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검은 신, 하얀 악마(Deus e o diablo na terra do sol, 1964) 2014.10.27 PM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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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영화인 검은 신, 하얀 악마를 보았습니다. 누벨 바그와 동시대에 브라질과 제 3세계의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을 이끌었던 시네마 누보 운동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소작농인 마누엘은 지주의 횡포와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그를 죽이고 아내인 로사와 도망쳐 세바스챤이라는 선지자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세바스챤은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며 민중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종교 지도자인데 마누엘은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됩니다. 교회와 정부는 세바스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 하여 죽음의 안토니오라는 남자를 고용하고 마누엘은 종교 의식의 하나로 그의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로사는 아들을 죽인 세바스챤을 살해하고 때마침 등장한 안토니오가 나머지 추종자들을 모두 죽여, 로사와 마누엘은 다시 무기력한 떠돌이가 되어 황무지를 떠돌다가 이번엔 코리스코라는 산적을 추종하기 시작합니다. 코리스코는 자신 이전 폭력으로 민중에게 권력을 찾아오려 했던 람피앙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마누엘은 코리스코와 행동을 함께 합니다. 결국 다시 안토니오가 등장하여 코리스코를 죽이고, 마누엘은 그를 피해 달아나며 영화를 끝맺습니다.

마누엘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부당한 힘에 짓눌려 있는 나약한 민중을 상징합니다. 노력에 대한 대가가 따르지 않고 권력자들은 합심하여 그 지배구조가 탄탄해져 있으므로 민중은 기적에 기대어 현실을 극복해 나가려고 합니다. 신앙과(선지자) 폭력(전설적 의적)이죠. 하지만 둘 모두 민중에게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세바스챤은 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거짓 선지자로 변질될 뿐이고, 민중에게 권력을 달라고 울부짖던 도적은 폭력에 중독되어 총잡이에게 목숨을 잃고 마니까요. 영화는 마누엘의 행동을 통해 이런 민중의 고통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는 방법을 택하진 않습니다. 다만 맹인을 통해 앞이 잘 보이느냐고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나약하게 다른 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지요.


실험적이다 싶은 장면이 많은 영화입니다. 군중들 사이에서 한명 한명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엔 브라질 전통 음악을 깔고 노래를 집어 넣어 배경과 현재 상태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아무 소리 없이 황무지를 비추며 철학적으로 사색하다가도 갑자기 서부극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전투 총을 쏘며 지그재그로 달려나가는 안토니오와 코리스코의 모습을 멀리서 잡은 장면은 심각한 그 전의 장면들과 대비되서 아주 우습게 보이기도 하죠. 이런 극적인 변화들은 그들이 품은 정의, 철학의 부재와 황무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할 수 밖에 없는 민중의 고통을 더 자극적으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특히 마누엘의 아내인 로사의 무기력한 표정을 클로즈업한 장면들은 아주 슬퍼보입니다. 다만 후반의 이십분 가량은 지나치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보기가 힘들더군요.


보면서 같은 브라질 영화인 엘 토포 생각이 많이 났는데, 브라질에선 가톨릭이 토착 종교와 융합하여 퍼져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부분을 많이 다루는 두 영화가 비슷하게 보이는 것인가 봅니다. 서부극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겠고요.

두 영화 모두 민중이 신앙과 권력에 의해 학살 당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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