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백무동2012.06.13 AM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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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처음 도전했을 적 코스가
지리산에서 제일 높으며 험한 곳인 천왕봉이었다.

당연히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볍게 생각하고 갔다가 큰 낭패를 보았었다.
한참 올라가는 도중에 근육통-흔히 경상도말로 알배겼다고 한다-으로
아예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었다.

해도 일찍 지는 겨울산에서 어찌나 난감했던 상황인지
항상 산에 올라갈 적에는 그때를 생각하곤 했다.

지리산 특성상 돌길이 워낙 많은지라
오늘 올라간 백무동-세석평전 코스도 두려움이 앞섰다.

전날 잠을 설친터라
몸이 매우 피곤했기에 더욱 그랬다.

초입에서 오르막을 오르다가
야속했던 사람, 미웠던 사람을 떠올렸다.
마치 산이 그 사람들이라도 되는냥
절대 비참하게 주저앉는 꼬라지는 못 보이겠다는
분노와 투쟁심이 정신을 휘감았다.
이를 빠드득 갈면서 올라갔다.

정신없이 올라간 것 같다.
한신계곡의 정취를 보게 될 즈음에는
그따위 미움이나 분노같은 건 잊은지 오래였다.

그저 내게 산이란 거대한 존재만이 느껴졌을 뿐.

피곤하고 지친 몸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그저 자연밖에는 없었다.

한 걸음을 걸을때마다 잊었고
산을 한 번 바라볼때마다
세상엔 산과 나만이 있는 것 같았다.

인자(仁者)는 요산(樂山)이라 하였다.
어짐(仁)이란 분노를 버리는 것이란 것을 문득 깨달았다.

지나간 일에 그토록 마음을 두는 것이
무삼 소용이 있겠는가.

절실하였든 절실하지 않았든
나는 마음을 다했을 뿐인데.
뭐 그리 억울하고 안타깝겠는가.

그저 부질없는 미련일 뿐.

노승이 개울을 건너는 처자를 도와주자
소승(젊은 중)이 불자가 어찌하여 부녀자에게 관심을 가지느냐며 따지니
왜 너는 아직도 그 처자를 마음에 업고 있느냐며 호통을 쳤다지.

산을 내려오고 나서도,
나는 분명히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지금처럼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허나 현실을 살아가는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도 마음에 업고 있는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다......


드디어
지리산을 제대로 탔다.

아,나는 자연인이니까
이 동영상 올려야지 ㅋ

댓글 : 2 개
지리산을 올라갔을때는 독하게 살자고 마음먹고 올라갔지만
올라가면서 느낌점은 올라가면 갈수록 눈보라....빛이 없는 눈길...
천왕봉까지 진짜 기어서 올라가서 본 광경이란!!!
눈만 보여서...슬프더군요..ㅜㅠ
마지막으로 내려올때 무슨 돌이 너무 많아서 너무 힘들었네요..
ㄴ 제가 천왕봉을 올라갔을 때도 겨울이었습니다.
어찌나 멀고 멀게 느껴지던지...근육통으로 주저앉았을땐' 아...기어서 내려가야하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더랬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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