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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창작의 기본은 비평이다2014.04.29 PM 08:23
그걸 비난이라 치부하는 순간부터 이미 창작자의 마인드 따윈 개나 줘버린 거나 다름 없죠.
전 소설지망생입니다. 매달마다 두 편의 단편 소설을 쓰고, 그 중 한 편을 공모전에 낼 수준으로 퇴고합니다.
아이디어 노트는 하루에 휴대폰이나 아이패드 메모장에 서너개씩 꼬박꼬박 써서 모아 놓고요.
소설을 한 편 완성하면 친한 사람 세 사람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메일로 보낼 때도 있고 커피숍에서 수다 떨자고 꼬셔서 프린트한 A4 용지를 들이밀죠.
내가 쓴 글을 읽는 당사자 앞에서 페이지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담배 피우고 다리 떨면서 초조하게 평가를 내려주길 기대합니다.
다 읽은 친구에게 던지는 첫 마디는
'일단 안 좋은 거부터 시작해.' 입니다.
쓴 글을 두 세번 뒤적거리다보면 저도 모르게 자아도취에 빠져서
'이 문단은 최고야. 내가 쓴 것 중 가장 잘 썼어.'라고 생각하게 되죠.
좋은 평가엔 솔직히 주변 반응은 필요 없습니다. 만든 사람이 충분히 알고 있죠.
하지만 어떤 창작자도 자신의 단점을 냉정하게 바라볼지 못합니다.
친구들도 글을 쓰던 사람들이라 비평에 대해선 거칩니다.
인격적으로 마음 상할 때도 있고요. 저 또한 학교 다닐 때 창작시간에 비평하면서 후배들 울리기도 했고요.
"이 부분은 쓰다가 졸았냐? 그냥 다 빼버려."
"너 이 캐릭터에 대해서 공감 안 하고 그냥 머릿속에서 상상해서 썼지? 니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진짜라고 생각하고 써야지."
"얌마. 소설이란 건 다 뻥인데, 그래도 뻥을 재밌게 쳐야지. 이래서 누가 믿냐? 너 같음 이게 재밌겠냐?"
내가 항상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말들입니다. 그나마 순화 시킨 거에요.
속으로 '아닌데. ㅅ발 그거 밤 새면서 쓴거란 말이야.' / '내가 그 캐릭터 만들려고 며칠을 고민했는줄 알아' / '이 새끼 다신 보지 말까?'
온갖 말들이 치밀다가도 결국 비평이 끝나면
"진짜 고맙다. 오늘 내가 치맥 쏨. 가서 마시자. 수고했어."
내가 돈까지 쓰면서 대접합니다. 왜냐면 세상에 누가 등단도 안 한 내 소설을 열심히 읽어주고 비평해줍니까.
당장 지금 글을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보여줘도 곧장 쓰레기통에 버려질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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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평한다고해도 한 사람에게 받는 게 아니다보니 의견이 갈릴 떄도 있습니다.
누군 이 문장이 좋다고 하는데 또 누구는 빼버리라고 하고.
그럴 땐 냉정하게 내가 필요한 걸 받아 들이는 것도 중요하죠.
글을 쓰면서 힘든 점은 한 번도 완벽하게 내가 만든 것에 만족하지 못한단 겁니다.
한 번은 진짜 평가 잘 받은 소설이 나와서 고작 원고지 100장짜리에 두 달이나 소비하며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공모전에 등기 보내는 순간까지도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죠.
아마 어느 누구도 자기가 만든 작품에 100% 만족하지 못합니다.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작품'을 만든게 아니라 '자위'를 한 거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도 불만스러운 게 어머니라고, 자기 작품이 흠잡을 곳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진짜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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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까 세 줄 요약
1. 자기 작품에 100% 만족한다면 그건 그만큼 고생하지 않고 자위질 한 것일 뿐
2. 진정 스스로 발전해 나가고 싶다면 돈 주고서라도 나쁜 평가를 받아라.
3. 보석은 비판에서 나오고 자기에 맞는 비판을 걸러서 작품에 보태는 것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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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편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마이피에서 만나면
굉장히 열심히 설득하고 이야기하는데 가끔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정중하게 댓글 달아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 허공에다 혼잣말 하는 게 더 생산적일 거 같기도 하고요.
이해 못할까봐 적절한 예시도 들고 어려운 단어를 쓰거나 긴 문장을 쓰면 의도가 변질될 수 있어서 몇번이나 퇴고하고 다는 댓글인데 말이죠.
상대방은 내 노력과 관심을 그저 악플이라고 치부해버리니 슬픕니다.
댓글 : 6 개
- 청올
- 2014/04/29 PM 08:36
남이 자신의 창작물을 봐준다는것 자체가 대단한거죠
거기에 반응까지해준다면 진짜고마운거
노잼이건아니건 어쨌든보고 반응을보여준거니까
거기에 반응까지해준다면 진짜고마운거
노잼이건아니건 어쨌든보고 반응을보여준거니까
- O북극베어O
- 2014/04/29 PM 08:39
저도 몇 번 영상 올린 거 보고 이래이래서 재미없다고 댓글 달아줬는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손가락을 멈추고 싶네요. 에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손가락을 멈추고 싶네요. 에휴.
- KRADLE
- 2014/04/29 PM 08:45
전 제가 쓴 글이 진짜 너무 너무 너무 재밌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안 봐줌ㅠ...... 윽 상처......
아무도 안 봐줌ㅠ...... 윽 상처......
- O북극베어O
- 2014/04/29 PM 08:48
저도 윽... ㅋㅋㅋㅋ
- 불꽃캅
- 2014/04/29 PM 08:51
요즘 보면 정당한 비평을 '취존'이라는 말로 사전봉쇄하려는 사람이 많은 거 같습니다.
- O북극베어O
- 2014/04/29 PM 08:53
그러면 그냥 취존 대접해주는데로 가서 놀면 되면서 꾸준히 오는 근성도 대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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