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절한 담소] 옛날에 썼던 일기와 현재 상황 비교.2023.07.24 AM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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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당시 일기

아버지.

 

난 지금 아버지가 집에 없는 인생을 반을 살고 있고,
아예 연락 안한지는 2~3년쯤 됐다.

 

몇몇 친구들만 알고있는 사실인데
난 사실 아버지가 없다. 살아는 계신데 의절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관에서 봤을 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분명.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저리 살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삼고 지내왔다.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을 곱씹어 보자면 분명 좋은 기억, 고마운 기억도 있었지만 상처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심각한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 난 그때가 왜 가장 서러웠을까.

 

 내가 9살 때,
전 날 어머니와 싸워 심술이 났다는 이유로 같이 목욕탕에 가자는 날 귀찮다고 세게 밀치고 소파에 드러눕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딴에는 그냥 툭 밀친 거였겠지만 9살 소년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혼자 가게 된 목욕탕에서 어설프게 때를 밀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공짜로 때를 밀어주시던 세신사 아저씨가 기억난다.

 

그 후로도 같은 이유로 자주 혼자 목욕탕에 갔는데, 좁은 동네바닥에서 아버지와 함께 온 친구를 마주치는 건 꽤 흔한 일인지라. 그때마다 나는 뭐가 그리 서러웠던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혼자 씻다가 눈물이 나려 해서 냉탕으로 뛰어들어가서 잠수를 하곤 했다.

 

그런 나를 불러 등을 밀어주시던 친구 아버지도 생각난다. 친구 아버지의 성함도,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그 전체적인 장면은 참 생생하다. 이상하게도.

 

지금와서 생각하면 별 일 아닌듯한 위 일화를 포함해 아버지와 함께한 인생에서 터졌던 여러가지 문제들에 의해서...그 사건들이 전적으로 아버지 탓이었던지라 

 

나는 아버지를 참 싫어하게 됐다.

 

아버지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한텐 그냥 우리집 속사정을 알고있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 과거를 하소연하듯 늘어놓을 때 꺼내는 얘깃거리, 씹을거리, 술안주 따위가 됐다.

 

어른이 되면서 내 외모, 말투, 행동에서 순간순간 묻어 나오는 아버지와 닮은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나서 벽도 자주 쳤는데 지금은 철이 들어서 더이상 스스로 상처 내는 짓은 안한다.

 

그런데 요즘 아버지가 보고싶다. 아버지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저주하던 어머니의 분노가 사그라들어 그 어떤 소모적인 감정도 안 느껴진다고 당신이 말씀하셨을 때 즈음..나는 미움 뿐이던 마음 안에 가끔. 아주 가끔 그리움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여러 안좋은 일들을 겪으면서 혼자 감정을 추스리기 힘든 요즘..다 큰 아들이 이러는 거 징그러운 거 잘 알지만 어릴 때 참 서운하게 안 내주시던 그 넓은 품 좀 잠시 빌려서 기대면 안 되냐고. 나도 의지할 남자 어른이 필요했다고 소리치는 꿈을 꾸곤 한다.

 

아버지는 올해로 50대 중반이다. 아직도 아버지보다 키는 작지만 이제 덩치는 내가 더 좋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번 돈으로 산 멋진 정장과 구두를 빼입고 얼마전에 대학 졸업식도 마쳤다.

 

내심 이맘때 쯤에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되어서 멋지게 빼입은 아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어주는 장면을 그려보았지만...아쉽게도 졸업식 전날 꿈에서 가상으로나마 체험해 본 걸로 만족해야만 했던 점. 아쉽다.




2023년 현재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아버지가 사과하셨고,
내 사과도 받아주셨다.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걸 사과하셨고,
좋은 아들로서 아버지 속을 알아주지 못했던
내 사과를 받아주셨다.

"아들 별 일 없냐고" 카톡도 오곤 한다.
곧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고향 시골에 방문해
술 한잔 하고자 한다.





