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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쓰기]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2025.05.25 AM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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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에 관해서 말하자면, 내가 EF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배교자' 율리아누스, 몽테뉴를 비롯해 내가 읽은 많은 사람이 보여준 경멸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건, 내 생각으로는,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죽어가는 것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게 거쳐야 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실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통증, 통증의 완화, 권태, 직업 상 동정심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 또 유명한―하다못해 흥미로운― 마지막 말을 남기는
일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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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있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 있다."
"계속해 봐."
"우리는 그 둘을 구별하는 걸 배워야 하며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고 이것이 우리를 삶에 대한 올바른 철학적 이해로 이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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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율리아누스를 생각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그를 해석하고 또 재해석해 온 방식. 여러 색깔의
조명을 받으며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람처럼. 오, 저 사람은 빨간색이야, 아니야, 주황색에 가까워,
아니야, 검은색에 가까운 인디고야, 아니야, 저사람은 완전히 검은색이야. 이보다는 덜 극적이고
덜 극단적이지만 이게 어떤 사람의 인생을 보든 벌어지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의 부모, 친구, 연인,
적, 자식이 각각 보는 방식.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의 진실을 눈치채기도 하고, 오랜 친구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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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2024)> 줄리언 반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