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인사 같은 맛,단술같은 사람2012.09.26 PM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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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맨날 '우동'이란 영화를 틀어주는데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

우고 연락선이라는 배가 있었다.
세토나이카이(內海)와 본토를 이어주는 정기 연락선인데
그 배에서 우동을 팔았단다.
이 우동은 우리 나라 고속도로 우동처럼
딱히 찰기도 없고 면도 그저 그렇고
국물이 맛난 것도 아니었지만,
항상 맛있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한 우동이 아니라
떠나고 돌아올 때 하는 '인사'같은 느낌이었단다.

생각을 해보면
나도 예전,명절 때
큰 집이 있는 진주에 가면
정말 좋아하던 게 있었다.
아침에 친할매가 방에 갖다주던 차가운 식혜.
옛날 사람들은 그걸 단술이라 불렀는데
난 그 단술이 항상 그리웠다.

떠나서 한참을 잊고 있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엄청 그리운, 그런 존재였다.

나는 좋아했던 여자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별로 재밌게 해주지도 못하고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어필하지도 못하고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주지도 못하고
사실 그렇게 여자들이 내게 안달할 뭔가는 없다.

그렇지만
삶이 고되고 지칠 때, 혹은 아주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그 식혜를 그리워했듯
그 여자들이 나를 그렇게 찾길 원했다.

평소엔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더라도
'아,내가 정말로 그립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었구나!'
이런 느낌이랄까.

뭐,그런데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식혜같은 남자는 못 되었던 것 같다.

떠났던 여자들을 원망하고 좋은 사람을 못 만났다고 푸념할 필요가 있겠는가.
단지 내가 부족하고 뭔가 어설펐으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내가 훌륭한 그릇이 되었을 때,
훌륭한 인생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전부터
'나'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해주고
믿어주며 따라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은 참으로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한다.

나는 연애 면에서만 따지면 별로 인복이 없으니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게 더 낫다고 본다.

예전엔 언젠가 만나겠지 하며
램프의 요정처럼 누가 꺼내주길 기다렸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 안 한다.

그건 그냥 저절로 오는 것이다.
오지 않음을 괴로워하고 슬퍼했던 예전의 나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만년 솔로생활은 참으로 고달픈 인생이니까.

하지만 삶이란게 워낙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부분이 있어서
언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별로 절망감 같은게 안 든다.

나는 진주 진양호 촌구석 2층 기왓집의
그 찹찹하고 머금으면 단맛이 서서히 스며들면서
언젠가 갑자기 떠올릴 때,
사람을 미소짓게 하는 그런 '단술'같은 사람이 될 터이니.
댓글 : 3 개
글 참 맛갈나게 쓴다.
나도 그런 음식들처럼 누군가 나를 찾거나 그리워 할 사람은...있겠구나...하하
할매표 식혜는 맛있엉 ㅋㅋ
직접 만들어 먹던 식혜가 그립네요.ㅎㅎ
물론 어머니랑 할머니가 해주시던.
구름 _ // 그런 걸 '소울푸드'라 부른대요. 멋지지 않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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