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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국제 비평] 나는 왜 성악성론자인가?2011.04.19 PM 10:31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타 인을 통해서 얻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들 중에서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그들이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산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자연에게서 "얻어야" 하는 것에는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몇 억년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질 수 없다. 인간은 항상 생존을 위해서는 자연을 파괴하는 수 밖에 없었다. 유감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혹시 저 울창한 산림이 과거에는 민둥산이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난 기간동안 인간들은 땔감등을 얻기 위하여 산의 나무를 베고, 식량을 얻기 위하여 화전을 하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홍수때 재해대비 능력을 읽어버린 산은 물을 마을로 그대로 흘려 보냈다. 인간들은 그러자 산림을 보존하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마을을 옮기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물론 이는 인간이 좀 더 편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저수지가 있으면 우리 인간은 가뭄에도 더욱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면 홍수 피해에도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는 인간 대 인간에서도 똑같이 적용 될 수 있을것이다. 인간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계속 번식하였다. 계속 번식하여 마침내 부족를 이루어 냈다.
인간들은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원시부족 내에서 식량이나 땔감을 가지고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분쟁은 사소한 것에서 큰 것으로 번져나갔다.
결국 인간들은 전까지 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살던 것에서 벗어나 규칙을 정하였다. 그 규칙은 서로가 합의하였다. 이제 므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에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부족은 그 문제아들을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남은 부족원들은 공포심을 느끼고 부족장의 권위에 더욱 협조했다.
여기서 성천설의 맹점이 보인다. 만약 인간이 날 때부터 선하다면 부족이 모은 식량이나 땔감을 모두 함께 나눠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오히려 부족원들이 사냥을 해서 나눠가진 식량을 빼았거나 훔칠려고 하였다.
성천설론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부족의 족장이 부족원들을 덕으로 잘 교육한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것이다." 물론 교육은 인간에게 살 길을 제공한다.
그러나 교육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덕으로 교육을 해도 이미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교육의 효과를 거부 할 것이다. 즉, 교육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때도 있다.
성선설론자는 다시 반박한다. "덕으로 재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덕으로 교육을 시도해도 이것이 효과가 있는 인간과 없는 인간은 구분 되어있다. 효과가 있는 인간은 가난하거나, 꼬임에 빠진 것이다. 효과가 없는 인간은 이런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중독성을 느끼는 것이다.
효과가 없는 인간은 처음에는 잠시 반성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것이다. 대개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더욱 많아지는 날에는 그 부족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면 멸망한 부족원들은 자식들을 이끌고 타 부족에게 몸을 의탁할 것이다. 타 부족은 이를 신선하게 받아들이거나 일단 확인을 해 본다음에 받아 줄 것이다.
거기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부족의 규칙에 잘 적응하여 생활 할 것이다. 어떤 인간들은 도둑질을 하다 걸려서 참수형을 당할 것이다. 또 다른 인간들은 그 부족의 신뢰를 얻어 부족장의 자리로 오를 것이다.
여기서 평범한 부족민으로 살다가 30세로 사망하는 부족민과 부족장까지 오르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 지능의 차이이다. 우습게도 그 지능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만이 아닌, 약간의 거짓말과 사기이다.
즉, 부족장이 되는 인간들은 약간의 거짓말과 사기를 쳐 부족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약간의 거짓말이 생존에 도움이 된 다는 것을 알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이 태어났을 때 부터, 이기심만을 쫓는다고 알고 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물론 '법정'이나 '달라이 라마' 처럼 이기심을 쫓지 않는 존재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자그마한 이기심은 있다. 인간 중에서는 이기심과 욕심을 안 가진 사람이 없다. 이는 원시시대 때 부터 벌어진 일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심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기간동안 인간의 이기심은 과학기술의 주요 발전원동력이 되었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댓글 : 11 개
- 꼬라박지호
- 2011/04/19 PM 10:47
리차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 읽어 보시면, 미생물간의, 동물간의 개체 단위의 이타적 행위도 결국 유전자 단위의 이기적 행동 결과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님께서 읽어보시면 흥미로울 듯 하네요.
님께서 읽어보시면 흥미로울 듯 하네요.
- [奪魂]현서휘™
- 2011/04/19 PM 10:48
저도 성악설에 동의합니다. 성무성악설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인간은 물론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고 일일히 정의하는 것도 웃기지만요...
