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기념비적인 날 (홍진채)2022.04.02 PM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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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31일은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서 기념비가 될 날이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을 필두로 한 주주측이 기업측의 반대에 불구하고 감사 선임에 성공했다.

 

늘어난 주식 인구, 인터넷 서비스 발달로 인해 용이해진 의결권 위임, 주도측의 정교한 공격 전략 등이 잘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결과다. 이는 단지 한 건의 회사와 주주 간 싸움 결과가 아니다. 어쩌면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를 '동학개미운동'의 새로운 조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건 또한 어찌될지 모른다. 3% 룰 덕분에 감사 선임에서 유리한 싸움을 끌고갈 수 있었지, 임원 선임은 또 다른 이야기다. 감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이 부여되고 정보가 공개될지도 모른다. 감사가 진정으로 전체 주주를 위해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건 우리 자본시장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작년 말경 모 언론과 거의 두 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를 했었다. 주식투자 인구가 늘어났는데, 이로 인하여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을 것 같냐는 게 주제였다. 내 대답은 대략 이랬다.

"사실 주식 인구가 늘어난 것 자체로는 큰 변화가 없을 거다. 투기의 대상은 다양하고, 자본시장은 온갖 혼돈과 착각, 거짓 선지자로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에, 도박판에 참여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이상은 아닐 수 있다. 이건 2017년 비트코인 때도 겪었던 일이고, 2007년 펀드 붐 때도 겪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이 다를 수 있다면, 주식이라는 건 이면에 기업이라는 실제 가치를 지닌 실체가 있고, 펀드 등 간접투자와 달리 직접투자가 많아졌다면 개별 기업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체가 발달하여 주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기업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경험과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주주들 간에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의 장이 열렸다.

만약 여기서 이 흐름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동안 친기업/반기업의 대립구도였던 싸움판에서 주주라는 새로운 힘이 등장해서 기업을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이 나라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아쉽게도 해당 인터뷰는 공표되지 않았고, 긴 시간을 쓴 것에 대한 아쉬움에 더하여, (나도 사람인지라 ㅎㅎ) '아이톨쥬'를 외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어서 아주 조금 서운한 마음이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해한다. 해당 언론사는 소위 '진보' 계열 신생 매체였고, 나의 이런 대답의 그들의 색깔과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혹은 그냥 내 인터뷰 내용이 별로였을 수 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 당시 진보 계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약간 이런 정서가 있었던 것 같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존재인데, 노동자가 주식을 취득해서 자본가가 되면 '사측'이 되어서 노동자를 셀프 탄압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라는 거. (순전히 뇌피셜이다. 정치는 문외한이고, 그쪽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서민이 집 사면 보수화된다'보다 더한 황당한 가설이다.

 

주식을 단 한 주라도 사보셨는가? 하하. 주식을 소유하면 일어나는 일은, 일단 사람이 똑똑해진다. 재무제표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사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거시경제의 변화나 정치 변수, 브라질 날씨까지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만약에 회사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내 몫을 가져가거나 숨겼다? 화가 난다.

 

주주라는 존재는 애덤 스미스나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던 존재다. 중세 시대에도 돈을 대주는 쪽과 실제 실행에 나서는 쪽이 분리되어 상생하는 관계가 존재했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는 왕실, 귀족, 소수의 신흥 자본가 계층이 주주 역할을 맡았다. 물론 미시시피 버블, 남해 회사 버블 등의 사례를 보면 대중들도 주식을 통해 돈을 불리는 데에 아주 관심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으나, 그 당시의 주주란 그거 '군중'으로서, 스스로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기보다는 소위 '큰손'들의 움직임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다인 존재였다.

 

미국의 기업 견제는 최근의 한국처럼 초창기에는 정부 주도로 일어났다. 1890년 셔먼 반독점법 제정, 1911년 스탠다드 오일 해체 등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20년대에 증시 호황이 있었으나 여전히 주식 인구는 많지 않았고, (대공황 직전 주식시장 급락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전국민 대비로 보면 많지 않았다. 의외로 증시 급락은 대공황의 트리거가 아니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하여 주식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깊어졌다.

 

1952년 미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약 650만 명, 전체의 4.2%였다. (이 주식의 80%는 전체 인구의 1.6%가 소유하고 있었다.) 1950년의 엄청난 상승장이 있은 이후 주식 인구는 세 배로 늘었다. 1965년 주식 소유자는 1,700만 명, 인구의 10%였다. 1970년에는 3,000만 명, 인구의 15%까지 증가했다.

투자 인구가 늘어난다고 기업이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개인주주, 기관투자자 모두의 무관심 속에 행동주의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 인수합병 열풍이 불었고, 이 당시 기업에 대항했던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기업사냥꾼'이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을 얻었다.

 

그러나 행동주의의 역사는 사실 그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 '가치투자'의 창시자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1세대 행동주의 투자자였다. 그는 1926년, 록펠러 계열 자회사인 '노던 파이프라인'이 엄청난 가치의 채권을 그냥 묵혀두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해서 2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배당으로 뜯어낸다. (록펠러도 은근히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엄은 1934년 '증권 분석'을 써서 주식과 채권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측정하는 방안을 제시하였고, 1947년 CFA 협회 창설에도 참여한다. 이와 동시에 공시 투명화가 진행되어 주주의 알 권리가 점점 더 많이 보장받았고, 이 모든 환경이 주주가 기업 및 대주주를 견제하는 무기로 작동하였다.

