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2011.05.13 PM 01:40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지난 4.27 보궐선거는 대부분이 알다시피 한나라당의 부분적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민주당의 손학규 후보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입후보하진 않았으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인 김해에 총력을 기울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이번 보궐선거의 패배로 사실상 차기-혹은 그 이후-대권에 도전할 힘을 잃었다.

저것에 근거한 판단을 통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보궐선거는 진보세력의 패배라고 생각한다. 유시민 대표가 진보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지 아닌지는 차제하고 (손학규를 대표로 한)민주당이 전세를 뒤집을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 근거해서 판단한 결과다. 섣부른 예상은 금물이지만 만약 민주당이 차기 정권이 된다면 진보세력은 그야말로 한나라당이 싫어 할 수 없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척하는 군소 정당들의 별볼일 없는 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민주당이 대표라고 뽑아놓은 자가 손학규이기 때문이다.

손학규는 자신의 신념 혹은 아이덴티티가 없는 인물이다. 운동권 출신으로 나름 그쪽 사람들에게 있어선 전설적이라고 불릴만한 행동을 조금 하긴 했으나 김근태씨처럼 군부정권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지킨 적이 없고(박정희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이틀 수감되었으나 10.26, 박정희 정권의 붕괴로 석방),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인 이후에는 말과 행동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인물이다. 뉴라이트 참여는 물론이고 고 노무현 대통령도 심심하면 욕하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경포대'나 '산송장' 발언은 애교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평소에 노 전 대통령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발언들을 밥먹듯이 한 양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근간이 되는 고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했느냐고 하면 그것 또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행동하는 흑심'이라고 칭하며 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리대통령쯤으로 취급했으면 했지 이전 고인의 사상이나 비전에 공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손학규가 민주당에 와 있는 이유는 오로지 한나라당에서 토사구팽 당했다는 원한과 고 김대중 대통령의 초빙으로 새로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대감 그 두 감정 뿐이었을 것이다.

저런 인물을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높다는 정치적 영향력과 고 김대중 대통령이 초빙했다는 당 차원에서의 정당성 하나만으로 스스럼없이 데리고 온 민주당은 스스로가 진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일 민주당은 자신들이 진보세력의 대표라도 되는 것 마냥 선전해대고 있다. '야당=진보' 라는 전 세계 유래가 없는 무리수를 만드려는 것 같다.

허나 한나라당의 세가 워낙 강력하고 차기대선 주자로 지목되는 박근혜의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관계로 민주당에 속해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이 낫지 않느냐. 일단 밀어주고 보자','민주당에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후보가 아직 남아있다'는 생각 등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를 들어 자신은 양비론자가 아님을 증명하고싶은지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차악'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손학규를 선택하다니, 손학규는 그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한나라당 그 자체인 사람이다. 게다가 그들이 욕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다수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꾸준히 한나라당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손학규는 필요에 따라서는 동료를 버리고 자신과 신념이 180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협력할 수 있는 전형적 철새 정치인이다. 즉, 손학규 자체가 '최악'인데 무슨 '차악'을 논한단 말인가?

게다가 말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악한 것을 애당초 선택하지 않는 것이 올바름이지 조금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살을 주고 뼈를 자른다는 대사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두 대 맞을 것 한 대 맞고 퉁치자 이런 생각으로 저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회에 갓 나온 처녀한테 '너 죽을래? 아니면 두들겨 맞고 강간당할래?'하고 묻는 것이나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이건 너무 개인적인 생각이니 접어두기로 하자.

따지고 보면 민주당을 차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함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니 양비론을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들이 양비론을 설파하는 것이랑 다를 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진보 세력이 현재 정말 보잘것 없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견제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도 당연히 한나라당이 가져갈 것이다. 5년, 개인에겐 긴 시간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한가? 이번 5년을 민주당이 잡았다고 하자. 그 다음은? 다시 이명박 비스무리한 인간에게 5년을 넘겨주고 비판만 하고 있을것인가. 민주공화국은 한나라당같은 파시즘 세력 하나 없앤다고 뚝딱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며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정신이 체득되면 그 때 실현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엄청난 속도로 경제규모를 키워왔지만 젊은 사람중에 누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는가. 물질적인 것은 효율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잘 세워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정신적인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 사고하며 얻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다시피 한나라당이 워낙 최악인지라 빨리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함은 이해가 가지만 어설프게 없애려들면 오히려 더 오랜 시간을 고생한다.

바퀴벌레를 잡으려면 서식지를 몽땅 들어내어서 없애야지 엄한데다 약만 자꾸 치면 약에 내성이 생겨서 오히려 더 강해진다.

현 여당이 하는 일을 보라. 꼭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ㅁ'이라도 아는것처럼 착각들을 해대지 않는가.
댓글 : 2 개
최악을 피하기위한 차악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선책이 없기에 선택한 차선책일 때가 있죠 ㅎㅎ
자신의 성향과 100% 일치하는 정당 혹은 후보가 있고
그 쪽이 확실한 지지기반을 다져놓았다면 모를까
양쪽 다 채워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민주당이
선택에 의한 책임을 대내외적으로 비추기엔 그나마 포장하기 좋을테니까요.
손학규에 대한 평은 단편적인 칼럼이나 시사주간지를 통해 접한 게 전부라서 수박 겉 핥기식 정보밖에 없었는데 이 글에 의한 손학규는 쌈싸먹을 놈이군요-_-; 오히려 가장 한나라당스러울지도 모르겠어요
  • 949N
  • 2011/05/15 AM 06:18
1.
사실 한나라당에 반감을 가진 이들에겐 손씨 외엔 선택지랄 것이 없다는게 문제가 아닐런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투표는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투표 행위에 대한 기여발생)
박근혜는 뽑기 싫고, (자신이 속한 가치의 반대행위)

자신의 계급에 맞거나 정치적 입작에 맞는 사람을 뽑다가 자신의 표가 죽은 표가 되는 건 피하고 싶고,(투표 행위 기여분 및 기타 부분의 매몰비용화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기여분을 자신의 가치에 맞는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였다가 손씨가 진다면,
[반 한나라당이라는 어떤 윤리성까지 갖는 움직임]에 반하였다는
죄의식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미 한명숙과 오세훈이 서울시장을 놓고 선거전을 벌여 졌을 때, 노회찬을 뽑았던 사람들에 대해 비난이 있었으니...)

뭐 대게 이런 층위에서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2. 손씨는, 이반님의 글로 정리된 걸 읽어보니, 이재오, 김문수의 스멜이 느껴집니다. 가치, 이념 추구의 결과가 아니라 권력지향의 결과 그는 지금의 위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 너무 심한 판단일까요? 권력지향이 꼭 나쁜 것이다 단언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결국 김대중 사후 정치인은 2류와 3류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면 좀 심할런지 모르나, 적어도 어떤 '가치'를 논하고 어떤 내용이 차있는 사람은 이젠 좀처럼 찾기 어렵군요.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에는 너무 힘과 영향력이 없다는게 문제겠지요.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