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글을 만든 집현전 학자들?2013.11.13 PM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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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만든 집현전 학자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주도하였지만, 직접적인 실무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으므로, 훈민정음을 공동작업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일례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도 공동으로 만들었다는 문구가 나오므로
자뭇 많은 사람들의 이런 '오해'는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훈민정음의 창제는 아직 비밀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공동작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것처럼
비밀조직을 만들고 작업을 했거나, 직계 가족과 함께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훈민정음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종어제훈민정음.
이 '어제'라는 단어에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관련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다만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모으기란 쉽지 않기에, 아직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자세한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저런 상상이 '뿌리깊은나무'
라던지 '사실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고 세종대왕은 숟가락만 올림ㅋ' 라는
상상의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겠다.

확실한건 공개적인 작업은 아니었다는 것이어서 적어도 집현전 학자들이 직접적으로
만든것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고, 훈민정음을 공개하고 반포하려 했을 때,
정창손, 최만리 등과 같이 집현전 학자들의 극렬한 반대상소들만 보더라도
적어도 훈민정음 창제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의 적극적인 작업참여는 미미 했을 것이라
보인다.

물론 새로운 글자를 창조하는 과정을 세종대왕 혼자서 했다는 것은 비현실 적이므로
성삼문, 박팽년 과 같은 일부 집현전 학자들의 보조적인 작업 혹은 직계가족들의
적극적인 도움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가 훈민정음에 대해 지나가는 말투로
훈민정음도 세종대왕 혼자서 만든것이 아니라 집현전 학자들과 같이 만든것 아니냐?


라는 말을 듣고나서, 아직도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작업이라고 말하기에는, 세종대왕의 찬란한 업적을 폄하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깃든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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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글학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의 탄생에서, 당대 조선에서 사용되던 기록은 모두 붓을 사용하여 한자로 쓰여진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붓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붓으로 글씨를 쓸 때에 생기는 획의 삐침이나 획 사이의 여백, 그리고 글씨를 이어서 쓰는 연서 등은 필연적인 것이자, 동시에 글씨의 형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자는 연필 등의 다른 필기구로 쓰여지지만 이러한 삐침은 사라지지 않고 획 자체에 포함되어 유지되고 있다. 만일 사대부들의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서 글씨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필기구인 붓을 사용할 것을 전제로 자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 책 자체도 붓으로 쓰여졌으나, 훈민정음의 자모만큼은 그러한 삐침 등이 완전히 생략된,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간결함의 극치를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붓을 쓰던 시대에, 훈민정음은 자형을 만드는 단계에서 이미 붓을 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졌다. 노마 히데키는 훈민정음의 극도로 단순한 모양은 붓과 먹, 종이 같은 필기 도구를 살 형편이 안되는 백성들까지도 훈민정음을 쓰게 될 것을 배려하여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추측했다.


저자의 말을 덧붙인다. '훈민정음은 어리석은 백성이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낙서하듯 그리기에 어려움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참고로, 훈민정음에 연서와 삐침이 등장한 것은 창제 후 수 세기가 지나고 궁체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와 비슷하게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많은 문자들이 대개 복잡하면서 장식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실용성만을 고려하여 장식성을 완전히 배제한 초창기 훈민정음의 모양은 어떻게 보면 당대의 서체 미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전위적인 형태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거의 근대 모더니즘을 연상케 한다.


------------- 엔하위키 '훈민정음' 항목


김구라의 발언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지만, 이 글을 쓰는 나 조차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역사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이 글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더 큰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글을 적은 제가 말할 수 있는 한마디는 이 글이 여러분에게 조그마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제70호 이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해례본이 등재된 점에 유의!




한글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문자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저명한 과학잡지 디스커버리는 94년 7월호에서 한글을 소개하면서 여러장을 할애했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the world's most rational alphabet)" 이라고 극찬하였다.




2011년 7월 영국 루트리지사는 언어와 언어학의 50대 주요 사상가중 한 사람으로 세종대왕을 꼽았다.








해례본이 중요한 이유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한가지 더 말하자면,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오직 이 해례본에만 쓰여져 있기 때문인데,
이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한글의 창제에 대해 억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 조금 있는 분들이라면, 문창살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아실수 있겠다.

현재 한국에는 딱 2권만이 남아있고, 간송본과 상주본이 이 해례본이다.


간송본은 지식채널e 에서도 소개된바 있다.
간송본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호에서 따와서 간송본이라고 하는데,
이 간송본을 구하기 위한 값으로 1만원을 치룬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현재 가격으로 치면 10억 정도 되는 것 같지만 정확한 가치를 전 모르겠네요.)


댓글 : 8 개
솔직히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TV에서 본 혼자 만들었다는 설에 좀 더 믿음이 가던데 -,.-;;
세종이 한글 만들었을때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 상소 올린거 보면...
적어 주신 최만리의 상소건으로 보았을때 적어도 집현전은 훈민정음을 만든 핵심 세력은 아니라는게 정설이죠.

최만리는 당시 부제학으로 실질적인 집현전의 수장이었는데 그가 훈민정음이 나오자마자 상소 올리고 이에 격노한 세종대왕이 국문을 했던건 실록에 나오는 사실이니까요. ㅎ

아들 수양과 양녕을 중심으로한 비밀조직이 있었다는게 가장 믿음직한 추론인듯 :D
소수 인물들이 도왔을 뿐이지
결국 그 뿌리가 되는 것들과 창작 자체는 본인이 한 거니까,
적어도 90프로 이상은 세종대왕님이 혼자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게 아닐까요..
발상 자체를 세종대왕님이 하신거니까요.
왕권이 강했다면 시키는 일은 하고 할말을 해야 했겠죠.
윗 분들 말씀처럼 90%든 뭐든 최소한의 협력은 이루어져서 만들어 진것이 한글 이라는 말이 되는거겠죠.
사실 저도 역사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세종대왕에 대해 알아보면 학문쪽으론
희대의 먼치킨이라 할만큼 뛰어난 인재였다고 합니다.
그 시대 상황이나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등을 볼때 혼자만들었다는게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지않나 싶네요.
왕조 실록을 봐도 그렇고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 상소도 그렇고...

최근에 보통 보기로는 세종이하 몇몇이 만든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죠 문종과 세종의 몇째 딸내미 던가? 무슨 공주가 그렇게 똑똑해서
도왔다고...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거의 혼자 다 만들었다는게 정설이죠.
세종대왕은 뭐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이기도 했으니...
아들,딸들이 아버지의 연구를 도왔다는 얘기는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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