 

현재 한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약 800만 명, 인구의 15%로 추정된다. 주식 소유는 기업이 만들어낸 부를 국민에게 환원시키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건 가만히 있는다고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게 아니다. 주식 소유자가 주식을 단기 매매차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제도도 주주의 권리에 관심이 없다면, 회사와 대주주는 외부 주주에게 신경을 써줄 이유가 없다.

 




상장회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라도 우리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다고 동의한 것 아닌가. 주주란 무엇인가? 회사의 모든 이해당사자(고객, 직원, 벤더, 채권자, 정부 등) 중 가장 큰 위험을 짊어지고, 다른 모든 이해당사자가 자기 몫을 다 챙겨간 이후에 마지막으로 남는 몫을 가져가는 존재다. 주주가 위험을 짊어지기 위해서는 정보가 투명하게, 균등하게 공개되어 주주가 스스로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상장회사들의 정보 공개 수준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진짜다. 동남아 아무 회사나 찍어서 홈페이지를 보면, 실적 발표를 할 때마다 네다섯 개의 머티리얼이 공시된다. 감독 기관 공시 자료(doc), IR 머티리얼(ppt), 팩트쉬트(xls), 경영진 회의(doc) 등의 공식적인 자료에 더해, 실적 발표 행사의 실시간 중계, 녹화본, 스크립트까지 제공한다. 한국은? 시총 수십 조짜리 회사가 딸랑 다섯 장짜리 pdf 한 장 던지고 끝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내가 아는 한 전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물론 더 신흥국과 더 시가총액이 작은 회사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누구나 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주주가 된 사람들을 파트너로 대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주는 기본적으로 회사와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는 존재고, 일치해야만 한다. 정부와는 다르다. 정부는 회사를 키워서 세금을 많이 걷을 수도 있지만, 불공정 행위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 기업에 대항하는 세력이 정부 하나라면, 기업은 반기업 정서를 가진 당이 집권하면 숨죽여 지내고, 친기업 정서를 가진 당이 집권하면 마음대로 하면 된다. 로비도 적극적으로 하고. 그런 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제자리걸음이다. 기업이 거두어들인 초과수익을 모든 주주와 정당하게 배분하고자 할 때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훌륭한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할 발판을 갖추게 된다.

 

얼라인파트너스측은 단순히 프로듀서가 가져가는 몫이 너무 많다고 클레임한 것이 아니다. 상장기업의 대주주라는 자가 별도 회사를 차려놓고 이익의 상당부분을 그쪽으로 빼가는 구조를 지적하였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에스엠은 훌륭한 회사고, 전세계에 자랑스러운 아이돌을 내놓았다.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아주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십수 년 전 에스엠에 투자하던 당시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전체 아이돌 신규앨범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상 한국 엔터산업 전체를 보아 한 명이 하드캐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대주주 선생님은 미국의 기획자가 가져가는 몫과 본인이 가져가는 몫을 비교해서 이 정도는 정당하다고, 아니 오히려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 주장도 맞을 수 있다. 그만큼 큰 기여를 했다. 다만 현대 자본시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얼마를 가져가는지 밝히고 주주들의 동의를 받으라는 말이다. 상장회사라면 그래야 한다. (내가 알기로 얼라인파트너스의 기본 전략은 회사와 싸우자는 게 아니다.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윈윈 게임을 만들어가자는 거다.)

 

그동안의 '경제민주화'라는 건 정부 주도로 기업을 잡아족쳐서 뜯어내는 그림이었고, 외부 주주의 권익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기업도 정부도 직원도 그 누구도. 경제민주화라는 게 정말로 사전 그대로의 뜻, 경제가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전 국민이 나눈다는 뜻이라면, 모든 국민이 주식을 소유하는 게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예를 들어 모든 신생아에게 첫 돌 때 인덱스펀드를 백만 원어치씩 지급하고 30세 이후에 환매할 수 있게 한다면?)

 

혹자는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 너무 '주주자본주의적' 시각 아니냐고. 음.. 그 논의에 낄 생각은 없는데. 굳이 첨언하자면 주주자본주의 어쩌고 하는 논쟁은 주주가 가져갈 정당한 몫이 얼마냐의 문제다. 여기서 하고자하는 말은 주주가 가져가는 몫이 얼마건 간에, 그 몫은 모든 주주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거다. 소수의 주주가 다른 주주를 배제하고 사익을 편취하는 양상이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부 축적을 저해하고, 나라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 주주라는 새로운 세력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축하할 일이다.

 

 

- 홍진채 님 페이스북 -

댓글 : 1 개
  • Pax
  • 2022/04/02 PM 05:16
현실적으론 이사회의 최종 거수기일 뿐이었던 감사가 어디까지 이사회를 견제할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지만...

회사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임했다는게 중요하긴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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