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전국시대의 대기(大器) - 1.나가노 나리마사(長野業正)2011.03.07 PM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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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전국시대에 대해 여러모로 재미를 느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다.

전국시대를 논하면 오다 노부나가나 다케다 신겐 등의 센코쿠다이묘(戰國大名)를 먼저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명성이나 세력의 거대함보다는 그 인간의 인물됨에 더 관심이 간다.

나가노 나리마사는 내가 본 전국시대의 무장중에서도 호탕함과 대인의 기질이 단연코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다.

본래 관동관령(關東管領,일본 간토지역의 지방장관 격)인 우에스기 노리마사(上杉憲政)의 가신으로 주군인 노리마사가 다케다 하루노부(武田晴信,이후 다케다 신겐)에게 대패하고, 기회를 엿보던 남쪽 오다와라성(小田原城)의 늑대 호죠 우지야스(北 条氏康)가 노리마사의 영지인 고즈케(上野,현재 군마현)을 침공, 관동관령인 노리마사마저 추방되어 실종될 정도의 수모를 겪어 나리마사마저 항복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영지를 몽땅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당연히 노리마사의 가신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호죠 가문에 항복을 하게 되지만 가장 북쪽에 있던 미노와성(箕輪城)의 성주인 나가노 나리마사는 흩어진 가신단을 수습하여 병력을 재편성하고 주군인 관동관령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관동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단순히 주군의 부재를 틈타 자신이 그 지위를 노리는, 전국시대의 습관과도 같은 하극상과는 달랐던 것이 나리마사는 단 한 번도 관동관령의 지위를 참칭한 적이 없으며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력을 이용해 영지를 무리하게 확장하거나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물론 가지고 있는 군세로는 침략 자체도 불가능했다-주군의 구(舊) 영지를 굳건히 지키는 그런 남자였다.

관동관령이 사라진 영지는 그야말로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인 공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주변국이 그것을 노리지 않을 리가 없었고 가장 큰 세력인 다케다(武田)가는 끊임없이 나가노 나리마사가 지키는 미노와성을 노렸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나리마사는 거대 세력인 다케다가의 침공을 뛰어난 지략과 유연한 전술로 모두 막아냈고, 이후 사라졌던 주군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북쪽의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이후 우에스기 겐신)에게 의탁하여 그에게 관동관령 자리와 자신의 성인 우에스기를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본래 주군의 땅을 지킨 자신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았음을 원망치 않고 우에스기 겐신과 협력해 그의 남하를 도왔다.

다케다 신겐이 했던 그 유명한 탄식 '저 영감(나리마사)이 살아있는 한 시나노(信濃)를 병탄할 수 없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굉장한 그릇이었다는 것을 나리마사의 행적으로만 봐도 알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다케다 신겐의 유명한 군사(軍師,참모) 중 하나인 사나다 유키타카( 真田幸隆)는 본래 나가노 나리마사에게 의탁하며 다케다가에 의해 빼앗긴 옛 영지의 수복을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리마사는 시나노를 수비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 영지의 수복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유키타가는 나리마사를 떠나 다케다 가문의 수하로 들어가 영지를 수복하기로-유키타카가 이러한 결정을 하도록 다케다가의 명참모인 애꾸눈 군사 야마모토 간스케(山本勘助,혹은 山本請幸)가 그에게 옛 영지를 획득하는대로 돌려주겠다고 설득했다는 설이 있지만 불명확하다- 결심했다. 그래서 유키타카는 나리마사 몰래 다케다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떠나기 전날 밤 유키타카의 저택으로 나리마사의 전령이 찾아왔다. 유키타카는 속으로 '아, 나리마사에게 발각되었구나! 이제 나와 식솔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국시대의 법도상 배신에 대해 잔혹한 처단은 당연한 것이므로 유키타카는 매우 당황했다. 그런데 전령이 전하는 나리마사의 서찰엔 엉뚱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병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그러나 나는 귀공의 병을 고치지 못할 것 같네. 그대의 병은 아마 (다케다)신겐공만이 고칠 수 있을 것이오. 식솔은 걱정하지 말고 길을 떠나시게.' 즉, 배신을 알고 있지만 가족을 해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해 준 것이다.

이에 대해 크게 감동받은 유키타카가 다케다가의 시나노 침공을 나리마사에게는 미리 알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후세의 창작일 가능성이 더 크다.

여하간 저 일화가 나리마사의 그릇에 대해 말해주는 단편적인 부분이 아닐까 한다.

지략과 무용이 뛰어난 맹장 스타일의 무장이었지만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는 것도 저러한 일화를 바탕으로 해석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후 역사에 의해 의리의 본질이 각색된 전국시대의 이야기긴 하지만 나가노 나리마사라는 무장의 인물됨은 단순한 각색으로 왜곡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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