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 좋아한다고 말해2017.05.11 PM 11:21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늦은 봄 끝자락. A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도착할 때가 됐는데…… 그러자 그곳에 B가 있었다. BA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웃는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A가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번에 꼭 말하는 거야.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할 말이 뭐야?”

B가 어느새 A의 앞에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 탓일까? A의 눈에 평소보다 그녀가 밝게 보였다. A가 자신의 옷자락 끝을 부여잡았다.

아니, , 하고 싶은 말이 말이야……

사실 여기서부터는 간단히 일이었다. 장황하게 말할 것도 없었고 무언가 설명할 것도 없었다. 그저 한마디면 됐다. 좋아해. 이 한 단어를 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A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A는 오늘은 분명 말하자고 다짐했다. 집을 나올 때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고 수 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도 언제나처럼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니야?”

아니. 그게 맞기는 한데.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건 맞는데……

A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입술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통증에 눈을 찡그렸다. 아아. 이번에도 안 되는 모양이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벌써 몇 번이나 고백하려고 했으나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민망하다. 왜냐면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가 우물쭈물 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B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무어가 그리 신나는지 A를 향해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슬며시 A에게 다가왔다.

할 말 산책이나 할래? 여기 산책로 예쁘던데.”

산책로?”

. 여기 산책로 벚꽃이 피어서 예쁘거든. 지금쯤이면 벚꽃이 떨어졌나? 혹시 올해 벚꽃 구경 갔었어? 난 올해 못 갔는데.”

A가 고개를 저었다. A도 올해 벚꽃 구경을 가지 않았다. 애초에 갈 이유가 없었다. A로서 벚꽃에 어떤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A가 보고 싶었던 것은 벚꽃을 구경하는 B의 모습이었다. 그런 B가 없으니 당연히 A도 벚꽃을 보러 가지 않았다.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가보자. 혹시 운이 좋다면 벚꽃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BA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앞장섰다. AB에게 끌려가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이런 B의 모습에 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A 자신과는 다른 당돌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A가 천천히 B의 뒤를 따라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햇살이 넘치던 낮과는 달리 밤은 고요하고 시원했다. 살짝 추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AB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은 강물 소리를 들으며 걸어갔다. 주로 B가 앞장서서 가면 A가 그 뒤를 따라 갔다. 이따금씩 찬바람이 불어오기도 했지만 A는 그마저도 좋게 느껴졌다.

난 말이야. 이 시간에 산책하는 걸 좋아해. 뭐랄까 침착하게 된다고 할까? 아니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할까? 아무튼 밤에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B가 깡충깡충 걸어가며 얘기했다. 무어가 그리 기쁜지 뛰어 가는 모습이 마치 토끼 같았다. A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후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는 어때? 너도 밤에 산책하는 거 좋아해?”

? 글쎄…… 잘 모르겠다.”

A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B와 다르게 A는 그다지 밖에 돌아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집 밖보다는 집 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굳이 나갈 일이 있다면야 나가는 편이었고 그마저도 한 번에 모든 일을 해결하는 편이었다. A에게 있어서 바깥은 귀찮음의 연속이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한다면.

A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두운 밤, 산책로에 사람이 얼마 없었다. 원래라면 A 또한 그랬을 것이다. 이 시간에 밖에 있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A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대 자주 집을 나오곤 했다. 그건 B가 있기 때문이었다.

A가 유일하게 스스로 집을 나가는 경우는 모두 B와 관련된 것이었다. B가 난데없이 술을 마시자고 하며 흔쾌히 나가고, 늦은 밤 연락이 와도 불평하나 놓지 않았다. 처음에 A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매번 반복되면서 이제는 당연하게 되었다.

? 산책하면 기분 좋지 않아? 한번 맡아봐. 이 상쾌한 밤공기를.”

B가 쓰읍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개구쟁이처럼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에 A가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이랬다. B와 함께라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B를 좋아했다.

역시 좋아하는 구나.’

새삼스럽게 A가 느꼈다. 단순한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외모 때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B에 대해 생각을 하고, B와 한순간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지나가며 예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B에게는 외모보다 근본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능력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재미있고 기쁘게 하며 끌어당기는 매력이야 말로 B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B가 불쑥 A에게 다가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A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쿵쿵거리며 날뛰는 심장 탓에 숨이 흐려졌다. AB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서도 B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고백을 해서 잘 안되면 다시는 이렇게 만날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A의 가슴의 통증이 느껴졌다.

A가 슬며시 눈을 감았다. 만일 고백을 했다가 잘 안되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없는 일로 한다하더라도 예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더 최악이 될지도 모른다. 두 번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A가 씁쓸하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 어쩌면 여기서 고백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냥 언제나 그렇듯이 넘기면 오늘과 같은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비록 얻는 것이 없다고 한들 잃는 것도 없다. A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역시……

그 순간 B가 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A의 손을 잡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기에 A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눈앞에 B가 보였다. 귀 끝이 살짝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난 말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산책하는 걸 좋아해. 근데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어. 그게 뭔지 알아?”

드물게 B가 작게 물었다. 수줍은 아이 마냥 몸을 꼬는 모습에 A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을 간질이는 감가에 헛기침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깊고 맑은 눈동자를 통해 서로의 모습이 보였다. A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게 뭔데?”

B가 싱긋 웃었다. B가 고개를 슬며시 내밀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졌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가 되고 나서야 B는 멈췄다. B가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A의 양 볼을 손으로 감싸고 A를 바라보았다. A가 숨을 들이마시자 B의 숨결이 스며 들어왔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산책하는 거.”

B가 재빠르게 고개를 뺐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짓궂게 웃었다. A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잘 못 들었나? 그런 A를 향해 B가 다시 한 번 다가왔다.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얼른 말해.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가버린다.”

A가 피식 웃으며 B에게 다가갔다. 그런가?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하긴 기다려주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 이렇게 보니 자신만 바보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한 마음으로 B에게 다가갔다.

좋아해! 나랑 사귀어 줄래?”

싫다면?”

?”

A가 놀라서 소리쳤다. 어두운 밤길 A의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B가 그 소리를 듣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뒤 이어 혀를 내밀었다.

고백하는데 오래 걸렸으니 대답도 오래 걸릴 거야.”

, 하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줘야지.”

장난이야. 장난. 너무 긴장한 거 같아서 긴장 풀어주려고 했던 거야.”

B가 싱긋 웃었다. 지금까지 B의 미소는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그 어떤 미소도 지금 이 순간보다 빛나지 않았다.

B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A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다시 잡은 손은 온기가 가득하였다. 두 사람은 산책로를 걸어갔다. 두 손을 꼬옥 붙잡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댓글 : 1 개
달다...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