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단편] 취직2013.04.18 PM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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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감과 희망에 찬 얼굴로 체력평가실에 들어선 면접 합격자들의 얼굴은
눈앞에 펼쳐진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급격하게 굳어졌다.
어둠침침한 강당에, 기다란 관을 몸 곳곳에 연결한 나체의 거대한 노인이
커다란 제단 비슷한 것에 앉아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합격자들을 인솔하던 나이 든 임원은
두 줄로 서서 따라오던 십여 명의 젊은이들을 재단의 앞에 새우더니
기괴한 형상을 한 노인이 마치 자신의 상전인양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최종 면접 합격자들입니다."

"......"

입에도 관이 연결되어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은 뭔가 웅웅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노인의 눈치를 보던 임원은 굽힌 허리를 붙잡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젊은이들을 돌아보았다.

"에...여러분들은,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우수한 인재들이에요."

말을 끝마친 임원은 크흠, 크흠, 하고 임원이 헛기침을했다.
무언가 말하기 곤란한 일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에...여러분. 그, 필기 면접 마지막 문제 기억납니까?"

필기시험의 마지막 문제라...
합격자들은 일주일 전에 본 필기시험의 마지막 문제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모든 이가 그 질문을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이 회사도 어디 유명한 인터넷 회사처럼,
지원자들의 재치를 보려고 낸 건가 싶었던 그 문제는 바로...

[회사를 위해 당신의 수명에서 한 달을 바치실 수 있겠습니까?? - 주관식]

이었다...




"여러분은 그 문제에 아주 열정적으로 답을 써주신 분들입니다."

임원은 말을 이어가며 뒷짐을 지더니,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 바칠 수명 한 달이, 여기 있으신 회장님에게 돌아갈 겁니다."

웅성웅성...
그 말을 듣자마자, 수십 명 정도 되는 합격자들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냥 농담으로 듣기에는 눈앞에 펼쳐진 이 비정상적인 상황은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키가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노인에게 이어진 수많은 관들...
그의 뒤에 곳곳에 이상한 빛과 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상한 기계들...
무언가 오컬트 스럽지만 알 수는 없는 이상한 문양들이 새겨진 강당 등...

마치 마녀의 집에 끌려온 어린아이처럼, 합격자들은 전전긍긍 하고있었다.


"아직 창창한 젊은 여러분에게 수명 한 달은 그리 아까운 게 아니죠."

느릿느릿 걷던 임원은 방향을 바꾸며 말을 이어나갔다.

"막노동이나 하고 중소기업가서 저임금 받는, 그런 저급한 인생 살 바엔,
인생의 한달 정도야 소비하고 대기업 직원이 되어 앞날을 보장받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합격자들은 이내 침묵했다.
수십명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때만큼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뭐, 까짓 거 한 달!!
하고 가장 먼저 박차고 달려나가고도 싶지만,
죽는 날이 한달 앞당겨진다고 생각하니 선뜻 입이 떨어지는 이는 없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사는 이 시대에 한 달의 수명을 내놓으라니...
농담이면 좋겠지만 지금 이 분위기로 봐서 그 말은 절대 장난은 아닌 듯 보였다.
하긴, 년 십여명정도 겨우 들어간다는 이 회사에 합격자가 너무 많다 싶더라니...
마지막 이런 과정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흐음..."

임원은 안경 너머로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모양새에 뭔가 화가 난 듯 보였다.
잠시 침묵하던 합격자들을 바라보고 있던 임원은,
합격자들 사이에 누군가에게 나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러자, 옛되어보이는 청년 하나가 우물쭈물 임원의 앞으로 다가섰다.

"...여러분은 잠시 대기하고 있으세요."

말을 마친 임원은 청년의 팔을 붙잡고 조금은 빠른 걸음걸이로
그들이 이곳에 들어왔던 문으로 향했다.
문밖으로 나서서 문이 닫힌 걸 확인한 임원은 청년에게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조카야. 너 네가 뭐라했니."

