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정치 경제 역사] 19세기초 인도의 아편공장2023.04.19 PM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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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아편전쟁은 중국과 영국의 차무역 때문에 벌어진 전쟁인데


19세기초 중국 광동성에서 나는 차는 품질과 향에서 세계최고였음


당시 영국및 유럽에선 중국풍 도자기 그림 비단등이 유행했고 곧 차 마시기도 고급유흥이 되기 시작했는데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영국의 왕비가 처음 차를 영국에 소개한 후 곧 상류층 여성들에게 유행하기 시작한 차 마시기는 얼마안가 모든 사람들이 펜시하다며 따라했고 곧 영국에서 보편화되고 이게 산업계에까지 퍼지게 됨


당시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의 자본가들은 더 오래 일을 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에일 같은 맥주를 마시고 일하게 했는데


우리가 농번기에 새참 먹을때 막걸리 먹는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에일같은 술을 마시면 각성효과는 있지만 사람이 축 늘어져서 일을 하긴해도 제대로 못하는 부작용이 있었음


그래서 나중에는 싸구려차에다 우유와 설탕을 때려부어서 마시는 영국식 차를 노동자들에게 마시게 했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지.


즉 노동자들까지 에일대신 차를 마시면서 영국에선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차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하고 차를 엄청나게 수입하게 된거.


당시 영국이 얼마나 많이 차를 수입했나면 영국전체 1년 총 수입액중 단일품목인 차가 10%를 차지하는 수준이었음. ㅎㄷㄷ


물론 차는 중국에서만 나는건 아니지만...  문제는 19세기초 폭발하는 수요에 비해 차 수입은 언제나 부족했고 또 최고급 품질의 차는 중국의 광동성에서만 나오는데 그 가격이 엄청 비싸다는거였음


그래서 영국이 차를 수입하면서 그 거래대금으로 지급하는 은이 엄청나게 중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됨.


즉 무역 불균형이 극심해진거임.


영국입장에선 지들이 필요해서 산거지만 은이 다 빨리니까 엄청 큰 문제거리가 된거지.


그래서 이 무역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게 당시 약초처럼 광범위하게 사용하던 아편.


이후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이용해서 인도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아편을 밀무역으로 중국 광동성에 엄청 팔아제끼는데


이게 또 얼마나 규모가 컸나면 영국이 차를 사면서 10년동안 중국에 빨린 은을 단 1년만에 회수할 정도였고 당시 중국 4억 인구중에 약 2000만명이 심각한 아편 중독에 빠져버림.


나중에가면 아편거래대금으로 지급하는 은이 모자라서 각종 어음 문화재 차 등등 영국이 죄다 가져가는 수준?


여기에 빡친 중국이 임칙서를 보내 아편을 몰수해 폐기하고 영국상선을 공격하자 영국의 하원 의회가 전쟁결의를 투표로 결정하고 시작한게 아편전쟁이고.


아무튼 영국의 아편 밀무역에는 저위의 사진처럼 거대한 인도의 아편공장들이 큰 역할을 했고 이 아편을 중국에 가져다 파는데는 또 인도의 파르시들이 영국에 엄청 협력함.


이 인도 파르시들은 이때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 이 파르시 후손들이 세운 인도 거대 재벌중에 하나가 바로 현재의 타타가문임. 


마치 삼성이 사카린 밀수로 조성한 비자금을 정권에 바쳐서 큰것처럼 타타도 아편 밀무역을 시작으로 영국에 협력하면서 거대 재벌로 성장한거지.


 

 

댓글 : 3 개
  • Pax
  • 2023/04/19 PM 11:29
은이 아까웠으면 차를 안 마셨으면 될 것을...
사치품은 먹어야겠고 무역불균형은 싫어서 반대로 마약 팔아먹던 섬나라 인성...

그나마 영국 의회에 마약팔려고 한 나라가 전쟁을 하는게 맞냐는 의견을 말하던 양심인들이 있었지만 그놈의 이익에 미쳤던 다수는 쌍콤하게 씹어버리고...
아는 내용인데도 재미나게 읽히네요 ㅎㅎㅎ
타타그룹이 여기서 튀어나오네여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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