그리고 성선설이나 성무성악설은 정말 모순이 많은 이론이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한데 뭐 주변환경에 물들어서 악해진다고 한다면, 결국 그건 희망이 없는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오로지 악의로 가득찬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혹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든 혹은 스스로의 존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선의'라는 것을 꽃피우고 도덕이라는 것을 만든다면, 그것만한 구원이 없지 않을까요??
애당초 신이 선하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부터 좀 그렇지만, 아무튼 성악설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성선설이나 성무성악설은 정말 모순이 많은 이론이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한데 뭐 주변환경에 물들어서 악해진다고 한다면, 결국 그건 희망이 없는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오로지 악의로 가득찬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혹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든 혹은 스스로의 존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선의'라는 것을 꽃피우고 도덕이라는 것을 만든다면, 그것만한 구원이 없지 않을까요??
애당초 신이 선하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부터 좀 그렇지만, 아무튼 성악설에 찬성합니다.
- 연금술사알케
- 2011/04/19 PM 10:54
살려면 어떤 쪽이서든 동족보다 앞서야할 수 밖에 없죠.
앞서서 잘사는 놈은 동족의 시각에서 보기에 악이구요.
앞서서 잘사는 놈은 동족의 시각에서 보기에 악이구요.
- schwarzwald
- 2011/04/19 PM 11:05
지금 세상이 아수라장이 아니라 그나마 돌아가는 건,
얼마 안되는 진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몇몇이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희생해 왔기 때문.
위쪽 덧글에서 이야기한 이기적 유전자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뭐, 이나라의 기득권들은 일찌감치 님이 생각하는
성악설이나 현실주의,속물주의,양비론으로 젊은 사람들을
자기 좋을데로 가지고 노는 법을 터득한지 오래입니다.
얼마 안되는 진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몇몇이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희생해 왔기 때문.
위쪽 덧글에서 이야기한 이기적 유전자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뭐, 이나라의 기득권들은 일찌감치 님이 생각하는
성악설이나 현실주의,속물주의,양비론으로 젊은 사람들을
자기 좋을데로 가지고 노는 법을 터득한지 오래입니다.
- 아뜨만
- 2011/04/19 PM 11:15
단순히 성악설적인 관점만이 인간의 근본이라면
당신이 어머니는 당신을 옛날에 버렸을 겁니다.
당신은 모성마져도 성악설로 정의할수 있습니까?
성악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리 자신의 뱃속에서 나왔다고 해도
엄연히 자신과는 다른 개체이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자신의 이득을 지속적으로 침범하며,
자라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가장 방해할 존재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랬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생물들이 자손을 번영하면서 관계되는 어미와 자식관의 관계는 성악설만으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오히려 선과 악이라는 기준과 관점이 무엇인가?하는 정의부터가 더 중요할듯 싶네요.
어느 시대에선 선이던게 어느 시대가 되면 악한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함과 악함,
그 모든 선택이 일어나는 원인은 자신의 존재함 그 자체를 위함입니다.
자손을 번성하는것도 결국 생물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함이죠.
즉 생물자체는 이미 '개체'를 넘어서있다는게 증명됩니다.
'자신'이라고 믿었던 '개체'가 죽어도, 자손을 번영할경우 생명자체는 사라지지 않을것이라는, 그리고 '내'가 죽어도 그런 생명자체가 유지되는것이 훨씬 중요함을 알고있습니다.
즉 성악설에서 예기하는 '나'만이 중요한 '이기심'이 인간의 근본이다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단지 '존재함'을 잃고싶지 않은것이 생명의 기본적인 욕구일뿐 입니다.
그런 '존재함'을 영위하기 위해서 선하니 악하니 하는 여러가지의 평가 가능한 생존방법중 하나를 선택할 뿐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가능합니다. 선하니 악하니 하는것은 단순히 나중에 평가될뿐, 애초에 그것이 '악하니까'선택되는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선택될 뿐입니다.
즉 인지되고 선택될수있는 '사건'들은 항상 변하고 평가하기 나름입니다만
그모든 변화를 인지하고 지켜보는 '의식의 주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악하다하든 선하다하든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인것처럼 말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존재가 선하다 악하다가 아니라, 존재는 어떠한 가능성도 다 끌어내고 선택할수있는 무한한 순수성이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성선설 성악설.. 모두 존재의 근원을 설명할수 없는 단지 여러 관점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당신이 어머니는 당신을 옛날에 버렸을 겁니다.
