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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평양냉면과 겨울2014.12.13 AM 12:34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서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자타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故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평양냉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김없이 내 머리를 스치는 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산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맑은 날 올라가는 산도 좋고
비내리는 날 올라가는 산도 좋고
눈이 올 때 가는 산도 좋다.
특히 하산할 때 산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먹고 가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
어릴 때 속리산이던가
내려 오며 먹었던 산나물 맛이 아직 그리울 정도로
그런 맛과 느낌을 좋아한다.
산을 내려오며 먹는 고깃국물은
그 중에서도 특히 각별한 맛이다.
진하지 않아도 좋다.
약간 슴슴한 정도에 소주나 막걸리 한 병 정도면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고 평화를 느낀다.
'산에 오길 잘 했구나'
백석의 국수를 읽고 있으면
그런 기분을 느꼈을 때를 추억하게 한다.
평양냉면을 생각하면
이 시를 생각하고
행복했을 때의 정서를 떠올린다.
서울에서 파는 평양냉면은 사실
서울에서 파는 돼지국밥만큼이나
현지의 맛과 괴리되어 있는 슬픔은 있지만
슴슴하면서 육수와 어우러지는 동치미의 맛은
몇 번 먹다보면 계속 생각나는 맛이긴 하다.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방짜에 좀 국수를 담아줬으면 한다.
나는 국수를 넣는 그릇이나 접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정성껏 만든 육수와 면이 방짜에 담겨
그 맛을 더욱 살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간만에
평양냉면이 몹시 먹고 싶었다.
눈 내리는 날
따뜻한 면수나 육수를 잔에 받아 손을 녹이면서
시린 면을 이로 끊어 먹는
그 운치.
나도
평양냉면처럼
슴슴하고 소박하지만
기억에 남는 인간이 되고 싶다.
댓글 : 5 개
- keep_Going
- 2014/12/13 AM 12:47
오장동에 한번 가야하나
- I.Kant
- 2014/12/13 AM 01:01
북쪽 말이라 잘 해석이 안되네요.;;
- 기갑맨586
- 2014/12/13 AM 01:10
추운 날씨에 우동 반죽하시느라 손 많이 시려우시겠습니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dmc까지 가는게 자꾸 늦춰지니 안타깝네요 ㅠㅠ
저번에도 가산까진 갔는데...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dmc까지 가는게 자꾸 늦춰지니 안타깝네요 ㅠㅠ
저번에도 가산까진 갔는데...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Lovewords
- 2014/12/13 AM 01:14
평양 냉면 생각난다 ㅇㄹㅇ ㅍㅇㅁㅇ ㅈㅇㅁㅇ ㅎㅎㅎ
- ☆부활★파늑
- 2014/12/13 AM 08:58
냉면 맛잇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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