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읽기앤쓰기】] [에세이] 챗GPT 르네상스2023.07.05 AM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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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GPT(이하 챗지피티)는 21세기의 정신적 증기기관이다. 챗지피티는 단순히 편의성을 확장하는 신문물을 넘어선다. 아예 다른 차원의 신문명을 제시한다.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는 사용자의 질문에 응하고 문자 그대로 세상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인류는 결국 바벨탑의 설계도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챗지피티를 처음 본 이후로 그 경이로움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기계적인 연산 같은 문장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은 마치 마법 같았다. 챗지피티가 나타난 지금, 앞으로의 글쓰기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챗지피티의 퍼포먼스는 거침없다. 사고도 고민도 없어 보일 지경이다. 나라면 삼일밤낮을 갈아 넣어도 못쓸 글을 키워드 몇 개만 있으면 삼분 남짓한 시간만에 뱉어내버린다. 내가 불러낸,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글이다. 언어의 비에 맞아 쫄딱 젖은 내 모습만 남는다.
  글을 쓰는 목적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짜낼 수 있는 최선의 글을 내놓는 것이 작가의 기쁨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챗지피티가 등장했다. 챗지피티 시대에서 창작물은 더이상 순수 창작으로 보기 어렵다. 작가와 챗지피티 중 누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작가의 자존심으로 종일 펜만 잡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챗지피티를 끌어 안고 사는 다른 작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챗지피티 덕분에 훨씬 편해질 것이라 여긴다면 착각이다. 고민의 길이가 짧아진 것이 아니라 밀도가 더 커진 것이다. 그동안의 창작이 나만 아는 길에 불을 밝히는 순례였다면, 이제는 나도 아직 모르는 나의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한다. 생각의 지도를 그리기까지 몇 번이고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대화가 거듭될수록 첨삭이 다듬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챗지피티가 식탁을 차려주면 책상다리까지 소화할 각오가 필요하다. 그렇게 나에게서 나온 것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때까지 끊임 없이 퇴고해야 한다. 아무리 기술력이 치솟아도 작가의 본질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챗지피티는 글을 쓰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글을 써주는 인공지능이다. 이 미세한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챗지피티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창작의 고통에 더하여 매몰의 공포까지 얹는 역경이 될지도 모른다. 한순간 증거가 아닌 매순간 증명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극도로 발달한 기술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연의 가치를 일으킨다.
  이렇게 챗지피티는 역설적으로 인간중심으로 돌아갈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것은 만인을 미켈란젤로로 만들 가능성이자 원석이다. 수세기를 뛰어 넘어 르네상스의 거장은 말한다. "조각 작품은 내가 작업을 하기 전에 이미 그 대리석 안에 만들어져 있다. 나는 다만 그 주변의 돌을 제거할 뿐이다"

  작가 이외수는 <하악하악>에서 "당신이 직접 지폐를 찍어낸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본질은 많은 돈이라는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돈의 쓸모 없음을 가정한 것이다. 작가는 돈을 만들겠다거나 더 많은 돈을 만들기 위해 프린터를 사겠다거나 하는 대답이 있었다고 한탄했다. "이게 왜 그러냐면 자기 인생을 살지 않아서 그런 거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통념과 규범을 뛰어 넘을 줄 알아야 한다."
  대리석 안에 작품은 무슨 말을 들어야 깨어날까. 그건 하나의 마법 주문이 아니다. 서로간에 오고 가며 올라 가는 나선 같은 대화일 것이다. 챗지피티는 산파 같은 작가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시(re) 태어날(naissance) 때를 더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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