당신은 모성마져도 성악설로 정의할수 있습니까?
성악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리 자신의 뱃속에서 나왔다고 해도
엄연히 자신과는 다른 개체이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자신의 이득을 지속적으로 침범하며,
자라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가장 방해할 존재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랬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생물들이 자손을 번영하면서 관계되는 어미와 자식관의 관계는 성악설만으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오히려 선과 악이라는 기준과 관점이 무엇인가?하는 정의부터가 더 중요할듯 싶네요.
어느 시대에선 선이던게 어느 시대가 되면 악한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함과 악함,
그 모든 선택이 일어나는 원인은 자신의 존재함 그 자체를 위함입니다.
자손을 번성하는것도 결국 생물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함이죠.
즉 생물자체는 이미 '개체'를 넘어서있다는게 증명됩니다.
'자신'이라고 믿었던 '개체'가 죽어도, 자손을 번영할경우 생명자체는 사라지지 않을것이라는, 그리고 '내'가 죽어도 그런 생명자체가 유지되는것이 훨씬 중요함을 알고있습니다.
즉 성악설에서 예기하는 '나'만이 중요한 '이기심'이 인간의 근본이다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단지 '존재함'을 잃고싶지 않은것이 생명의 기본적인 욕구일뿐 입니다.
그런 '존재함'을 영위하기 위해서 선하니 악하니 하는 여러가지의 평가 가능한 생존방법중 하나를 선택할 뿐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가능합니다. 선하니 악하니 하는것은 단순히 나중에 평가될뿐, 애초에 그것이 '악하니까'선택되는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선택될 뿐입니다.
즉 인지되고 선택될수있는 '사건'들은 항상 변하고 평가하기 나름입니다만
그모든 변화를 인지하고 지켜보는 '의식의 주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악하다하든 선하다하든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인것처럼 말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존재가 선하다 악하다가 아니라, 존재는 어떠한 가능성도 다 끌어내고 선택할수있는 무한한 순수성이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성선설 성악설.. 모두 존재의 근원을 설명할수 없는 단지 여러 관점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 불쌍한놈들
- 2011/04/19 PM 11:18
아뜨만/모성은 20세기 이후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주입한 개념에 가깝습니다.
- 아뜨만
- 2011/04/19 PM 11:21
ㅋㅋㅋㅋㅋ 님 어머님께서 님을 낳고 키우신것과
수많은 생명체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키우는게
단지 20세기 이후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주입한 개념만으로 정리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수십억년동안 반복되어온 생명자체의 유지기능이 겨우 '주입된 개념'만으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모성에 감동하라거나, 어머니께 효도하라거나 감사해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감정은 진솔하게 나오는 그대로 느끼고 행동하면 됩니다.
다만 새끼를 낳고 기르는 과정자체에 이미 성악설의 기본인 '개인성'을 뛰어넘는 생명 그자체에 대한 큰 의식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거 자체가 이미 '자신'만이 이 세상의 중심이다는 성악설적인 기본전제를 뛰어넘지 않습니까.
수많은 생명체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키우는게
단지 20세기 이후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주입한 개념만으로 정리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수십억년동안 반복되어온 생명자체의 유지기능이 겨우 '주입된 개념'만으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모성에 감동하라거나, 어머니께 효도하라거나 감사해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감정은 진솔하게 나오는 그대로 느끼고 행동하면 됩니다.
다만 새끼를 낳고 기르는 과정자체에 이미 성악설의 기본인 '개인성'을 뛰어넘는 생명 그자체에 대한 큰 의식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거 자체가 이미 '자신'만이 이 세상의 중심이다는 성악설적인 기본전제를 뛰어넘지 않습니까.
- 아뜨만
- 2011/04/19 PM 11:22
만약 개체로서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면 왜 자식을 키웁니까?? '자기'라고 생각했던 개체로서의 생명이 끝나면 그 이후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 아뜨만
- 2011/04/20 AM 12:13
성선적인 모습과 성악적인 모습이 갈리는 기준은
'자신'이 무엇이냐?라는 자아상에 달려있습니다.
