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비를 맞으며2012.09.09 PM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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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이 시는 사랑에 대한 시이다.
종교적 구도자의 자세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한용운이 불교를 대표하는 민족지도자였으니
여인과 맺었던 인연에 대한 추억이라 설명하면
곤란해지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시는 아무리봐도
그가 사랑했던 여인,여연화(如蓮花)를 생각하며 쓴 시이다.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보면 느껴진다.

그것을 프랑스 철학자의 말로 풀이하면 이러하다.

* 사랑의 단상 - 바르트

'나는 이런 모순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게 그 사실을 의기양양하게 시위한다("난 당신을 잘 알아요. 나만큼 당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걸요!").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도,찾아낼 수도, 다룰 수도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열어젖혀 그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수수께끼를 풀어 해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온 사람일까? 그는 누구일까?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부산에 도착하니 비가 온다.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는 것에 익숙해지면
옷이 젖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게 된다.

만화가 김성모의 그 허세스런 말이 맞는 말 같다.
우산은 가슴 속에 쓸어내릴 것이 없는 놈들이나 쓰는 거라던.
하하...
댓글 : 2 개
날씨가 선선하니 좋네요~~~
비에 쓸어내릴 것이 시원하게 내려가셨길..^^;;
구름 _ // 시원하게 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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