2017년 당시 일기


우리 집은 구석 동네의 30년 된 복도식 아파트다. 그나마도 친척 중에 우리 가족이랑 유난히 각별했던 이모가 세를 내려고 마련했던 집을 남편 없이 누나와 나를 어떻게든 키워 보겠다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어머니를 돕고자 넘겨주신 거다. 그렇다. 우리 힘으로 얻은 집이 아니다.우리 가족은
한 번도 우리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여자친구와 연애초기에는우리 둘 사이에 차이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지지배가 우리 동네로 찾아 왔다고 불쑥 연락을 했다.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우리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할 게 정말 없었다. 나는 더운 여름 이 굽이진 동네까지 용케도 찾아온 여자친구가 너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당장 수중에 돈이 없었기에

방에 뒹굴던 동전들을 긁어모아 설레임을 두 개 사서 하나를 입에 딱 물렸다.

"이젠 뭐하지..."

곧 해가 져서 오래 못 머무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할만한 게 참으로 없었다. 그렇게 20대 중반 남녀는 어린 애들마냥 설레임을 쪽쪽 빨며 나란히 그네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는 쉬지를 않고 장난을 치면서 내 반응에 꺄르르 웃어댔다.

귀한 손님이 방문하며 보낸 데이트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나도 여자친구 동네로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 집과 꽤 멀었던 그 곳을 찾아가며 나는 이 거리를 반대로 똑같이 거닐었을 여자친구가 떠올라 또 반가웠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여자친구의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후회를 하고 말았다. 부끄러워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보안문을 따로
지나야 하는 집을 살면서 처음 겪어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호출방법을 물었고. 그 문을 지나니 펼쳐지는 내 기준에선 마천루라 충분히 부를만한 웅장한 아파트 단지.

그리고 그 주변에는 프랜차이즈 식당과 빵집, 카페 등이 보였다.

저 멀리서 웃으며 달려오는 여자친구, 이번엔 자기가 쏘겠다고 말했다. 동전을 긁어모아 산 설레임 하나에 대한 보답으로 여자친구는 단지 주변에 있는 예쁜 식당에서 정말 맛있는 저녁을 사줬다. 그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우리 동네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래 된 슈퍼마켓과 나물가게, 문구점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던 우리 아파트 단지 내부. 할 수 있는게 없어 놀이터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기가 우리 집!"이라고 곰팡이 핀 복도 외벽이 보이는 그 싸구려 아파트를 가리켰던 내 자신이 떠올라 창피해졌다.

그리고 곧 여자친구 '집 근처'따위에서 하는 이 소소한 데이트가 내가 정말 큰 맘을 먹어야 가끔 가능했던 번화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와 다르지 않은 걸 깨달았다.

우선 괜한 생각 말고 음식이나 계속 먹으려는데 이상하게도 분명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들인데 퍽퍽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그러다 맞은 편에 앉은 여자친구의 얼굴을 봤는데 후줄근한 그네에 앉아서 수다를 떨 때와 전혀 다름 없는 밝고 신난 얼굴로 내게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던 나는
그 날 결국 체하고 말았다.



2023년 현재

저때 당시 만난 여자친구와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이별했던 걸로 기억한다.

현재는
생활이 불편하거나, 미래가 걱정될 정도의 가난은 씻어냈다. 사회에 나와서는 열심히 일했고.

일 또는 연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멋진 사람, 못난 사람, 부유한 사람, 당시 나보다도 가난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사람을 계속 경험하니 내 자신도 돌아볼 수 있었고. 내 삶 곳곳에 스며들었던 열등감을 씻어냈고, 자존감을 높였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존심까지는 바닥까지도 낮추는 소양도 갖췄다. 삶은 재밌고,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댓글 : 1 개
어릴때 사소한 경험이 깊게가죠 제조카도 10살때 축구가자는데 약속이 있어서 안된다고 한게 그렇게 섭섭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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