즉 '자신'을 타인과 완전히 불리되고 단절된 하나의 완벽한 '개체'로서 인식할경우
성악설적이며 이기적이고, 타인의 기분에는 전혀 상관없고 오직 '자신'이라는 기준이 최고가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 대해서 타인과 분리감이 덜하고
타인과 같은 대상에 대해서 '나' 처럼 느낄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포용력이 증가합니다.
즉 분리감보다는 '하나'라는 의식이 ㅤㅅㅗㄷ아나죠.
나->가족(친구)->사회->국가->인류->생명->우주와 같은 식으로
'자신'이라는 울타리는 커질수 있고
결국 성선설적인 세계가 구성되기도 하며
지금의 가정 사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런 유대감 덕분입니다.
만약 성악설이 인간의 근원이었다면 가정 사회 국가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겁니다.
즉 악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악함'이 존재의 근원적인 성격이 아니라
'자기'라는 기준을 어디까지 둘것이냐 하는것입니다.
'자기'가 작을수록 더욱 악해보이며 사람은 삶을 괴롭게 느낍니다.
자기가 한사람의 개체에서 끝난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마의 이익을 위해서 완벽히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모든 타인을 괴롭히겠지만 사실상 자신에게만은 '선'하게 대합니다.(즉 지독한 이기주의조차 '악'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선'입니다.)
자신속에 한 가족이 있다면 가족까지는 '선'하게 대하지만 그 가족 이외에는 '악'하게 대할겁니다.
만약 그 자신이라는 느낌이 국가까지 커진다면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는 애국자가 되겠지만
타국을 향해서는 전쟁까지 마다않는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할겁니다.
(물론 모든 애국자가 전부 타국과 갈등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국가를 넘어서 인류라는 관점까지 넓어진 의식이 있는 애국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반대로 이런 자기의시이 국가에서 끝난다면 나치나 일제같은 폭력적인 국가가 탄생하기도 하는것일겁니다.)
즉 관점에 따라서 테러리스트가 되기도하고, 애국열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결국 '나는 무엇이다'라는 의식의 범주에 따라서 '선'하게 행동하는 범주가 달라질뿐이며
'이기주의'라는 개념조차 자의식의 범주에 따라서 마치 '선'인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만약 모든 존재를 '나'라는 범주속에 담고있다면
그 모든게 '나'인 존재에게 이기심은 모든 존재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무한하며 영원한 사랑이겠죠.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님께서 쓰신 본문의 끝에쯤에
'나는 이런 현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심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지난 기간동안 인간의 이기심은 과학기술의 주요 발전원동력이 되었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에서도 보이듯이 이미 님께서도 자신과 인류를 따로 분리해 보지 않는 넓은 마음을 보이고 계십니다.
자신에게도 이미 한 개체를 떠나서 더 큰 인류의식이 있다는것을 증명하고 계신거죠.
'자신'이 무엇이냐?라는 자아상에 달려있습니다.
즉 '자신'을 타인과 완전히 불리되고 단절된 하나의 완벽한 '개체'로서 인식할경우
성악설적이며 이기적이고, 타인의 기분에는 전혀 상관없고 오직 '자신'이라는 기준이 최고가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 대해서 타인과 분리감이 덜하고
타인과 같은 대상에 대해서 '나' 처럼 느낄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포용력이 증가합니다.
즉 분리감보다는 '하나'라는 의식이 ㅤㅅㅗㄷ아나죠.
나->가족(친구)->사회->국가->인류->생명->우주와 같은 식으로
'자신'이라는 울타리는 커질수 있고
결국 성선설적인 세계가 구성되기도 하며
지금의 가정 사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런 유대감 덕분입니다.
만약 성악설이 인간의 근원이었다면 가정 사회 국가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겁니다.
즉 악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악함'이 존재의 근원적인 성격이 아니라
'자기'라는 기준을 어디까지 둘것이냐 하는것입니다.
'자기'가 작을수록 더욱 악해보이며 사람은 삶을 괴롭게 느낍니다.
자기가 한사람의 개체에서 끝난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마의 이익을 위해서 완벽히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모든 타인을 괴롭히겠지만 사실상 자신에게만은 '선'하게 대합니다.(즉 지독한 이기주의조차 '악'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선'입니다.)
자신속에 한 가족이 있다면 가족까지는 '선'하게 대하지만 그 가족 이외에는 '악'하게 대할겁니다.
만약 그 자신이라는 느낌이 국가까지 커진다면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는 애국자가 되겠지만
타국을 향해서는 전쟁까지 마다않는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할겁니다.
