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 이발소가 좋다2013.06.08 AM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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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랜 토리노에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멋지고 터프한 인상으로 '다 큰 남자놈이라면 이탈리아놈이 이발하는 이발소에 가야 해'
이런 얘길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마피아들처럼 시가를 한 대 물고 전용이발사가 해주는 면도를 받고 싶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냥 난 이발소에 가서 머리하는게 제일 마음 편하다.
앞에서 찾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원장이 직접 하네마네 하는 그런 소릴 듣고 싶지도 않고
복잡하게 스타일을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해 놓고 두피가 안 좋으니 뭘 사라고 하는 소리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싫다.

자주 가는 이발소는 아버지가 젊었던 시절부터 머리를 깎아주신 분이 계신다.
비슷한 두상에 비슷한 머리인것도 있겠지만
그냥 다른 말이 필요 없다.

투박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고
앉으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발도구를 손에 쥔다.

스타일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어떻게 깎아주면 좋아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이따금 등산에 대한 이야기,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살짝 기분좋게 졸린 눈을 하고 있으면
가위소리가 사각사각 들린다.

면도크림을 솔로 섞는 소리도 좋다.
면도칼을 가죽에 대고 날카롭게 간 다음
거침없지만 섬세하게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다.

미용실에선 생각지도 못하는 귀에 있는 잔털까지
세심하게 면도해주는 연륜이 좋다.

쿠폰도 없고 받을 명함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깔끔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사우나에서 땀을 흘린다.


미용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발소에서는 미용실로 충족 안 되는 어떤 미학이 있는 것 같다.

수다를 떨 때도 좋고 고민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 옆에 있을 땐 굳이 말이 필요없듯
이발소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늘
중요한 일이 있거나 소중한 만남이 있을 땐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나갔다.

편한 마음을 그대로 들고 나가니까.
댓글 : 4 개
  • BoA
  • 2013/06/08 AM 12:32
저도 20년째 다니는 이발소가 있죠 ㅎㅎ
BoA // 그런 좋은 곳들이 점점 사라져서 슬퍼요. 모든 이발사가 다 멋진 건 아니지만 진짜배기 상남자들이 있던 곳들인데...젊은 이발사를 볼 수가 없음.
퇴폐이바..ㄹ....ㅋ
thㅔ종대왕 // 그러믄 안돼. 젊은날부터 퇴폐를 좋아하고 그래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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