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는 글쓰기] 죽음의 무도2014.05.10 PM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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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들진 않지만......




항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저 태양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이름도 알 수 없는 별의 중력으로 끌려들어갈 것이 분명해보였다. 승무원 중 가장 보안 등급이 낮은 나에게까지 이야기가 들려온 것을 보면 사실인 모양이다. 모두가 수근거리고 있었다. 식당의 사만다도, 함내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정비공 데이빗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바랬다. 저녁이 되자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함께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번영과 행복을."
문득 들여다본 함교는 너무 평안해보여서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 날 밤, 함께 함선에 올라탔던 생물학자 존을 만났다. 존은 나보다 보안 등급이 높아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술을 몇 잔 들이키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개미는 앞사람이 흘려놓은 화학물질을 따라 이동하는 습성이 있지. 집단으로 움직이는 개미의 경우, 선두의 개미가 제대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면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돌다가 지쳐서 모두 죽어버려. 왜 그런지 알아? 스스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는 내 어깨를 힘주어 꾹하고 눌렀다.
"아무도 함장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을거야. 현재의 지위 때문에,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아니면 혹은 진실이 너무 잔인해서 일수도 있어. 그건 마치 개미들의 죽음의 무도 같을거야. 스스로 판단해. 그리고...... 내일 사람들과 함께 창 밖을 잘 보고 있어줘."
다음날 다시 환희의 송가가 흘러나오던 그 때, 창 밖으로 한 대의 셔틀이 날아갔다. 셔틀은 모함의 주위를 대여섯 바퀴 크게 돌더니 우리가 진행하게 될 항로를 따라 모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곧 항로를 벗어나 별의 중력으로 끌려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오, 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오 제발, 저 서글픈 죽음의 의미를 봐줘. 눈을 뜨고. 더 크게! 더 크게 뜨고!
한 사람의 죽음은 일탈로 해석되었다. 그들은 다만 제자리에서 하던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다음날, 나도 몰래 셔틀에 타고 모함을 빠져나왔다. 존과는 다른 방향으로, 우리가 이제껏 진행해오던 삶의 반대 방향으로 나는 셔틀을 몰았다. 이 작은 셔틀에는 생명을 유지할 어떤 수단도 없었다. 나의 조악한 자기만족만이, 자기애만이 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혼자 남은 자신을 인식하자 이내 폭풍처럼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잘한 일인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큰 우주선의 방향을 돌려야 했다. 결국 도망치고만 힘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속상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경보음과 함께 셔틀의 뒤편으로 함선이 꿈틀대며 방향을 잃는 것이 보였다. 지금도 함선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을까? 한참을 울고나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야...... 그래. 기록을 남기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것 뿐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노트와 컴퓨터에 닥치는대로 이야기를 적었다.
셔틀은 언제든 어디든 반드시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댓글 : 2 개
죽음의 무한도전
어쩐지 그래서 접속자가 평소보다 더 폭주했군요. 낚시한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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