(물론 모든 애국자가 전부 타국과 갈등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국가를 넘어서 인류라는 관점까지 넓어진 의식이 있는 애국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반대로 이런 자기의시이 국가에서 끝난다면 나치나 일제같은 폭력적인 국가가 탄생하기도 하는것일겁니다.)
즉 관점에 따라서 테러리스트가 되기도하고, 애국열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결국 '나는 무엇이다'라는 의식의 범주에 따라서 '선'하게 행동하는 범주가 달라질뿐이며
'이기주의'라는 개념조차 자의식의 범주에 따라서 마치 '선'인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만약 모든 존재를 '나'라는 범주속에 담고있다면
그 모든게 '나'인 존재에게 이기심은 모든 존재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무한하며 영원한 사랑이겠죠.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님께서 쓰신 본문의 끝에쯤에
'나는 이런 현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심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지난 기간동안 인간의 이기심은 과학기술의 주요 발전원동력이 되었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에서도 보이듯이 이미 님께서도 자신과 인류를 따로 분리해 보지 않는 넓은 마음을 보이고 계십니다.
자신에게도 이미 한 개체를 떠나서 더 큰 인류의식이 있다는것을 증명하고 계신거죠.
- 아뜨만
- 2011/04/20 AM 12:47
결론적으로 '선'함이란 자기 존재자체에게 좋음을 뜻하며
'악'함은 자신에게 좋지 않음을 뜻할뿐입니다.
성악설에서 주장되는 인간의 '이기심'마저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선(좋음)을 택하는 마음일뿐
애초에 악함을 선택함으로서 존재에 대해서 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선(좋음)을 적용하려는 범주가 좁을 뿐이지
존재자체가 '좋음'을 ㅤㅉㅗㅈ는 욕구자체를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선설이 좀더 인간의 마음을 근원에 가깝게 표현한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단지 그 선함을 적용하는 범주가 작아질수록 성악설적인 측면이 커지지만
사실상 그런 성악설조차 성선설의 한 범주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악'함은 자신에게 좋지 않음을 뜻할뿐입니다.
성악설에서 주장되는 인간의 '이기심'마저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선(좋음)을 택하는 마음일뿐
애초에 악함을 선택함으로서 존재에 대해서 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선(좋음)을 적용하려는 범주가 좁을 뿐이지
존재자체가 '좋음'을 ㅤㅉㅗㅈ는 욕구자체를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선설이 좀더 인간의 마음을 근원에 가깝게 표현한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단지 그 선함을 적용하는 범주가 작아질수록 성악설적인 측면이 커지지만
사실상 그런 성악설조차 성선설의 한 범주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 꼬라박지호
- 2011/04/20 AM 11:41
아뜨만님, 선함이 자기 존재 자체의 선함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선'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 아닙니까?;;
본문에서 쓰신 분의 '선'의 개념은 '악'과 대비 되는 개념인데요? 그런데, 님이 쓰신 글처럼 자기 존재를 이롭게 하려는 걸 '선'의 범주에 넣는다면, '이기심' 또한 '선'이지 않습니까? 윗 글 쓰신 분의 요점은 위와같은 '이기심'을 '악' 요건으로 보고 인류는 이를 이용해서 발전했다인데, 이 기본 개념을 '선악'의 등위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선악'의 상위 개념으로서 또 '선'이라는 단계를 설정하시고 이로서 설명하시는 것은 마치 상대방과 다른 링에서 대결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님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님이 쓰신 논리가 상대방이 쓰신 논리가 가치범주가 다르다는 걸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쓰신 분의 '선'의 개념은 '악'과 대비 되는 개념인데요? 그런데, 님이 쓰신 글처럼 자기 존재를 이롭게 하려는 걸 '선'의 범주에 넣는다면, '이기심' 또한 '선'이지 않습니까? 윗 글 쓰신 분의 요점은 위와같은 '이기심'을 '악' 요건으로 보고 인류는 이를 이용해서 발전했다인데, 이 기본 개념을 '선악'의 등위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선악'의 상위 개념으로서 또 '선'이라는 단계를 설정하시고 이로서 설명하시는 것은 마치 상대방과 다른 링에서 대결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님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님이 쓰신 논리가 상대방이 쓰신 논리가 가치범주가 다르다는 걸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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