"..."

"내가 인맥으로 여기까지 끌어올려 줬으면 니가 딱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

둘의 관계는 친척 비스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해달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설마...

"...그, 그치만 수명을 바친다는 게....."

겁먹은 듯한 청년이 우물쭈물 거리자,
임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허리에 손을 얹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야, 임마. 내가 여기 임원이 그냥 된 줄 아냐?"

"...."

"난 입사할 때 딱, 내가 먼저 나서서 내 인생 1년을 바쳤다"

"...네에!?"

청년의 눈이 휘 동그래졌다.

"1년 바쳐서 그렇게 신임을 얻어 이 자리에 올랐다고"

"......"

청년은 다시 임원의 눈을 피해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솔깃한 이야기를 해줄 때이다.

"그리고 임마, 임원이 되면 잃은걸 되찾을 수 있어."

"...되찾다뇨?"

"회장이 먹고 남긴 젊은 사람들 수명은 임원들에게도 조금씩 돌아간다고"

"........"

"난, 1년 바치고 그렇게 3년을 얻었어."

"...!!!"

다시 젊은이의 눈이 휘동그래졌다. 이건 정말 좋은 거례였다.

"...정말 괜찮은거죠?"

"그래, 우리 회사 임원들은 다 그렇게 해서 이 위치에 오른 거야"

"...."

젊은이는 잠시 시선을 떨구더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알았습니다. 제가 먼저 나서죠."

눈에는 놀람을, 입에는 살짝 미소를 담은 청년이
삼촌이라는 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제야 조카가 마음에 든 것인지, 미소를 지은 임원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가자."






강당에 다시 두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도 아무런 지원자는 없던 모양이었다.
지금 마음이 선 청년에게 있어서, 그들은 루져나 다름없다.
그런 루져들 앞에 청년은 서서, 자랑스럽게 외쳤다.

"...제가!!"

루져들의 시선이 청년에게로 향했다.

"1년을 바치겠습니다!!"

그의 외침이 울려 퍼진 직후 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나,
곧 합격자들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저도!!"

"저도 하겠습니다!"

앞서 말한 청년에게 뒤처졌다는 위기감이 들어서일까,
갑자기 합격자들 사이에서 지원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임원은, 자신의 조카가 갑자기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걱정 마라 조카야. 아픈건 없고 좀 피곤할 뿐이다"

노인과 관으로 이어진 기계에 누운 청년에게, 임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네, 걱정 없어요."

피슛-

김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기계의 유리막이 내려와 닫혔다.
청년은 가장 앞서서 1년을 바치기로 했기에 지원자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수명 이전 기계"에 오른 것이었다.
청년의 가슴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1년 잃어봤자, 3년 되찾으면 되지.
난 가장 먼저 바친 용기있는 지원자이다. 이제 임원이 되어 떵떵거리고 사는 거야...'

웅웅 거리는 기계의 구동음이 들려왔다.
졸려왔다.
너무나도 졸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청년은 너무나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삐-
수명 이전 기계에 달려있던 붉은색의 LED 카운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를 조작하던 직원이 다가가보니, 카운터에는 273이라고 써져있었다.

"이 친구 1년 했을건데 왜 여기서 멈춘거지...고장인가?"

직원은 기계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기계안의 청년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

청년의 얼굴은 새파랗게 변해있었다.
...죽은 것이었다.
허겁지겁 메뉴얼을 찾아보니, 사용상 주의 항목이 눈에 들어온다.

[남은 수명을 잘 계산해서 사용하시오.]

...메뉴얼을 덮은 직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20XX년 XX기업 공채 결과

합격자 없음

최종 합격까지 했던 이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최종 합격 자격을 포기함.

이 과정에서 지병을 앓던 청년(27세) 사망.
지병의 악화로 인해 면접 도중 사망한 것임으로, XX기업에는 일절의 책임이 없음.
댓글 : 2 개
오 와.. 굳
와... 재밌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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