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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일기] 재미 없는 날2012.03.11 PM 09:26
우리 캠프를 아주 크게 나눈다면 둘로 나뉜다.
기본적 업무와 기타등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선거본부 사무실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카페 '고래'에서 이것저것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정책팀이다.
며칠 전 한쪽에서 나를 전담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상의했었다는 걸 알았다.
나 없을 때.
나는 기본적으로 남들이 잘한다 못한다 평하든말든 신경 안 쓰는 편이고
그나마 최근에는 그런 평들에 아예 귀도 안 기울인다.
어차피 남들이 뭐라고 나를 평가하든 내가 아는 내 자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딱히 조직에서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남에게 욕먹고 다닐 짓도 하지 않으므로
타인이 나를 자신들의 잣대로 보든 말든 상관은 없다.
다만 나를 데려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선거캠프에 오기 전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었다.
선거캠프가 요구하는 조직동원력, 선거기획력, 상황판단력 등이
여기서 10~30년 동안 이짓을 해 온 사람들보다 월등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내가 왜 필요하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귀찮은 일 도맡아 하는 '시다바리'가 필요하다는거지.
그걸 놓고 나 없을 때 비겁하게 한 쪽이 나를 요구한 것이다.
본래 성격상 이 정도로 돌아가는 상황이 판단되면
싸그리 뒤엎을 구실을 삼고도 남겠지만
아직 이 일을 두 달도 채 못한 내가 그럴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는 첨부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뭘 감당해야할지 알고 있었고,
그걸 감내하기로 마음먹고 왔으므로
억울할 것도 없었다.
딱히 화도 나지 않았다. 그 쪽에서 일하는 성격상 당연히 그런 요구를 하리란 건 알았다.
그래서 준비했던 이야기를 했다.
'연대와 화합의 정신을 맨날 강조하시면서 캠프 안에서도 귀찮고 힘든 일 하나 안하려면 그런 정신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와서 일하면서 떨어져 있는 휴지 줍는 사람 딱 한 명 봤습니다. 우리 후보님요.
남들 다 하기 싫고 귀찮아하는 일은 여자들이나 나같은 사람한테 맡겨놓고 머리만 굴리고들 싶으십니까?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사무실 놀러 오는 유권자들이 다 보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여긴 말로는 진보니 뭐니 하는데 짬밥놀이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캠프는 우리들이 만드는 거라고 하셨는데 대체 어떤 캠프를 만드는 겁니까? 제가 여기서 궂은 일까지 하는 이유는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캠프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업무를 나에게 주느냐를 따지지 않고 저는 뭐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그쪽에서 제 쓰임을 결정해서 마음대로 쓰려고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도 저 쓰고 싶으시면 서로간에 갈등 없도록 저 못 주겠다고 하는 두 분 설득시키는 거 보여주면 군말없이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판단해서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냥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다들 있기에, 할 일도 딱히 없고 귀찮아서 집에 왔다.
늘 재밌게 했는데 오늘은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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