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는 글쓰기] 밀물2014.01.24 PM 11:19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한 남자가 병원에 찾아와서 수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먼저 불면증이 있냐고 물었고, 많은 양의 수면제는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면증은 없는데 잠이 설드는게 문제라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취해봤다며 꿈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나는 호기심에 악몽을 자주 꾸냐고 물었고, 그는 꿈이 무서운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꿈이 무서운 이유

얼마전 오랜만에 그녀의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 엘리아나의 꿈을 자주 꾸곤 했는데 어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깨어나서 기억하는 꿈 그 외에 잊혀져 기억하지 못하는 꿈까지 모두 알 수 있게된다면 내 뇌에서는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그녀가 왜 나의 밤의 세계에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 때의 그 시간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할겁니다. 그때의 그 시간들이, 지난 후에야 알게된 나의 간악한 면들과 모자란 것들을 저 멀리 던져놓는다면 아니, 그 때의 그 모자람까지 모두 더해놓는다고 해도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녀야말로 나의 사랑이었고, 뮤즈였고, 아테나였고, 아프로디테였습니다. 그녀는 그때만큼은!(그는 이 단어를 강조했다) 내가 태고의 어떤 시간에 잃어버린 반쪽의 영혼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로 채워진 한 편의 소네트였으며 수많은 세상의 진실이자 지고의 아름다움 그 자체인 여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변화하듯이 언제인지 특정할 수 없는 순간에 우리의 사랑도 다음 단계로 들어섰고 시간은 무참히도 내가 이 입과 마음으로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귓바퀴와 귓볼에 전하던 그 성스러운 단어들, 또한 그보다 그 뒤에 숨겨져있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을 모두 파헤치거나 희석시켜 놓았고, 이제는 사랑했었다라는 기억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 깨어있을 때는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꿈 속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되어 있는 현재의 이 상황 자체가 너무도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감정이란 것은 그 반작용이 명확해서 낮의 나에게 있어서는 그녀야 잊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 불과한데도, 꿈은 그 뿌리로 들어가면 내 욕망의 투영인지라 내가 그녀에게 뭔가 바라고 있는 것이 남았나 싶어 스스로 죄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며칠이 더 지나자 더 자주 그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 속에서 그녀를 만나는 일은 이제 현실에서 그녀를 마주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실제의 그녀는 만날만한 장소가 있고, 상황이 있고, 또 실제로 마주친다하여도 잠깐 서로 흠칫하고 놀라거나 할 뿐으로 대화가 계속될리는 만무하거니와, 혹여나 또 반드시 그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여도 서로의 감정이나 입장이 있는 탓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반면에 꿈 속의 그녀는 어떤 날의 꿈에 등장할지 알 수 없고, 또 때때로 꿈일 것을 알고 있다 하여도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우리는 미지의 것을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알고 계시겠죠. 꿈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습니다.) 또한 그러다보니 꿈 속의 그녀에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깨고 난 후의 기억만 남은 탓에 잘못 대처했다 싶으면 다시 잠들어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며, 거기에 애초에 꿈 속의 그녀는 내가 지난 기억에 생명을 붙여 어떤 날의 표정과 어떤 날의 말투, 또 몸짓, 대화 등을 참고해서 만들어낸 스스로의 창작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라서 결국에는 내가 느꼈던 그녀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고, 현실의 그녀와 다르게 나와 말도 하고 웃어도 주니 미칠 노릇입니다. 이슬람의 세밀화가들은 스스로 신이 보는 모습대로 그리기 위해서 수천번 수만번 그림을 그리다가 눈이 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실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고 했으니, 이제 저도 그녀와 헤어지고 낮의 세계에서 그녀를 완전히 놓아버리고 나서야 그녀에게 '눈멈'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 같아, 점점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다시는 낮의 세계에 그녀가 오지 못하도록 밤의 세계에서도 내쫓아 내고 싶은 것, 이런 이유로 꿈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에, 나는 이 이상한 이야기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사흘치의 수면제를 처방해주었다. 처방전을 받은 후에 그는 '감사합니다. 이제 됐네요. 낮의 나는 그녀를 완전히 잊었거든요.'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흘이 지난 후에 그는 다시 병원에 밝은 표정으로 와서는 또 사흘치의 수면제를 받아갔고,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후에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어느 날 수면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후에 그가 감정의 파고에 따라 우리 모두 흔들리는 날이 있다는 것, 아쉽게도 그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마 낮의 그가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생각을 그의 대뇌에서 친절하게 밤의 세계로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났다면 밤의 세계에서 재조직된 그녀의 기억들이 그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그는 그녀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데 성공했으리라.
그러나 인위적으로 밤의 그에게서 그녀를 떼어놓자, 견딜수 없도록 꿈의 그녀가 낮의 세계로 밀려온 것이다.


댓글 : 0 개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