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둥글지는 못해도2012.09.29 PM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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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 사장이 당고(경단)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열심히 밟은 밀가루 반죽을 열심히 주물러 동그랗게 만든다.
잘 만들었다고 칭찬받았다.

달처럼,여자 가슴처럼 예쁘게 둥근 당고를 바라보니
가족들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은 아쉽게도 내가 만든 당고처럼
둥글둥글하고 예쁘진 못하다.

철없으신(?) 울 아부지.
고집불통에 이기적이신데다 성정은 또 오죽하신지.
결국 다른 여자 만나시다 울엄니한테 들키시고 헤어지셨다.

나는 평생 살면서 업소에서 2차를 가본 적이 없는데
아마 울 아부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섹스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걸 돈 주고 산다니 우습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부지를 보면서.

커가면서 공부할 때를 제외하곤 사사건건 아부지랑 다퉜다.
아버지는 내가 하는 일들이 항상 미덥지 못하고 못마땅하셨는지
그걸 설득하기 위해 항상 언성이 높아지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부지를 잘 달래드리지만
참으로 애증의 관계였던 것 같다.

츤데레 영감쟁이라서
안 챙겨줄 수가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고등학교 때, 쓸쓸히 귀가하시는 뒷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뒤돌아서며 마음으로 깊게 운 적이 있다.

마이 시스터,
어릴 적에 부모님의 불화를 보아서 그런지
마음이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다.
늘 사랑받고 싶어하기에
아부지가 못다해준 사랑을
가족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항상 챙겨주려 부단히 애쓴다.
워낙에 세심하고 꼼꼼하게 사람을 배려하는 스타일인지라
그 배려에 놀라고 감동하기도 하지만
지랄맞은 성격때문에 말다툼도 자주 한다.
어릴 적 영향으로 아부지를 안 좋아하는데
항상 그것땜에 마음이 아프다.
잔정 없는 나지만
뭐 하나라도 동생이 슬픈 일 있으면
들어주려 노력한다.

울 어무이,
잔소리는 많으시지만
우리 남매 먹여살리신다고 뼈가 빠지도록 고생하셨다.
조용하고 사려깊으신 성격이셨는데
예비할매가 되니 가끔 욱하시는게 있다.
아부지한테 받은 상처때문이신지
애인 하나 없이 평생을 지내셨다.
개인적으론 좋은 아저씨 만나셨으면 했는데
사랑의 기쁨을 자식들을 통해서만 느끼시는 것이
참 안타깝다.

콩가루라 부르기엔 좀 애매하고 나름 저 상태에서도
균형있고 화목하게 지내려 하는 우리 집이지만
어릴 때부터 가장노릇을 해야 했으니
항상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던 것 같다.

아버지가 계신 집이라면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초등학교때부터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사람이 좀 재미있고 가벼운 면이 있어야하는데
맨날 영감쟁이처럼 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놓으니
항상 무겁고 진중한 스타일처럼 보여
어쩔 때 보면 사람들이 은근 어려워한다.

다 좋은데
여자들이 그런 남자를 별로 재미없어 할 때는
무척이나 아쉽다.

속으로 '아, 젠장 그러려고 그러는 거 아닌데'
싶어도 이놈의 이미지란 건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뭐,꼭 가정환경 탓이겠냐만은
영향을 안 받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일은 또 울집 영감을 만나러 가야하는구나.
대낮부터 토가 나올정도로 고기를 구워 먹고
낮술을 마시겠지.

그래도 우리 보려고 좋은 고기 열심히 고르고
파절이 하려고 열심히 파를 썰어놓았을
홀아비를 보러 간다.

내 아니면 누가 우리 아부지의 둘도 없는 말동무가 되어주리.

밟기 전 반죽처럼 균열도 심하고 이리저리 흐트러진 우리 집이지만
부디 당고처럼 둥글고 예쁜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고는 열심히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예쁜 모양이 되니까.
댓글 : 5 개
뭔가 울컥하네요..아버지와함께 즐거운 추석보내시길..
LADD RUSSO // ㅎㅎ 고마워요. 부디 좋은 밤 되셨으면...
좋은 대화 많이 하고 오세요^^
둥글게 둥글게 사는게 목표였는데.ㅎㅎ
모만 안나면 됨 났으면 갈아버림 끝.

그래도 형님 즐추요
구름 _ // 뭐 제가 노력하면 우리 집은 더 웃고 좋아질 수 있으니 걱정 안하고 삽니다 ㅎㅎ

버섯먹는마리오 // ㅎㅎ 조용히 천천히 어루만져야겠지. 고마워 리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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