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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오르페우스2019.03.19 AM 10:18
그 날 밤 나는 잘린 머리를 들고 가는 여인를 보았네. 그 여인의 얼굴은 희고 창백하여, 마치 자신이 들고 가고 있는 머리와 같이 생기라곤 없어보였네. 가끔 흔들리는 동공만이 내게 그 여인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었지.
그러나 그대가 궁금해할 것은 그녀보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잘려진 머리일 것이 분명할거야. 그 아름다운 머리. 설명할 수 없이 아름다운 머리. 여인의 걸음마다 흔들리던 금색의 머리카락, 그 아래는 같은 색의 짙은 눈썹, 곧되 뭉뚝하지 않은 코와 핏기없는 입술이 있었네. 나는 생각했네. 저 머리가 잘려지기 전까지 모두가 그 미모를 칭송했으리라. 나는 감탄하며 말했네.
"그대의 아름다움은 죽음도 이기고 땅으로 올라왔구나."
그러자 갑자기 잘린 머리가 눈을 떴고, 나와 눈을 맞췄네. 머리를 들고 있던 여인은 생기를 찾고 머리를 내려다 보았지. 머리가 말을 시작했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흐르지 않았다. 나는 종종 현재에 박힌 채 찬란했던 과거로 되돌아갔다. 그 시간은 때로 현재 시간의 흐름보다 훨씬 더 길게 늘어졌으며, 어떤 날에는 마치 찰나인 것처럼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와의 만남이 어찌 달콤하지 않을 것인가. 그 달콤한 행복 후에 찾아오는 것은 결국 현실과의 지독한 괴리감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후, 가장 슬픈 사실은 나 스스로 이제 행복은 과거의 시간에 고정되어 있으며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볼 때만 고개를 내밀 뿐이고 앞으로 내 본래의 시간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 그 것을 믿고 인정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모든 사건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지독한 허무주의에 휩싸여 하루를 살아갈 힘을 모두 잃고 지쳐 쓰러지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아. 모든 것은 내가 행복을 차버렸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 시절 내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설혹 모든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다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입을 벌린 채 상처입은 영혼이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리는 지옥의 입구와도 같은 비참한 종말 뿐이며, 괴롭게도 그 구취는 분명 주위의 사람들마저도 모두 떠나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니.
그대여. 나처럼 되지 말게나."
머리는 한숨을 내쉬었네. 그리고 이제는 지친듯한 얼굴에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내뱉어내었네.
"그러나 보게. 나 같은 사람조차도 헌신적인 사랑을 만나면 곧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음이야."
그때 나는 잘린 머리의 아래 쪽에서 무언가 꿈틀되는 것을 보았네. 그 것은 여자의 팔에 구멍을 내어 그 생혈을 빨아먹고 있었네. 여인은 점차 창백해지고 머리는 점점 생기를 찾았네. 그 모습은 너무나도 혐오스러웠어. 나의 영혼은 놀라, 눈과 눈 사이의 구멍에서 빠져나왔네. 그리고 하늘 높은 곳으로 도망치다가 비로소 아래를 내려보았네.
핏기없는 나의 머리, 잘린채로. 나도 누군가 내 머리를 가져가길 기대하고 있는가. 그러나 좀 더 용기를 내어 내려가보니, 방금 전 이야기하던 잘려진 머리는 호수에 비친 내 것이었네. 정신을 잃었을 때, 이제는 나의 연인이 나를 향해 외치고 있었네.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
그 날 나는 그동안 내 머리를 들어주던 여인에게 이별을 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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