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친척이 피싱에 당했습니다.2020.03.16 PM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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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심각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계십니다.

ㅁㅁ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걸 보니 사촌동생이름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씻으며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돈은 있다가도 없는거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걸보니

좋지 않은 일이 터진건 분명.

 

씻고나서 푸쉬업과 스쿼트를 병행하며 통화내용에 귀를 귀울입니다.

아무래도 내용상 사기쪽에 당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더 이어지던 통화가 끝나고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이 30이 갓 되는 사촌동생이 있습니다.

회사 다닌지 5년 정도 되었고, 가정환경은 어려운 편이라 열심히 돈을 모으고, 시험도 합격하고 해서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피싱사기단이 작업을 하기 전에 신상명세를 어지간히 파악해둔 것인지, 메신저인지 메일인지를 해킹하여

절친인척 행세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개인간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신세한탄 이야기를 하며, 사촌동생의 직장 상황과 시험이야기까지 들먹이며

좋은 환경을 강조하고 불우한 절친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최근 사고를 크게 쳐서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고, 사촌동생은 친구를 도와줄 생각에

 

소중하게 모은 돈과 대출까지 끌어모아 2천이 넘는 돈을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기단은 영악하게도 은행 송금 취소를 할 수 없는 토요일에 일을 벌였고, 보내고 나서야 뭔가 잘못된걸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죠.

 

 

예전에 경찰공무원 준비로 공부를 하며 사기수법들을 봐왔고, 이후에도 뉴스에 사기 뉴스가 등장할

때마다 관심있게 지켜보고 주위에 경고도 하고 하였는데 정작 친척중에 이런 일을 당하니 답답할 뿐입니다.

 

평소 왕래가 잦아서 친하게 지냈다면,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면, 그런 연락을 받았을 때 나한테 전화한통이라도 했을 것이고, 그럼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도 듭니다.

 

이제 남은건 운이 따라줘서 사기단이 검거되고 돈도 무사히 찾는 일이겠지만, 이런 피싱 사기단이 보통 국내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사촌동생이 부디 극단적인 생각과 한방에 복구할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잘 견뎌내길 바랄 뿐입니다.

지금 코로나 상황이 진전되면 찾아가 술이라도 사줘야할 것 같습니다.

 

사기는 사실 아무리 수법을 잘 알아도 당할 상황이 되면 당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러니 돈 거래는 대면 혹은 검증된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착잡하네요....

 

 

댓글 : 1 개
제 경험상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상실감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우울증도 따라온다 생각해야 하구요. 혼자서는 절대 그 PTSD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회복하는 과정도 수 년에 걸쳐서 더디고 고될 겁니다.

남들 지나가는 속도 그대로 다시 따라잡으려고 하다가는 이도저도 안 됩니다. 버스는 이미 떠났다 생각하고, '날아간 시간 만큼 천천히 다시 걸어가자. 까짓거 그만큼 남들보다 더 살면 쌤쌤 아니겠나' 하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포기하고, 비워내는 마음으로 지내는 게 도움이 됩니다.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날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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