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불면증의 상속2011.03.21 PM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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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세상이-혼동을 피하기 위해 우리나라라고 국한해두자-부모를 잘 만난 사람 위주로 먹고 살기 쉬워진다. 예나 지금이나 안 그런 적이 있었겠냐만은 요즘 들어서 부의 세습이 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점점 교묘해지고 정교하게 제도화된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소액의 재산부터 거액의 재산까지 자식 혹은 배우자에게 양도하는 것에는 세금이 있게 마련인데 양도세를 교묘하게 활용해서 소액의 재산을 상속하는 방법부터 재단 혹은 해외환치기를 활용해 거액의 재산을 세금 없이 빼돌리는 방법이 횡행한다.

이런 식의 방법들은 인터넷만 조금 활용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무역업자는 해외의 지인을 통해 현금을 모두 달러화하는 것으로 증여에 부과되는 세금을 회피한다. 나는 그 방법을 본인에게 자세히 들었으나 그저 법적으로 불법이 아닌가-사실 되물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외환관리법 위반이다-하고 그에게 되묻는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같은 출발선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재산을 남들보다 더 쉽고 확실한 방법으로 획득할 기회가 많은 몇몇 사람들은 재산이 감소할 일조차 없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정당하게 얻은 수익에 대해선 타인이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잃을 일 없이 재산을 축적한 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현상에 있다.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면 결국 모두 잘 사는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에 의해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 사람은 아무리 늘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즉,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하는 데 그다지 일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불법적으로 탈세를 저지르니 애당초 기대했던 국가수익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개인의 비자금이 되어 주머니속으로 들어가므로 실제로는 탈세를 하는 당사자에게만 존재하고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돈이 되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거에는 존재했다던(실제로는 존재했는지도 의문인) '개천에서 용 나는' 아주 드문 현상으로 어느 정도 권력의 순환구도가 유지되던 사회가 저런 방식들에 의해 점점 경직되고 변화가 없어지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뼈빠지게 노력해도 별로 재미를 못 보는 세상으로 점점 탈바꿈하고 있다.

루리웹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일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여유시간에 루리웹이나 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인생 고민도 많고 자신의 일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도 잘 아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회인들인 것이다. 이들의 부모님은 애당초 저런 불법적인 일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겨우겨우 사회에 진출했지만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봉급 또한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만 쓸 정도지 여유가 없다.

직장인들이 과연 쉽게 돈을 벌게 된 부잣집 아들보다 공부를 덜 해서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개인의 운 탓이라고 자조하기엔 자본주의의 부패는 너무나 가혹하다.



잠이 오질 않으니 저딴 헛생각이 자꾸 든다.

서랍 정리를 하다 보니 '제 4회 서울신문 학생미술대회 최우수상 1989.12.10'이라는 플레이트가 떨어져 있다. 트로피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난 상장같은걸 보관하는 성격이 아니라 이것저것 버리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상에 쓰인것처럼 최우수 어린이였다고 확신했었을까?

과거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이 갑작스런 불면증을 상속해 주고 와야지.
댓글 : 2 개
  • 949N
  • 2011/03/23 AM 01:21
언제 안 그런 적 있겠습니까. 하지만...
편법과 불법의 경계에 올라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되고, 재산-권력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에도 분명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라는 게 있겠지요. 지금은 그 정도에서 좀 심히 벗어난 상태가 아닌가 그리 느낍니다...만

허나 문제는 사람들이 현실을 못 받아들인다고 해서 시위를 일으키며 들고 일어서는게 아니라, 이도 저도 다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를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것일 듯하군요.

흔히 자조적으로 말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 딱 그겁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희망고문 조차 이젠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행으로 봐야할런지, 아니면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꿈조차 꾸지 못하는 막장을 슬퍼해야할런지.

한 2년 전 쯤인가 우석훈 박사가 이리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국은 이제 기로에 놓여있다 봅니다.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고 지금 방향대로 남미처럼 변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낼 것인가..."

허나 2년인가 3년인가 지난 지금을 바라보니, 어떤 선택의 때는 이미 지난 듯하군요.
희망은 있습니다. 좋은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죠.
정치와 경제는 계절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있으면 봄도 오게 마련이지요.

다만 겨울이 길어진다는 것이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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