다시 한번 들어보게나."
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별 사람들은 나이를 먹게되면 한 가지 능력이 생긴다네. 이 능력이 어째서 주어진 것인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신께 오랫동안 봉사해왔기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하지. 선물이라면 선물이고 벌이라면 벌이겠지만 우리는 단 한번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네. 놀라지 말게. 우리는 몸을 둘로 분열한다네. 나 역시 분열된거지."
그는 내 얼굴을 한번 빤히 바라보았다.
"오오, 제발 상상하지는 말게나. 가운데로 갈라진 채 걸어다니는 건 아니니까 말일세. 그건 자네로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야. 나는 이 순간에도 우리 집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고 있는 또 다른 나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네. 자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보자면 자네의 양쪽 눈이 다리가 달려서 각각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보고 있고 자네는 동시에 그 두 곳을 인지하는 것과 같지.
(여기서 나는 다리 달린 두 눈이 돌아다니는 모습과 눈이 모두 뽑힌 채로 걸어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소름이 끼쳤다.) 상상이 되는가? 우리는 또 다른 나를 타인이라고 생각해야하는지 아니면 자신이라고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네. 분명 두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하나라네. 그리고 동시에 들어오는 두가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마치 두 개로 나누어진 몸이 자네의 손이나 같은거야.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손이지."
나는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미하일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도, 아니 제대로 알아들을 수 조차 없었다.
"너무 깊게 들어갔구만. 어쨌든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별로 재미가 없지. 대부분의 인생은 지나치게 안정적이야. 내 동생은 그런 삶을 거부했네. 어쩌면 조금 괴팍한 사람이였는지도 몰라. 그는 우리의 성지를 떠나, 환경이 비슷한 다른 별에 정착했다네. 그 곳이 바로 여기, 지구지.
그가 왔을 때 지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네. 커다랗고 진화가 덜 된 동물들만 있을 뿐이었어. 내 동생은 강한 의지와 힘으로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네. 그리고 동시에 외로움과 두려움에 지쳐, 누군가에 보호받고 싶다고도 생각했다네. 마침내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네. 그는 자신을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둘로 분리했고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사랑해오며, 이제껏 지구에 살아 남아온거야."
그는 목이 탄 듯 내가 따라놓은 와인을 한 잔 들이켰다.
"이제 알겠나? 인류는 그렇게 시작된거라네. 나는 동생을 만났지만 만나지 못하기도 한거지. 사랑하면 닮는다던가, 닮은 사람과 만나면 오랫동안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말하자면 그런거야. 계속해서 변형되고 나누어진 유전자속에는 최초의 형태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이 숨어있다네. 그래서 가장 가까운 형제유전자를 만나면 마음 속 깊숙히부터 행복을 느끼는거야. 그리고 다시 최초의 모습에 가까워 오기를 바라면서 아이를 낳지. 내 동생은 인류 전부인거야."
나는 미하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길고 긴 우주의 시간에서 몇 만년이나 몇 십만년 정도는 어쩌면 굉장히 짧은거라네. 그래서 나는 동생을 찾는 것을 조금 주저했던거야. 이런 결과가 될지는 상상도 못하고선 말이지...... 이제는 함께 이야기할 수도 안아볼 수도 없게 되었어.
나는 이제 떠나야겠네. 또 몇 만년, 몇 십만년이 지나고 나면 내 동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미하일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 친구."
"잘 있게. 사랑하는 내 동생."
갑자기 밝은 빛이 망막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지난 유쾌했던 대화들을 회상하며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졌다.
2007년에 적어두었는데 요새 별그대에 완전히 빠져있어서 꺼내보았습니다.
원래는 두남자의 삶의 여정을 브로맨스적으로 써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었죠.
이 글을 보면 본래는 주인공인 내가, 은연중에 친구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잘 표현되지 않았네요.
2007년 당시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이런 류의 이야기는 참 많더군요.
댓글 : 1 개
- 앗티수터
- 2014/02/11 AM 09:07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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