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는 글쓰기] 관2014.06.29 AM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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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 정도 틀어진 것 같은데."
녀석이 또 시작했다. 나는 시체를 파묻는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큰 홍수가 옆 마을을 덮쳤고, 그 희생자들을 묻는 중이다. 여기 지원해서 나온 이후로 이 녀석은 계속해서 각도를 지적했다. 관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게 좋다느니, 삐뚤게 들어간 것 같다느니, 이제는 구덩이도 정방형으로 지어진 묘지의 각과 일치하도록 똑바로 파라고 지시하는 중이다. 내 생각에는 시신이 부패하여 병이 돌지 않도록 빠르게 관을 땅에 파묻고 나면 그 조금의 각도라는 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구덩이든 관이든 가까이서 보기에 틀어져 있고 묘지와 수평을 이루지 않더라도 그거야 인간이 그어놓은 구획 내의 일이고 더 넓은 범위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더 올바른 각일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슬픔을 나눌 공간을 빠르게 만들어주고 사라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일을 계속 다시 하다가 지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녀석은 대충 하려 한다며 경건함이 부족하네 어쩌네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를 호도하고 비난하고 하는 것이다. 몇 번 몹쓸 사람이 되고 나니 이제는 그 녀석과 언쟁하기도 그만두었다. 오늘로 이 것도 끝이다. 내일부터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드러나는 것보다, 형식적인 것보다야 본질이 훨씬 중요하다. 나도 슬픔을 묻으러 왔다는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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