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담배야, 안녕2012.07.20 AM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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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처음으로 제대로 핀 것은
수능을 쳤던 해 크리스마스다.

나는 누군가에게 담배를 배우지 않고
스스로 사셔 폈다.

이후로
스무살 때 돈이 너무 없어 한 달간 금연한 것과
군대 훈련소에 있는 기간동안 타의로 담배를 피지 못한 적을 제외하면
담배 없이 살았던 적은 없었다.

굳이 담배를 끊겠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너무너무 사랑했다.
친한 후배들도 여행을 갔다오면 꼭 내게 담배를 사왔다.
군대 후임병들도 외박이나 휴가를 다녀오면 꼭 내게 담배를 사다 바쳤다.

그래서 사실 담배피는 여자들이랑 만나는 걸 좋아했다.
잔소리를 안 하니까.

대학 시절에 내게 굉장히 잘 해주던 여자 후배가 있었는데
담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래서 그 아이랑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
담배피는 것을 자제했는데
어느날은 너무 담배가 피고 싶어
한 대 피러 나간다고 말하고는 담배를 물고
라이터가 없어 당황했던 적이 있다.
후배가 나를 따라 나오더니
라이터 없어서 그러시죠 하고 물으며
라이터를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담배연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말이다.
고맙다기보단 너무 마음이 아련해져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었다.
그 날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난 또 담배를 폈다.

담배는 항상 나랑 같이 있었다.
부모님과 장래 문제로 언쟁이 있을 때도,
개같은 놈들의 개같은 작태를 보고 속이 상했을때도,
혼자서 볼 사람도 없이 쓸쓸해질 때도,
담배만큼은 언제나 내 주머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필요로 할 때 항상 같이 있어 주었다.

그래서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내 친구로 자리를 지켜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을 생각이 없었다.
마치 절교하는 기분같았으니까.



하지만
어제의 악몽 이후로
무언가를 느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지
계속 혼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담배 때문에
나와 같이 있는 걸 꺼리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담배를 잃는 것보다 슬플 거라는 생각을.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왔을 때도
난 담배를 폈다.
담배를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다음엔 어떤 여인네라도
담배냄새 때문에
내게서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 사람이 담배냄새가 싫어 뒷걸음질 칠 때 느꼈던 그 비참함.
내 스스로가 만든 비참함.

본래 제대로 그 사람이랑 사귄다고 내가 느꼈다면
새 갑을 하나 사서 바다에 던져버리려 했었다.
그거라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유치한 발상이다.

담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랜 인연을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갑을 사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렌피딕 한 잔과 함께
거창한 송별회를 했다.

안녕.
정말 안녕.
인사가 길어지면 미련이 남을테니 짧게 인사하자.
댓글 : 6 개
우리 아버지는 2010년 10월 18일부터 지금까지 금연하고 계십니다. 빌리님
ㄴ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죠. 여튼 춘부장께서 건강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ㅠ.ㅠ 아련하네...
금연!!!!
제대로 염장지르는 금연글









하지만 생각이 멋져서 인정.
츤데레 루시스, 구름 _, keep_Going //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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